송정자 수필가
첫수필집 <f홀의 위로>
발간
송정자의 <이별의 f홀>은 어떤 수필보다 그 느낌이 강렬하다. 아는 동생의 딸이 생을 버린 순간을 그녀는 ‘그 아이가 13층에서 몸을 날리는 순간, 나비가 사뿐히 받아주었을까. 하얀 날개를 입은 천사가 어서 오라며, 두 팔 벌여 품을 내어주었을까. 수만 가지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오색창연한 융단이라도 깔아 두었을까. 손에 잡히지 않는 깃털이 되어 세상에 티끌 한 올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고 썼다. 그리고 두 모녀의 이별을 ‘첼로와 바이올린의 두 몸통에서 화인처럼 찍혀있는 f홀이 눈동자처럼 나를 올려다본다.’로 형상화했다. ‘줄감개를 조절하면 현의 섬세하고도 갸느린 그 떨림조차도 고스란히 실어 나르는 f홀, 악기의 f홀은 안과 밖의 공기를 이어주는 통로다. 바이올린이 내는 이름다운 선율의 흐름을 이 곳에서 조율한다. 모녀가 나란히 두 개의 f홀에 마음을 헹구며, 주고받던 사랑의 하모니는 이제 공명을 잃었다.’라는 표현으로 억누를 수 없는 정서를 객관화하는 솜씨는 그녀의 문재를 확연히 보여준다. 작은 변화만으로도 음색의 밝기와 어둠, 부드러운 것까지 모두 뱉어내는 f홀이다. 단순히 알파벳과 유사한 미학적 상징인 줄만 알았던 f홀은, 수세기에 걸쳐 ‘장인들이 피를 갈아 혼을 불어넣은 악기의 심장이다. 그 f홀 구멍이 연주자를 잃고 끝없는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는 말로 딸을 잃은 어미의 비애를 극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 수필의 최대 압권은 위의 인용된 대목이다. 심장 같았던 딸을 잃은 어미의 애끓는 심정을 이보다 절제된 정서로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병사가 아닌 자살이라는 소식을 듣는 순간, 먹구름이 몰려왔을 터, 자식과의 영원한 이별, 이렇게 무서운 별리가 어디 또 있겠는가. 소중한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건 누구에게나 고통이지만 가장 큰 고통은 그 젊은 딸의 어머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가 아닐까. 송정자는 딸의 죽음 앞에 있는 지인을 보면서 글을 쓰는 생의 부박함에 치를 떨었을 것이 아닌가. 그녀는 사십구재로 사찰을 드나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간의 두려움은 타인의 죽음에서 발견된다. 제삼자의 죽음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이미지와 숫자로 지나쳐간다. 그 앞에서 인간은 세계의 단절과 세계보다 더 큰 한 인간과의 끝나지 않는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삶 앞에 있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애도의 방식은 삶의 영역에서 필수적인 명복의 언어로 생각되는 의례와 종교적 절차를 거치는 것뿐이다. 작가가 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한 신체의 온기가 다 가기 전에 손을 꼭 잡는 일이며, 온기가 다한 신체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일이며,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은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에 직면한 지인의 절박하고 애통한 심정과 상황을 이보다 더 절묘하게 나타낼 수 있을까. 국민교육헌장이나 3.1독립선언서보다 더 명문의 요건과 감동의 울림을 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그녀는 “구석구석 깨어져버린 파열음이 여기저기 한 가득이다. 자식을 앞세운 모성은, 직소 퍼즐처럼 끼워 맞출 수도 없다. 수만 가닥으로 너덜너덜해진 저 정신 줄이 돌아오려면, 생이 끝날 무렵이 되려나. 끊임없이 자신을 무두질해야 하는 유형(流形)의 땅에서 그 기나긴 형벌의 나날을 어찌할 것인가. 뭉치고 맺힌 응집이 올 풀리듯 빠져나올 수나 있을까. 골수가 뒤틀리고 창자가 끊어져 나가고, 눈앞의 곡기가 쓴 소태가 되어 입 안을 되물릴 것을. 어긋난 뼈마디가 아우성치는 그 줄타기의 순간은, 숨통을 막으며 제자리에서 맴돌 테지.”라는 정화되고, 순화되고, 승화된 말로 딸을 잃은 슬픈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어미는 딸의 죽음 앞에서 더 이상 참다운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유지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 결말부 마지막 의미화 문단의 핵심이다. 이별의 f홀을 다둑이는 그녀의 손길, 그 가공할 만한 문학적 표현의 힘 때문에 독자들은 진심으로 사자의 명복을 빌고, 딸을 잃은 어미의 심정으로 이 수필을 읽고, 애도와 감동을 표하지 않겠는가.
-권대근 교수의 서평 중에서
[대한기자신문]
http://k-ma.net/news/view.php?no=3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