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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단장품을 제거하라
33: 1-11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2.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3.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4. 백성이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순식간이라도 너희 중에 행하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단장품을 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하셨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산에서부터 그 단장품을 제하니라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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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금송아지를 만들어가지고 자기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면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민족적인 우상 숭배라는 엄청난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해 버리고, 그로 하여금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모세는 목숨을 걸고 기도하였는데, 그의 기도는
1)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였고
2)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기도였으며
3)자기를 희생해서 민족을 구하려는 희생적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동행을 거부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길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고 하신 말씀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더 이상 자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으시고, 오직 모세의 백성으로만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급기야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되, 그들과 동행하지는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신 약속의 폐기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엄청난 간격이 생겨나게 하였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였습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간격을 내게 만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간격을 내게 만듭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던 인간이, 하나님과 분열되어 온갖 질고를 당하다가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죄인과는 가까이하실 수 없는바,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는 엄격한 간격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자기 안에 있는 죄의 청산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모든 문제가 죄에서부터 초래되기 때문입니다. 즉 인생의 모든 문제는 죄로 인해 생명과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서부터 초래되는바,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이 죄의 청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도 자기 안에 있는 죄 문제를 청산하지 못한 사람은, 속히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신앙생활 중에 잘못을 범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일시 멀어지고 소원해진 성도들도, 다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생명과 축복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여 주심으로 우리의 삶이 복되게 될 것입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하는 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사자를 그들보다 앞서 보내어, 그들이 차지할 땅에 거하는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는 가나안 족속들이 살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싸워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자들로, 아무런 군사적 훈련도 받지 못했으므로, 사실상 가나안 족속과 싸워서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자를 이스라엘보다 앞서 보내어,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그들과 싸우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이 그들의 힘과 능력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그들을 대신하여 싸워 주신 결과인 것을, 여리고 정복 사건과 아이 성 함락의 사건이 잘 증거 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이 죄의 세력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하나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사단의 세력과 싸워 이겨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면,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타락한 본성을 지닌 인간에게는, 스스로 죄의 세력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죄의 세력과의 쉬임 없는 영적 전투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갈 때, 죄의 세력은 언제나 그 길을 방해하고 우리로 하여금 범죄에 빠져 실패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러한 죄의 세력과의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에 싸우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모든 발걸음 앞에 하나님을 앞세우는 믿음으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영원한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복된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동행 하지 않으시겠다는 황송한 말씀은, 그들에게 불길한 말씀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결별 선언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결별 선언을 듣고서 이스라엘 백성은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이스라엘은 생각할 수도 없고, 존재한다고 해도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절실한 광야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결별 선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악의 슬픈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순식간이라도 너희 중에 행하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단장품을 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명령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호렙 산에서부터 단장품을 제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몸에 지니고 있던 장신구를 완전히 제거하였음을 의미합니다. 당시의 장신구는 각종 형태의 신상들이 아로새겨져 있는 우상 숭배를 위한 일종의 신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몸을 단장했던 장신구들은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것이므로, 우상 숭배 문화가 베어 있었음은 불을 보듯 훤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장신구를 제거하라고 명하신 것도, 그들로부터 우상 숭배의 문화를 단절시키심으로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세상 속에서 불신자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성도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이 죄나 악은 그 모양이라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죄악된 세상에 살면서 죄악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죄에 대해 경각심을 조금이라도 늦추면, 언제든지 죄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의 요소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우리가 죄를 범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도들은 세상의 음란하고 불건전한 문화를 배격하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눈에 띄지 않게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유혹하여 죄악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요소와 그 모양까지도 온전히 제거함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모습을 지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성도에게 가장 슬픈 일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동행 거부 선언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였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떠나신다는 말씀에 슬퍼하며 회개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동행하지 아니하시면, 자신들이 궁극적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있어서 부모와 떨어지는 것처럼 두렵고 슬픈 일이 없듯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보다 두렵고 슬픈 일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은 더 이상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요, 그것은 곧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슬픔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게 닥친 슬픔 가운데 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물이 없어서 슬퍼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지 못해서 슬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가장 슬픈 일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축복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은, 모든 축복의 단절을 의미할 뿐 아니라 마침내는 영원한 생명을 잃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야말로 슬픈 일 중의 슬픈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
는 하나님이 자신의 죄로 인해 자신으로부터 멀리 떠나시지 않도록, 늘 죄를 경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합니다. 아울러 혹 잘못하여 죄를 범했을 때는 애통해하며 신속히 회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힘써야 합니다. 진정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 가장 두렵고 슬픈 일인 줄로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원케 하는 죄를 결코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7절에 보면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 하여”라고 했습니다. ‘회막’이란 ‘만남의 장소’라는 뜻으로 모세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것입니다. 회막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세운 성막과는 구별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모세가 설치한 회막이 이스라엘 진 밖 먼 곳에 설치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가 하나님과 사이를 내어 회막이 이스라엘 진중이 아닌 진 밖 먼 곳에 설치된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범죄치 않았다면 회막은 필경 이스라엘 진중에 설치되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죄가 있는 곳에는 임재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죄와 상관하실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약 시대에 영적 이스라엘로 부름 받은 교회가,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임재 하셔서 은혜와 축복을 베푸시기를 원한다면, 우선 그 안에서 죄의 모습이 발견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만일 교회 안에 죄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교회 가운데 임재하시지 않을 것이며, 결국 그 교회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교회가 의미가 있는 것은 그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는다면, 교회는 여느 사회단체와 마찬가지로 단지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늘 함께 하시도록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결하게 살도록 힘을 씁시다. 교회 안에서 죄의 모습을 완전히 제거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로서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될 것이며,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의 사명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9절에 보면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구름 기둥이 회막문에 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가 설치한 회막에 임재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도 여러분, 회막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막이 지어지기 전에, 모세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했던 여느 장막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누추한 장막 위에 임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진정으로 섬기는 곳은, 그 곳이 어느 곳이든 임재 하셔서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건물의 크고 화려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그 곳이 과연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곳이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크고 화려한 교회라 할지라도, 그 곳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해관계만이 얽혀 있고, 인간의 영광을 위해 있는 곳이라면, 그 곳에는 결코 임재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록 상가 건물의 지하에 위치한 교회라 할지라도, 그곳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라면, 하나님은 그 곳에 임하시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헤롯 성전은 참으로 크고 화려했지만,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께 저주를 받고 마침내는 AD 70년에 완전히 파괴되고 말지 않았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 곳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룹바벨 성전은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 임재하심으로 그곳을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이는 스룹바벨 성전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곳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와 같이 하나님께는 외형적인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짓고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거나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교회를 아름답게 꾸미고 예배드릴 때에도 장엄하게 드려야 합니다. 다만 그러한 외형적인 것만을 치중하여 본질적인 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곳이 되어,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는 영광스런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1절에 보면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세와 하나님이 얼마나 친밀한 사이였는지 잘 증거해 줍니다. 참으로 모세와 하나님은 마치 친구가 만나 이야기하듯, 서로 마주 보고 마음을 특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였습니다. 우리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때는 이처럼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고 허심탄회하게 아뢰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모세의 기도가 자신의 말만 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대화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같은 또래의 벗이나 또는 친한 사람이나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자주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화를 통해 자신의 문제나 어려움을 해결하고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 가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대화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문제를 잘 아실뿐만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과 의논함으로써, 형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지정된 교회에 나아와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죄의 단장품을 제하라”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금송아지 사건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회하는 심정으로 그들의 몸에서 장식품을 제거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몸에 지니고 있던 단장품들을 제거하라고 직접적인 명령을 내리신 것에 대한 철저한 순종입니다. 그들이 착용했던 귀고리, 손목 고리, 팔찌, 발목 고리 등과 같은 단장품들은 우상의 땅 애굽에서부터 가지고 나온 것이며, 이것들에는 실제로 우상의 문양 등이 새겨져 있어 우상 숭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단장품을 제하라는 것은 그 죄악을 벗어던지라는 명령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더불어 가나안으로 동행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대하는 심정으로, 우상 숭배를 자극한 각종 패물들을 아낌없이 모두 제거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죄의 원인을 과감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설사 그것이 아무리 값비싼 귀중품이라 할지라도, 또는 세상에서 아무리 귀하게 여기는 명예나 재물일지라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제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얼마 후에 또 다시 새 해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새 해에 진정 하나님이 함께 동행해주시기를 원하는 성도들이라고 하면, 먼저 우리에게 있는 죄의 단장품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피차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죄스러운 모습들을 단호히 제거하여서, 하나님이 항상 동행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교회적으로는 새 성전 건축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우리의 삶은 복되고 형통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