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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5-17
예후와 여호나답의 만남 / 안양준 목사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글에 ‘만남’에는 3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그런 만남은 만날수록 비린내만 나는 만남입니다.
둘째는 꽃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나면 향기가 나고 너무나 좋지만 금새 시드는 만남입니다.
셋째는 손수건과 같은 만남입니다.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주고, 힘들 때는 땀을 닦아주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만남입니다.
여러분은 이 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만남이 만날 때마다 아름다운 향기가 나고, 오래도록 시들지 않으며, 늘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만남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사에 위대한 인물 중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한 손양원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공산당원에 의해 두 아들이 살해되었을 때 자기의 아들을 죽인 그 공산당원을 자기의 양아들로 삼고 사랑을 베풀었던 주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분입니다.
이 분이 자신이 두 아들이 죽었을 때에 하나님께 감사한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두 아들이 순교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리고,
예수 믿다가 죽는 것도 복이거늘 전도하다가 순교함에 감사드리고,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갔으니 감사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이 훌륭한 목사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또 한 분의 훌륭한 목사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분은 손양원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인 스물 두 살 때에 경남성경학교에서 만난 주기철 목사님입니다.
그때 주위 사람들이 “주기철 목사님이 지구라면 손양원 전도사는 그 주위를 도는 달과 같았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그 분에게서 철저한 신앙을 배웠습니다.
본문은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말씀의 배경
오늘 읽은 말씀은 BC 840년경 이스라엘의 7대 왕이었던 아합의 시대에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역사의 가장 악한 왕으로 시돈의 공주였던 이세벨을 왕후로 맞이하면서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아합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였고 예후라는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보면서 배워야 할 점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모든 사건들이 우연히 발생한 것 같아도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들과 850:1의 대결을 벌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불을 내리셨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일시적으로는 움직였을지 몰라도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왕후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였건만 조금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엘리야는 낙심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향해 ‘내 생명을 취해 달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음성을 듣습니다.
왕상 19:15에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기름을 부으라는 세 사람의 시대가 열립니다.
왕하 9:에 엘리야 선지자를 이어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된 엘리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생도 하나를 예후에게 보내 머리에 기름을 붓고 “여호와의 말씀이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왕하 9:을 보면 예후가 아합의 아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요람을 죽이고 요람의 문병을 위해 왔던 남왕국 유다의 왕 아하시야를 죽인 후에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죽이는데 엘리야를 통해 예언한 것처럼 그 시체를 개들이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0:에 사마리아 성에 있는 70명의 아합의 자손을 모두 죽이고 유다에 있던 아하시야의 친척 42명을 모두 죽입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본문에서 읽은 것처럼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나게 됩니다.
2. 예후와 여호나답
1) 예후
예후는 성경을 읽으면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아주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조금의 마음의 동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합의 자손들 70명을 죽일 때는 그들을 가르치던 선생들에게 편지를 보내 죽이도록 할 정도로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리고 아주 급한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가 생도를 보낼 때 그에게 기름을 붓고 신탁을 전한 후에 그리로 급히 도망하여 오라고 한 것은 그의 급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급한 성격처럼 기름 부음을 받은 즉시 예후는 요람을 죽이기 위해 병거를 몰고 가는데 왕하 9:20에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의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라는 말씀이 그가 얼마나 급한 성격의 사람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예후를 하나님이 쓰셨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 중에도 성격이 급한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급한 성격 때문에 늘 실수하는 것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그의 급한 성격도 필요하시기 때문에 그를 쓰시는구나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한번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합 왕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하다고 정평이 나있고, 왕후였던 이세벨은 우상을 섬기게 하는 악녀의 대명사로 요한계시록에 그 이름이 기록될 정도입니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였음에도 오히려 그를 죽이기 위해 자기의 신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후와 같은 성격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들을 멸할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30절에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
이제 아합 왕조가 무너지고 예후 왕조가 들어서는데 하나님께서 예후가 한 일에 대해 기뻐하셨기에 4대를 계속해서 왕위를 이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어떤 일에든지 꼭 필요한 그릇이 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계십니까?
2) 여호나답
본문에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레갑’은 어제 새벽에 말씀드렸던 겐 족속에 속한 사람들로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들입니다.
여호나답은 경건한 신앙 때문에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오던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보수적인 신앙을 갖고 있었는지는 특별히 시간을 내서 한번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렘 35:에 여호나답의 후예들이 자기 조상 여호나답의 포도주도 먹지 말고. 성읍에도 살지 말라는 유언을 300년 동안 철저하게 지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성격적으로 본다면 예후와 여호나답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후는 아합 왕가를 진멸시켰지만 아직도 여호와의 신앙에서 떠난 이스라엘의 범죄를 돌이켜야 할 사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의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후의 성격으로 종교 개혁을 할 때에 신속하고 철저하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반감을 갖는 자가 많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힘든 사역을 혼자 하기에는 아무리 냉정하고 잔인한 성격의 예후라도 감당하기에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럴 때 자신을 찾아 나온 여호나답을 만났을 때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예후가 여호나답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여호나답의 대답이 “그러하니이다”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병거에 끌어 올리며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3. 하나님을 향한 열심
하나님을 위한 열심에 무슨 또다른 이유가 필요합니까? 성격이 다르면 또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의 마음을 향하여 내 마음이 진실한 것처럼 여러분들의 마음도 진실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다른 개인적인 욕심이 없습니다. 제가 처음 개척을 시작할 때 다른 목회자들처럼 많은 교인들을 모으기 위해 목표도 정하고 해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없다고 하니 약간 의심도 생기셨을 것입니다.
열심이 없는 목회자가 아닐까 오해도 하셨을 것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열심히 있습니다. 다만 더 큰 꿈이 있을 뿐입니다. 그 꿈이 무엇인가 하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설계하고 지어져 나가는 그런 교회가 제 꿈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진실한 성도들입니다.
1990년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미식 축구 코치인 빌 매카트니라는 사람이 그의 친구인 데이빗 워델 박사와 집으로 돌아오는 중 차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커다란 스터디움에 미식 축구를 구경하며 열광하는 팬들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며 열광하는 남성들로 스터디움이 채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신실한 신앙의 사람들 500명에게 자신들의 꿈을 담아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받아 본 사람들 중 72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단체의 이름을 ‘Promise keepers’라고 지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이란 단체입니다.
그들은 7가지 약속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그 약속들을 신실하게 지키며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나기 전 3만명이 모여 신실한 믿음의 남성들이 미식 축구 스터디움을 가득 채우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의 꿈에 축복해 주셨습니다.
불과 1년 후에 4,200명의 남성이 약속 준수 영적 대각성 운동에 참여했고, 1993년 여름 콜로라도 풋볼 경기장에 5만명의 남성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97년 미국 워싱턴에서 모였을 때 남성만 130만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1000만명의 회원이 프로미스 키퍼스의 이름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프로미스 키퍼스의 대표였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먼저 남성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1999년과 2000년도에 덴버에 있는 프로미스 키퍼스 본부를 방문했고, 또한 그들도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습니다. 프로미스 키퍼스의 창시자인 빌 매카트니와 총재인 랜디 필립스 등을 만나고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직도 남성 사역에 대한 꿈이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주님 앞에 진실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실하다면 함께 손을 잡고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다해 보고 싶습니다.
2800년전 두 사람의 만남.
여호나답을 만난 예후가 힘을 얻어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전국에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모두 죽입니다.
26절에 “바알의 당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당에서 목상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하여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바알의 당을 부수고 거기에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변소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예후의 여호와를 위한 열심이었습니다.
제가 가끔 말씀드리지만 크리스챤 남성들은 세가지 면에서 중요합니다.
첫째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믿음의 가장이 되어야 하고,
둘째 교회에서 신앙의 후진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믿음의 선배가 되어야 하고,
셋째 사회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종교 개혁은 예후와 같이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죽이고, 산당을 부수는 방법이 아닙니다. 진실한 신앙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때 서서히 종교 개혁은 일어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만남이 하나님 앞에서 귀한 만남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