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수필에-
몽골에서의 교감
박경선
몽골,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이 내 마음에 아련히 응어리져 있었다. 먹을 물과 목초가 있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이 사는 땅, 그 미지의 땅은 예수님이 살던 시대의 이스라엘 광야 같은 곳이 아닐까? 신비로운 하늘에는 별이 은하수로 흘러 영롱하게 빌날 테니까, 윤동주 시인처럼 밤하늘의 별을 헤며 별 하나에 아름다운 이름 하나씩 불러보고 싶었다.
9월 초, 신비한 기운에 이끌려 남편과 함께 대구문인협회 몽골 여행단에 합류하였다.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이틀 만에 함께 한 32명의 이름을 죄다 외우려고 열심히 명찰의 이름들을 불러대었다. 그리고 ‘같이 음식을 나누는 것만큼 가까워지는 일도 없으리라.’ 싶어, 첫날부터 가이드 선생에게 몽골 수박 몇 덩이 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사막여우 한 마리 구해 달라는 부탁보다 더 힘들었는지, 이틀 만에야 마트에도 없는 럭비공 같은 수박 네 덩이를 밖에서 구해왔다. 몽골 전통 요리, 허르헉을 먹는 저녁, 4인 1조 식탁 위에 김자반과 함께 럭비공 수박을 조각배 모양으로 반씩 잘라 올렸다.
그들이 시원한 수박을 먹는 모습은 손전화기에 갈무리하고, 화기애애한 사람의 향기는 내 가슴에 담았다. 그보다 더 신비한 기운은 몽골 땅에서 살아가는 양, 낙타, 말, 풀꽃들과의 교감이었다.
첫날, 엘승타사르하이로 가다가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 떼를 만났다. 모두 차에서 내려 반가움에 다가갔지만 ‘에잇, 또 낯선 외계인들이 우리의 식사를 방해하는군!’ 하듯, 이 땅의 주인인 그들이 무례한 우리를 피해 엉덩이를 보이며 멀어져 갈 때 ‘아차!’ 싶었다. 우리가 원주민을 몰아내는 야만인과 무엇이 다른가?
난생처음 게르에서 추운 밤을 떨고 보낸 둘째 날, 낙타를 탔다. 간혹 침을 뱉기도 한다고 했지만 내가 탈 낙타는 눈망울부터 순한 낙타였다. 오른쪽 앞다리부터 굽혀 무릎을 꿇더니, 엄마가 아기를 업으려고 등을 내주는 형상으로 털썩 앉아 기다렸다. 왼쪽에서 올라타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이고, 고단해라. 오늘만 해도 외계인 태우기가 몇 번째인가?’ 하는 것만 같아 미안했다. 육 봉을 긴장하며 잡았다. 낙타는 나를 태우고 몸을 꿀렁거리며 아무 불평 없이 발이 빠지는 모래 위를 순순히 걸어주었다.
셋째 날, 헬멧을 쓰고 기다리는데 앞 팀을 한 시간씩 태우던 말들이 우리 팀을 태우러 다가왔다. 가이드께 은근슬쩍 ‘말이 쉴 틈도 없이 또 우리를 태우니 말도 고단하겠어요.’ 했더니, 마을마다 말을 모아 놓고 교대로 쉬고 난 뒤 사람을 태워준단다. 다행이다. 말의 왼쪽으로 가서 안장에 올라타고 양발을 걸고리에 3/1쯤 들이밀고 ‘미안한데, 잘 부탁해요!’ 속삭이며 등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말은 고단한 아빠에게 목마 태워 달라고 조르는 아이의 투정인양 묵묵히 등을 대어주더니 질퍽한 길을 달그락거리며 걸어주었다. 말에서 내려서 감사의 팁은 말몰이 꾼에게 건네고, 말에게는 당근 하나 주지 못했다.
다음 날 몽골 역사박물관에 갔을 때 상상으로만 그려보던 마두금을 보았다. 나무로 만든 몸통 윗부분에 긴 자루가 꽂혀 있고, 머리 부분에 말머리가 조각되어 있어서 마두금이란다. 해금과 비슷하지만, 울림통이 사각형인 점이 좀 다르다. 줄은 두 줄인데 한 줄은 수말의 말총 130가닥, 한 줄은 암말의 말총 105가닥을 꼬아 만들었단다. 암말이 산후 후유증으로 새끼에게 수유를 거부할 때 마두금을 연주하면 모성을 건드려 새끼에게 젖을 물리게 된다는 악기라니 그 소리가 얼마나 애절할까? 궁금했는데 연이어 민속 공연을 볼 때, 마두금을 든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였다. 현을 무릎 앞에 비스듬히 세우고 왼 손가락으로 줄을 누른 다음 오른손에 활을 쥐고 문지르는데 애절한 음률이 심장을 문지르는 듯, 영혼을 위로하는 연주처럼 들려 힐링이 되었다.
그 옆에는 결혼 전에 죽은 18세 처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허벅지 뼈로 만든 피리가 놓여 있었다. 깡(kang-다리) 링부(ling bu-피리)라는 다리뼈 피리였다. 그녀의 영혼이 살아, 저 피리 소리를 낸다면 못다 살았던 한이 스며들어 마두금 연주보다 더 애절하리라.
테를지 옐트 산을 오를 때, 풀꽃을 만났다. 깡링부 피리가 된 소녀의 영혼이 깃든 얼굴인 양 싶어 무릎 끓고 앉아 들여다보았다. 눈웃음 고인 꽃 얼굴이 고혹스럽고, 물기 적은 사막 땅에서 팔딱팔딱 숨 쉬는 꽃의 심장 소리까지 기특하게 들렸다. 게르에서 짐 가방을 들어주는 엄마를 따라다니던 꼬마여자 아이의 얼굴도 겹쳐 보였다. 준비해 간 사탕 봉지를 안겨주었는데도 두 팔을 벌려 따라오는 바람에 얼른 안아주고 돌아왔다. 몽골 아이들을 만나 내가 쓴 <천막 학교의 꿈> 동화를 들려주고 이야기 나누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는 예초에 없는 여행단이라 아쉬웠다.
4박 6일의 힐링을 끝내고 징기스칸 공항에서 대구행 밤 1시에 출발할 비행기를 탈 요량이었다. 그런데 비행기의 고장 수리로 연착된다며 탑승객들에게 김장 비닐포대 같은 비닐을 한 장씩 주었다. 비닐 포대 투숙 꾼이 되어 몸을 웅크리고 공항 대합실 바닥에 누운 사람들을 보니, 시장에 팔기 위해 진열된 동태 몰골이지만, 이 또한 귀한 경험이리라. 그 틈에 역사박물관에서 산 한글판 『몽골 비사』를 잠시 들춰 보았다. 한 때 거대한 대지를 누비며 천하를 호령하던 징기스칸의 일대기 이야기책이었다. 그도 죽음 앞에서는 이름만 남겨두고 사라지는 바람이었다. 5시에 고장 수리가 끝나 탑승하라는 안내 방송이 들리자 고마웠다. 추락 사고를 당할 수도 있었는데… .
그러고 보면 우리는 순간순간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연약하게 살아가는 생명체들이다. 그에 비하면, 살기 힘든 자연 환경 속에서도 강하게 살아내는 몽골 땅의 생명체 모두의 영혼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 땅에서 나를 온전히 품어주는 조국에 감사하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도록 베풀고 나누며 살아가야 하겠다.23.9.19 (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