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 무렵이면 주변의 친척들이나 지인 또는 가까운 이웃들 한테 연례행사처럼 하는 인사말은 "새해 복 많이 많으세요" 또는 지난해 감사했습니다. 가족에 평안과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며 인사말을 주고 받으면서 한 해를 마무리 한다. 나의 기억으로 이십 여 년 전만 하더라도 12월 초만 되면 가까운 문방구에서 연하장을 구입하여 자신의 친필로 성명을 쓰거나 사인을 날려 한 줄의 인사글과 함께 보내곤 했다. 특히 관공서 공무원이나 회사를 경영하는 임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연말연시를 보내고 맞이하며 덕담을 주고 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티 분야가 발전하더니 결혼예식의 초대장 부터 인사말 까지 손안에 편지지로 다량의 메시지를 친근감과 함께 무더기로 보내는 모습을 많이 본다. 각자의 개성이 다른 사람들은 무더기 메시지 보다도 비록 메시지에 나름대로의 인사글을 작성하여 "*** 사장님, ***권사님" 하며 시제 직함과 직분을 표현하는 경우는 많지가 않을뿐만 아니라 거의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에 대한 인사는 거의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4년 4월의 기억나지 않은 어는 날. 금요철야 예배를 드리는데 회중에 성도들의 찬양과 연주자들의 쾅쾅울리는 악기소리가 거슬리게 크게 들리며, 아니 시끄러움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예배를 드리며 들리며 울리는 찬양소리를 듣기 싫을 정도로 까지 되었으며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음악이 아닌 소음으로 느낄 정도로 실어서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랐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은 분명 아닌데, 감사가 조금이어서 나에게 고통을 주시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상태는 귀속이 계속 울리는 상태다. 밖에서 다닐 때에는 자동차 소음이 크게 들려 짜증스럽기 까지 했다. 분명한 것은 귀에 질병이 온 것으로 느껴졌다. 하기야 예순이 넘은 나이가 생태주기를 겪는 느낌까지도 말이다. 하나님께 오해인가! 아무리 하나님께 열정으로 충성하지는 못했어도 어릴 적 예수님을 만난 내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말씀과 찬양도 못듣게 하시지는 않으실텐데...
그렇게 고통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의료선교회장이 경영하는 이비인후과에 가지 않을수 없었다. 이비인후과 집사님의 소견서를 가지고 이튿날 강북삼성병원으로 향했다. 언제 큰 병원에 나의 질병으로 가본 경우가 없었던 나는 내심 조금 걱정이 앞섰다. 점심시간이 지나 강북삼성병원 셔틀버스 편으로 병원에 도착했다. 예약도 없이 왔으니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곳저곳으로 안내한 병원직원들. 뭐가뭔지 모르게 접수하고 직원들이 하라는대로 현금으로 납부하며 두 시간이 지난 저녁 시간에 검사에 들어갔다. 검사와 X-Ray 촬영, 침대위에서 40분 동안 손과 팔다리도 움직이지 못하게 꼼짝하지 못하고 검사를 했다. 결과는 일종의 중위염이라는 결과를 내게 알려 줬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예약일자를 정하고 처방전에 의한 약을 구입하고 귀가했다. 대기, 검사 등 병원에서 기다리며 치쳤던 나는 귀가하자마자 그만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걱정하는 생각에도 활동하던 육신이 꽁꽁 묶은 모습으로 대기하며 검사하는 긴 시간으로 나의 육신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처방전에 의해 약을 구입해 몇 달 복용하는 가운데 수술(시술)일정이 잡혔다. 8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지만, 한 시간 여 동안 시술은 끝났다. 많은 통증은 없었다. 하늘색 모양으로 된 짧은 파이프가 왼쪽 귓속에 밖혔다. 이내 퇴원을 하고 또 병원에 예약한 날에 올라고 했다. 그런데 며 칠 지나지 않아 그만 파이프가 언제 나도 모르게 빠져 없어지고 말았다. 빠져 달아난 사고가 났으니 예약한 날과 관계없이 병원으로 향했다. 저간에 사정을 의사와 대화한 후 약 처방을 받고 귀가할 수 있었다. 통증은 별로 없었고 계속 약을 복용하며 다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씩 호전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외상으로 난 환자가 아니니 별로 대수롭지 않은듯 했다. 시술하기전이나 그 후나 사람들의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었다. 단지 대화소리 외에 음악이나 악기소리 등 큰 소리가 왼쪽 귀에 들릴 때 쾅쾅울리기에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이듬해 따뜻한 5월이 지나고 있었다.
여리고 새벽기도회가 시작되었다. 프로그램에 의해 교역자와 장로들의 간증하는 시간으로 새벽기도회는 계속 되었다. 평소에 성도들의 간증이 아닌 교역자와 장로들의 간증이 나의 믿음을 점검하는 은헤의 시간이 되어갔다. 6월 첫 주가 끝나는 주말인 토요일. 그날은 우리교회 몇 달 전 부임한 장애인교회 신임교역자의 간증시간이었다. 평소 주일 예배시 수화(手話)로 목사님의 말씀을 표현하는 교역자였으며, 장애인 교회에서 청각장애 성도들을 담당하며 인도하는 나이 어린 여성교역자였다. 수화 전도사의 간증이 끝나고 통성기도시간에 밝은 빛이 내 눈을 번쩍이게 하고 지나갔다. 그 순간 전에도 계속되는 약물치료와 복용으로 많이 귀의 상태는 좋아지고 있었다. 이렇게 치유되는 놀라운 역사를 체험한 순간이었다. 맹인이 눈을 뜬것처럼 광명의 시간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새벽예배를 마치고 바로 상쾌한 기분을 머리에 이고 노원역으로 향했다. 상쾌한 아침 기쁜 마음으로 집애 갈 수 있었다. 처방받은 약은 계속 복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 내 가슴은 두군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에 부임하지 얼마 안된 젊은 주의 종을 통해 큰 일을 하셨다. 교회에 수소문 하여 전도사님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로 고등부 교사를 하며 당시 고등부 여학생의 얼굴이 떠올라 확인차 전화를 했다. 새벽기도에 간증을 한 전도사님은 다른분이셨다. 새벽기도회 말씀 인도때의 상황을 간단히 말씀드리며 주일(내일) 선교회 사무실에 차 한잔 대접할테니 잠시 오시라고 했더니 쾌히 승낙하셨다. 주일 1붕 예배를 마치고 이내 올라오셨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말씀 드렸다. 잠시동안 간증과 치유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길지 않은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다. 6월말에 교회를 떠난다고 하셨다. 10월에 결혼하신다는 말씀이었다. 결혼 후 제주도로 간다고 했다. 남편분이 제주도에서 직장생활을 한다고 했다. 섭섭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교차하고 있었다. 지금도 안녕하며 잘 계시겠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전도사님 새벽 간증을 잊지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답니다.
첫댓글 벌써 주말 금요일이네요.
감기 몸살이 엄청나게 기승을 부리네요.
가래 기침 식욕부진에 토살것 같은 메스꺼움
등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귀가 그렇게 많이 아프신 때가 있으신줄은 몰랐읍니다
고생을 많이 하셨군요. 그런데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순간에
큰 체험을 하셨으니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큰 은혜를 입으셨네요
감사합니다..
예. 권사님. 한 해 두 해 세월이 지나가며 질병이라는 녀석이 몸의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생리현상이 변하게 하더군요. 어쩔수 없는 현상이긴 하지만요...샬롬. 권사님.
안수집사님 치유되심을 간증으로 남기셨네요,
간증글을 읽으면서 또한번 성령님께서 함께하심을 감사찬양드립니다.
저도 오늘 백병원에서 심장으로 인해 정기검사와 처방을 받아왔습니다.
그동안 많이 사용했으니 조심하게 사용하라는 경고로 생각하고 살기로 했지요.
안수집사님께서도 올해는 병원과는 상관이 없는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깜짝 놀라운데요. 권사님! 우리몸에 가장 중심이 되는 심장인데,
어떤 방법으로던 치료 잘 하셔야겠습니다.
말씀처럼 조심하며 잘 사용하라는 첫 번째 경고인가요?
육신의 모습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잘 치료하시며 회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진한 미세먼지에 모두들 고통이더군요. 감기 몸살도 기승이구요.
오늘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