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주요명소
충주 탄금대와 탄금공원
지금에 와서 공원으로 말끔히 단장된 탄금대는 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신라의 악성 우륵이 가야금을 켜면서 망국의 한을 달랜 곳이자 임진왜란 당시 신립장군이 장렬하게 최후를 맞이한 순국의 현장이며, 현대로 넘어와서는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숨져간 넋들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는 곳이다. 장중한 남한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칠금동 대문산 기슭의 탄금대. 1,400년 전인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의 우륵이라는 악사는 조국의 멸망 후에 이 곳에 강제로 이주당한 수 많은 가야인들 중 한사람이었다. 당시 우륵은 탄금대 절벽바위를 주거지로 삼고 풍광을 감상하면서 가야금을 타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 오묘한 음률에 젖어 들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부락을 이루고 그곳을 탄금대라 명명했다.
조선조로 넘어와서 임진왜란을 맞아 탄금대는 감상의 장소가 아니라 치열한 격전지로 변모한다. 신립장군의 가슴아픈 패전이 이곳에서 기록된다. 선조 25년(1592) 4월 14일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15만명의 왜군이 거침없이 서울을 향해 쳐들어가자 신립장군은 도순변사가 되어 충주 방면을 지키게 된다. 신립장군은 지형을 정찰한 뒤 조령에 진지를 확보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우리 군사들의 훈련이 부족해 사지에 몰아넣지 않으면 투지를 드높일수 없다 라고 판단, 28일 새벽 8천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다. 그러나 신립 장군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천추의 한을 품고 남한강에 투신자살, 패장의 불명예를 쓰고 만다. 탄금정 정자에서 북쪽으로 층계를 따라 내려가면 열두대라는 층암절벽이 기다린다. 왜군과의 격전 당시 장군이 열두번이나 오르내리면서 활줄을 강물에 식히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해서 열두대라는 것이다.
탄금공원 한 켠에는 충혼탑이 하나 서 있다.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충주 출신 전몰 장병과 경찰관, 군속, 노무자 2838인의 넋을 추모하고자 1956년에 세운 것이다. 이 곳에서는 매년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향사를 지낸다. 탄금정과 충혼탑 중간에는 항일시인 권태응 선생의 감자꽃 노래비가 있어 발길을 또 한번 붙잡는다. 공원 군데군데에는 조각작품이 들어서 있고, 소나무 군락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단란한 가족 나들이를 즐길 수도 있다
충주시 칠금동 산 1-1 산림녹지과 공원계 043-850-5831~4
하늘재
월악산 미륵사지 3층석탑을 조금 지난 왼쪽으로 작은 오솔길이 하나 나 있다. 멀리 황장목(적송)과 떡갈나무, 해송 등의 운치있는 풍경을 마주하며, 청량한 하늘 아래 시원한 바람길이 열리는 이 길은 일명 '하늘재'. 길 왼편 아래로 나 있는 도랑은 가뭄탓에 때때로 말라버린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기암절벽 산봉우리와 길가의 진분홍 물봉선, 짙은 자주빛의 수리취, 노란짚신나물 등의 들꽃들이 여행객들을 반긴다.
얼핏보면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하늘재(해발 525m)는 이름처럼 높지는 않다.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잇고 있는 도 경계로서 미륵리에서 30∼40분(2㎞) 정도 걸어 오르면 곧바로 문경 관음리로 연결된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은 하늘재 고갯마루에 이르러 쭉 뻗은 아스팔트 길로 이어지는데 서쪽으로 문경 대미산(해발 1,115m) 정상이 아스라히 시야에 들어온다.
겨릅산, 계립령, 대원령으로도 불리는 하늘재는 우리 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 신라 제8대 아달라(阿達羅)왕이 재위 3년(156년)에 북진을 위해 길을 열었다. 죽령보다 수년 먼저 개통된 하늘재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 한강 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신라는 일찍이 하늘재를 교두보로 한강으로 진출하였고,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했다. 이처럼 중요한 전략거점이다 보니 하늘재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하늘재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시도했으며 고려시대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이 몽진할 때도 이 길을 이용했다. 신라 망국의 한을 품고 마의태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금강산으로 향할 때 피눈물을 머금고 이 고개를 넘었다 한다. 하지만 하늘재는 조선태종 14년(1414년)에 지금의 문경새재인 조령로가 개통되면서 군사적 요충지와 사통팔달의 아성을 한꺼번에 조령에게 넘겨 주게 되었다.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측은 하늘재의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고갯길 1.5㎞ 구간을 '역사·생태관찰로' 로 조성한다. 현재 하늘재로 알려진 이 길은 지난 1970년대에 농로로 새로 개설한 것으로 도랑 너머 오솔길이 진짜 하늘재라는 것. 월악산 자연생태를 직접 보며 역사를 설명해주고 문화재 화판 등을 설치해 주변 문화유적과 함께 설명할 방침이기도 하다. 충청북도가 선정한 '충청북도 자연환경명소 100선' 중 10걸로도 선정된 하늘재는 그렇게 옛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한편, 하늘재 아래의 미륵사지는 신라 말∼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는 옛절터로, 당간지주와 회랑 등의 흔적만으로도 그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찰로는 유일하게 북쪽을 향하고 있으며 지릅재와 하늘재 사이의 분지인 미륵리에 터를 잡고 있다. 미륵사지의 목조건물은 전란을 거치면서 모두 소실되었고 현재는 5층 석탑(보물 제 95호), 석불입상(보물 제96호)을 비롯해 석등(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 3층석탑(지방문화재 제33호) 등이 남아있다. 미륵사지는 지난 1977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쳐 청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작업을 통해 일연스님이 거처했던 '미륵대원'으로 밝혀졌다.
※ 참고로 하늘재는 일반차량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미륵사지~관음리를 답사할 계획
이면 대중교통편을 이용하되 사전에 정확한 버스시간을 확인하도록 한다.
수안보면 미륵리 ~경상북도 도계 (군도2호선) 월악산국립공원 관리소 043-653-3250
문강유황온천
문강 유황온천은 월악산, 조령산, 수주팔봉 중앙에 위치하여 물좋기로 이름난 전국 제일의 유황온천수이다. 유황온천은 온천의 효능이 만병에 있다할 정도로 다양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문강 유황천은 피부의 각질을 연화시켜 피부각화증, 만성습진 등의 피부병에 좋고 미세혈관 확장으로 만성류머티즘, 고혈압증, 당뇨병과 부인병, 동맥경화, 무좀에 뛰어난 효험을 지니며 마실 경우 유황의 해독작용으로 몸속의 중금속, 약물 해독에 좋다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 59-1 문강유황온천 043-848-5115~7
앙성온천지구
경기도 장호원과 이어지는 충주시 앙성면 돈산리와 능암리 일원에는 국내 유일의 대단위 탄산수온천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대략 지하 700m 이상 깊이에서 용출되는 온천수는 수온이 25~38도로 수온이 낮은 편이어서 열탕을 별도로 마련해 놓고 있다. 인체의 건강 증진은 물론 정신적 안정에도 큰 효험이 있다는 탄산수욕은 어깨결림이나 요통, 냉증등 가벼운 병세에 특히 좋고, 피부를 매끄럽게 해주고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도로변을 따라 7~8개의 온천탕이 저마다 개성있는 서비스로 고객을 맞고 있다.
충주시 앙성면 일대
중원고구려비
한반도내 유일한 고구려비(5세기말) 70여 가지의 비문 중 200여자만 판독이 가능한 상태 이며 그 내용을 미루어 보아 장수왕이 한강유역을 개척한 기념비이다. 1979년 2월 25일 문화재 애호단체인 [예성동우회]에서 발견, 같은 해 4월 8일 서울 단국 대학교 박물관 학술조사단에 의하여 확인된 고구려 시대의 석비다. 고구려비는 4면에 글씨를 새기고 앞면 10행 23자씩이고, 왼쪽면 7행 23자가 새겨져 있고 후면 9행, 우측면 6행으로 4면 전체 700여자가 새겨져 있으며, 현재는 200여자만 남아있다.
비문의 내용은 확실치 않으나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문제로 다투다가 화해를 한 기념으로 세워진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쌍방화친을 하면서 고구려 가 형이 되고 신라는 아우가 된다는 뜻이 있다.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280-11 가금면사무소 043-850-2371
충주호리조트
충북 내륙에 있는 충주호는 워낙 넓어서 내륙의 호수라고도 불린다. 1985년 충주 다목적댐이 완공된 이후 남한강 줄기를 따라서 넓디 넓은 충주호가 생겨났다. 충주호 리조트는 아름다운 충주 호반에 자리한 리조트로 청소년수련, 대학단체 행사, 기업체의 워크샵, 사회단체나 종교단체의 각종 행사 등에 적합한 시설이다. 가족단위 휴양지로도 적당하다. 주식회사 충주호리조트가 설립했으며 콘도 스타일의 객실 외에도 호반수영장, 18홀 퍼터골 프장, 잔디/눈썰매장 등 부대시설이 다양하다.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421 충주호 리조트 043-851-2800, 9580~1
충렬사 (임경업장군)
사적 제 189호인 충렬사는 조선시대 인조 때의 명장 임경업(1594~1646)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숙종 23년(1697)에 건립하고 영조 3년에는 지방유생들이 조정에 건의 하여 영조대왕이 충렬사란 사액을 내리게되었다. 그후 관리를 보내어 봄, 가을에 제 사를 지내게 하였으며, 정조 15년(1791)에는 왕이 친히 글을 지어 비를 세웠는데, 그 것이 바로 어제달천 충렬사비이다.
그 후 1978년에 성역화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사당, 강당, 비각 외에 추련검, 고지 등이 전시된 유물전시관이 있다. 또한 충렬사로부터 3.5km 지점인 충주시 풍동에는 충청북도 기념물제 67호로 지정되어 있는 임경업 장군의 묘 역이 약 200평 정도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 소장품현황 - 53점(사당/영정 1점, 유물 전시관/추련검, 교지 외 49점, 충렬사 1점)
충주시 단월동 385-1 문화체육과 043-850-6631, 043-850-5867
수주팔봉
수주팔봉은 높이가 493m로 충북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야트막하지만
날카로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그 위세가 당당하다.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수주팔봉
충주시청 관광과 043-850-6710 충주시 살미면사무소 043-850-2310
술박물관 리쿼리움
충주 탄금호 중앙탑공원에 자리잡고있는 세계 최초 종합 술박물관 리쿼리움은 리쿼
(LIQUOR; 술)와 리움(RIUM; 전시관)의 합성어로서 술 박물관이라는 뜻이다. 세계의 유명한 술 생산 국가에는 여러종류의 술 박물관이 있다. 프랑스의 와인 박물관, 독일의 맥주 박물관,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박물관이 있는데, 모든 술의 역사와 문화를 통합적으로 전시한 곳은 리퀴리움이 유일한 곳이다.
술에 관련된 세계 각지의 문화재를 수집, 연구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음주문화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예술과 어울어진 문화의 공간으로 한국의 음주문화 개선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가금면 탑평리 51-1번지 043-855-7333
청룡사지
고려말 청계산 중턱에 작은 암자가 있던 것을 이태조의 사부 보각국사가 은거하므로, 태조 가 대사찰을 세우도록 했다 한다. 지금은 폐허가 되고 부근에는 보각국사의 부도탑인 정혜원융탑과 석등, 정혜원융탑비 등이 남아 있다. 정혜원융탑은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으로 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가 왕명으로 탑을 짓게 하여 권근이 비문을 짓고 탑명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다.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으며,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어진 것 으로 조선시대 석등의 기본형인 평면정사각형이다.
아래부분에 한마리 사자의 모습이 매우 힘차게 표현되어 있어 사자석등이라고 부른다. 경기도 양주의 회암사지 쌍사자석등과 더불 어 조선시대 사자석등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정혜원
융탑비는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한 비로 고려 우왕 9년에 국사가 되어 73세에 입적한 사실과 보각국사의 덕과 지혜를 기린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비 윗부분의 장식물인 개석 이 없는
대신에 비신 양 끝 부분의 모서리를 깍은 귀접이 양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 다.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문화체육과 043-850-6631
중원 탑평리 7층석탑
신라 원성왕 12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며 일명 중앙탑이라고도 한다. 높이는 14.5m로 현존하는 통일신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큰 석탑이다. 이 탑이 건립된 지 점이 우리나라의 거의 중앙이라고 하여 속칭 중앙탑이라고 부른다. 이 탑은 1917년에 해체 보수되었는데, 이때의 잘못으로 원형과 달라진 부분이 많아졌다. 현재의 모습은 기단은 2중이고 상하 각각 10여매의 장대석으로 구성되어 각 면에는 3주 혹 은 4주씩의 탱주가 있으나 간격이 고르지 않는 것은 수리 때의 잘못으로 보인다. 갑석 상 면의 받침은 하층기단에는 각형과 2단이어서 신라 석탑의 전형양식을 지키고 있다.
탑신부 는 5층까지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각 여러 개의 석재로 구성되었고, 6층부터는 한개의 돌 로 되어 있다. 각 층 탑신석에는 우주형이 있고 옥개석 받침 수는 각 층 5단씩이다. 이 석 탑을 해체할 때 6층 탑신석과 기단에서 각각 고려시대 거울을 비롯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 었다. 1992년부터 중앙탑 주변을 문화사적공원으로 조성하여 이 고장에서 출토되고 수집된 각종 유물과 민속자료를 보관,전시하는 향토민속자료 전시관과 전국 제일의 수석산지인 남한강 에서 채취된 수석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한 남한강 수석전시관이 있다.
또한 주변 조정지호와 함께 경관이 아름답고 단지 내 조경이 잘 되어 있어, 소풍장소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다.
가금면 탑평리 11 충주박물관 043-850-5694
충주 민속공예거리
충주 민속공예거리는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민속공예 및 실내장식 상품 제작, 판매 거리로서 약 1Km 정도에 걸쳐 50여 곳 정도의 전시장과 판매소를 통하여 다양한 종류의 작품들을 관람하고 구입할 수 있다. 가금면 봉황리를 통과하는 38번 국도변 약 5km 좌우와 엄정면 목계리 소재지 주변에 자연발생된 옛 유물(골동품)과 근세의 생활용품 및 나무뿌리조각, 수석 등을 전시, 판매한다. 수저, 등잔, 다식판, 탈곡기 등 애환이 어린 물품에서부터 석등, 불상, 장승에 이르기까지 만물상 거리를 이루어 있어 지나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주변에는 생활시설이나 숙박시설 등이 없어서 여행 중 잠시 방문하여 작품을 감상하거나 구입하기에 적합할 것으로 판단된다.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
청룡사
청룡사는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번지 청계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치악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중 하나가 남한강과 만나는 곳에 만든 산으로 주변에 많은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깊은 산속이다.
청룡사의 연혁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가 없고 절터 뒤편에 있는 보각국사정혜원융탑과 그 비문(碑文)을 통해 고려시대 말에는 창건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당시 청룡사는 크게 번영한 사찰은 아니었으며, 보각국사가 조선 태조 원년(1392년) 이곳에 와서 입적하고, 태조가 보각국사탑을 세우고 그곳에 대사찰을 조영할 것을 명함에 따라 일시적으로 번영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조와의 인연으로 조선 초에 들어와 태조의 후원에 의해 일시 번영을 맞이한다. 그러나 번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하였던 듯 하며, 적어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완전히 폐사가 되었던 듯 하다. 이후 조선 숙종대에 와서 중창의 시도가 있었으며 영조대를 거쳐 일시적으로 경영되다가 얼마 가지 않아서 폐사(廢寺)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청룡사는 완전히 폐사가 되어 옛 건물은 전혀 남아있지 않고 산속에 <청룡사위전비>(충주시 향토유적 제5호), 주인을 알 수 없는 조선 전기의 것으로 보이는 부도 2기, 그리고 보각국사정혜원융탑(국보197호)과 탑비(보물658호), 사자석등(보물656호)이 남아있을 뿐이다. 근래에 들어와 원래 청룡사 터에서 북쪽으로 올라간 곳에 새로 청룡사가 조영되었다. 규모도 매우 작고 사찰의 격식도 완전히 지니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옛 청룡사와는 큰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소태면 오량리 56-1 청룡사 043-842-8856
충주산성
충주는 옛날부터 삼국시대 각국의 변경으로 치열한 격전지였다. 그 흔적이 고구려의 유산인 중원고구려비, 신라의 유산인 누암리 고분군이며 충주산성 또한 그같은 사례이다. 충주산성은 충주시에서 동남쪽으로 4km쯤 떨어진 남산(636m)위에 있다. 축성에 대한 유래는 기록이 분명치 않아 알 수 없으나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하였다 하여
일명 마고성이라고도 하며, 또한 백제 구이신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한다.
충주산성은 대몽항전의 전적지로 유명한데 고려 고종 9월에 몽고군의 4차 침입을 물리쳤고, 12월에는 70일간의 항전으로 몽고군을 격퇴시킨 역사의 전적지이다. 성의 높이는 5∼7m 정도이며 주위는 1.2km 정도이나, 거의 무너지고 300m 가량 남아 있었는데 1998년부터 성 복원 공사를 하여 현재 700m 가량 축조하였으며, 계속 정비중에 있다
충주시 직동 산 24-1 문화체육과 043-850-6630~6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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