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띵가 띵가 띵띵, 띵가 띵가 띵♪”
휴대폰에서 반가운 신호음이 울린다. 딸이 보내는 영상통화를 위한 페이스톡 알림음이다. 요즘 학수고대하는 선율이다. 자그만 화면 속에는 잘생긴 손자 녀석의 재롱이 한껏 넘쳐난다.
손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뒤집기를 못 해 애를 태웠다. 이젠 오체투지(五體投地)의 낮은 포복에서, 두 무릎과 두 손으로 기는 높은 포복으로까지 진화하였다. 잡고 일어서기는 식은 죽 먹기다. 걷기만 하면 곧 있을 첫돌에 구색이 맞다. “도리도리, 짝짝꿍, 죔죔”을 시키면 보너스로 윙크까지 날린다. 우리 부부는 손자 녀석 덕분에 연일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이런 행복도 건강이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벼운 등산복 차림으로 바로 집 뒤편에 붙은 산으로 향한다. 한 시간 정도의 걷기 운동을 위해서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마자 한낮의 폭염에 숨이 턱턱 막힌다. 짧은 거리를 걸어 산기슭으로 들어서니 소나무, 아까시나무, 참나무 그늘이 반긴다.
숲의 서늘한 기운과 함께 매미 소리가 우렁차다. 긴 장마로 때늦은 합창이다. 최소 3년에서 최장 17년을 땅속 어두운 세계에서 살다가 밝은 세상을 본 소감을 공명(共鳴)의 소리로 읊는다. “맴맴” 자기 이름을 되뇌는 놈, ‘우짜, 우짜“ 사기를 북돋우는 놈, ”우웩“ 술이 과한 놈 등 각양각색이다.
수컷이 암놈을 유혹하기 위한 생존본능의 소리다. 한 달 내외의 삶을 살면서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은 후 생을 마감한다. 덩달아 하루살이도 매미의 구애 음에 맞춰 뭉텅이로 날아다닌다. 불현듯 나의 시간은 억겁(億劫)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같은 시간에 운동하는 이들이 두 사람 정도 다닐 좁은 오솔길을 부지런히 걷고 있다. 군데군데 조각난 숲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이 살을 델 것처럼 뜨겁다. 여기도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다. 우측 보행이 그것이다. 근래 새롭게 합류한 아내는 그 질서를 깨뜨리는 몇몇에 아주 불편해했다. 보행이 불편한 나이 든 이가 한쪽으로 난 편편한 길만을 고집하는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래도 이제는 슬쩍 양보할 줄도 안다. 오솔길의 질서에 녹아든 것이다. 여덟 번을 왕복하니 거의 육천 보에 가깝다. 잠시 쉬려고 긴 의자에 앉으면, 산 모기들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얼른 몸을 털고 일어났다.
집에 돌아와서 텔레비전을 켜니 코로나 19의 상황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있다. 잠시 수그러들더니 매미 소리와 함께 다시 기성을 부리는 모양새다. 밖에 나갔다 오면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직장 생활 하는 아들과 사위도 걱정이다. 한 달 후 있을 손자의 돌잔치는 정상적으로 치르기 어려울 것 같다. 정말 모두를 너무 지치게 한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생활(日常生活)이 그립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긴 장마가 수많은 인명 피해와 수재민을 내더니 이제는 폭염으로 한반도가 펄펄 끓고 있다. 작년만 해도 아파트 바로 뒤에 산이 있어 시원한 산바람에 더위를 모르고 살았다. 한여름 외에는 선풍기도 잘 틀지 않았다. 올해는 손자가 집에 올 걸 대비해서 부랴부랴 냉방기를 들였다. 오늘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냉방기를 가동한다. 늘어진 몸뚱어리에 한결 생기가 돈다.
시간이 흘러 한낮의 태양이 저물고, 어둠의 장막이 내려와 뜨겁던 대지의 열기를 식힌다. 나는 프로야구의 광적인 팬이다. 아내는 일일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채널 선택권이 없다. 당연히 거실의 텔레비전은 아내가 지배한다.
나는 별도로 마련한 안방의 텔레비전 앞에 자리한다. 요즘은 승패에 그렇게 목을 매달지 않는다. 이런 재난 시국에 야구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저녁은 먹었지만 입은 아들이 사 놓은 과자를 먹느라 쉴 틈이 없다. 아내는 배가 나올까 봐 눈치를 주지만 주체를, 할 수가 없다. 뭔가 허(虛)해서 단 것이 그리워지는 나이가 원인일 것이다.
야구가 끝나면 독립해 나간 아들이 쓰던 방으로 간다. 우리 부부는 올봄부터 각방을 쓰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밤에도 두세 번 화장실을 가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다. 더 결정적인 것은 아내는 저녁잠이 없고, 나는 새벽잠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서로 불편했다. 아내를 배려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처음 얼마간은, 많이, 당황스러웠다. 지금은 세상 편하고 좋다. 덕분에 새벽에 일어나 글공부도 마음껏 한다.
지난 3년간의 노력으로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하고 싶은 수필 공부는 언저리만 맴돌다 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올봄에 부경대 평생교육원 수필 심화반에 등록을, 했다. 그런 열정 덕분인지 한 문장을 너무 늘여서 쓰거나, 간혹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표현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다.
요즘은 글을 어떻게 보완해서 결과물을 낼까 하는 문제로 걱정이 많다. 그 여파인지 밤 세 시쯤 화장실을 다녀오니 잠이 오지 않는다. 닫힌 창문에서 바람이 덜컹거린다. 냉방기를 끄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찌륵 찌륵”, “찔 찔 찔”, “또르르” 가을의 전령 귀뚜라미 소리가 아닌가. 언제 내 곁에 와 있더란 말인가. 온 세상이 시끄러워 너를 챙길 시간이 없었구나. 남아 있던 잠이 확 달아난다.
“뎅, 뎅, 뎅” 불시에 마음을 파고드는 소리! 가까운 사찰에서 새벽 예불 종소리가 들려온다. 홀연히 번뇌(煩惱)에서 벗어 난 듯 마음이 더없이 자유롭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맑고 열린 마음으로 시작된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가.
첫댓글 김선생님 글은 언제나 명쾌하고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읽기에 불편하지 않게 단어 선택도 자연스러워 끝까지 읽는데 무리가 없어 좋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글이 딱 세 편이 남았습니다. 아쉽네요. 새해에도 좋은 작품 많이 쓰시기를 빌어봅니다. 24년에는 청룡을 타고 훨훨 날아 보십시요. 기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