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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유전자 도표.
1. Q 유전자는 미국 인디언 원주민과 시베리아 원주민에게서 소수 발견되는 유전자다.
전라도에서 0%가 나온다는 것은 반도에서 한국인/ 조선인 유전자인 O2b 유전자가
가장 선 주민으로 오래 정착하고 살았다는 증거다.
그에 비해서 일본인 유전자인 O2b1 유전자는 영남이 11.90%로 가장 많다.
전라도는 서울, 경기(7.27%)에 이어 7.78%로 가장 적다.
부여(동명성왕)유전자-O2b
일본인유전자-O2b1.
전라도 선주민 마한지역으로 부여 유전자가 들어와서 융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럼 전라도 선 주민이 누구인가?
바로 조선인 유전자다.
그리고 전남 해안 지방 환두국의 환도대두인이다.
전남 나주, 여수, 순천, 광양, 경남 사천 일대에서 많이 발견되는 그룹이다.
이들이 쌀 유전자로 구분되는 D2 유전자 그룹이다.
중국인 유전자-O3.(중국 50%, 한국 40%, 베트남 40%, 만주족 40%, 일본 20%)
중국인 유전자인 O3에게 밀려나서 쌀 유전자 그룹인 D2 그룹이 티벳지역과 일본 지역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D2 그룹은 티벳과 일본에서 많이 발견된다.
(전국시대 진나라, 전진(감숙,청해성/ 부견), 서진(하남성 낙양 사마염), 섬서성 서안의 후진>감숙성 후진(요장),
감숙성 원천 서진, 산서성 대동시 용성 서진, 동진(강소성 남경 사마예), 전연(북경),서연(하남성 서북),
남연(안휘성), 후연세력(산서성 대동시 용성).
D2는 가장 오래된 유전자- 전라도 3,33%로 가장 많다.(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선 주민=마한반도)
중국인 유전자인 O3그룹에 일본인은 20%를 보유하고 있다.
그에 비해 신라인은 O3 유전자가 36.90%이다.
일본인 20%와 가장 가깝게 O3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일본인과 가장 가까운 지역은 경상도라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이다.
C3 유전자- 인도 유전자(월지가 북인도 카슈미르 지역에서 귀상왕조를 세우고 중인도로 남하하여
쿠샨왕조를 세웠다가 혈통이 희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월지 세력[쌍미족,휴밀족,도밀족[돈밀족],귀상족]이
중인도에서 동진하여 서장성 아리지구, 창도지구를 통해 초원의 길 루트를 개척하며 사천성 보주,
성도[청두]로 들어왔다가 반도로 들어오는 유전자/일명 징기즈칸 유전자라고도 한다.)
북인도 카슈미르에서 중인도를 점령하여 융합되었기 때문에, 원주민들은 6만년전 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중원으로 들어왔다가 아리안족이 내몽고서부 사라선맹[시라선맹]지구를 거쳐 쫓겨나
아리안 족의 대이동이 펼쳐져 북인도 지방으로 이주한다.
북인도에서 정착하였다가, 월지의 점령을 받고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를 장악하여
중단된 실크로드 무역을 회복하자 쌍미족, 휴밀족, 도밀족, 귀상족 등으로 세력이 불어나
내전이 발발하게 되고 귀상족이 통일하여 북인도 카슈미르 지역에서 귀상왕조를 세운후
중인도로 남하하여 쿠샨왕조를 이어가다, 혈통의 급속한 혼혈화를 막기 위해
중원 실크로드/ 초원의 길을 통하여 중원 사천성 보주로 들어갔다가 신나라 멸망후 귀주성으로 들어가
정착하게 되며 지도부 주류가 후한 광무제 유수의 추격으로 반도로 유입되는 유전자를 말한다.)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 무역 중계 무역지로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차지하여
돌아가지 않고 남은 그리스인들이 지배하던 셀레우코스 왕조였으나 이로 인해 실크로드 무역이 단절되자,
대월지가 서진하여 무력 점령하고 실크로드 무역을 다시 회복하는 전쟁이었다.
C3 인도 고아시아 유전자는 경상도가 16.67%로 가장 많다.
이런 원인은 신라 지도부가 훗날 진/전진의 부견, 서진, 전연, 후연의 모용수 세력이 이주해와서
지도부로 올라 서기 때문에 비율이 높게 나오는 것이다.
[호남지방으로는 촉한/예촉, 이특의 성촉, 우르가야, 대가야, 서진, 동진 세력이 유입된다].
전진의 부견은 북인도 실크로드 비단길과 티벳 초원의 길을 장악하여 서역을 평정한 바가 있다.
그후 청해성 동부에서 해동천왕에 오른후, 강소성, 절강성 동진을 점령하려고 천하통일을 이루려다가
동진 장수 안휘성 사수지방 출신의 양하사씨 사현에게 비수대전(안휘성 수현/수춘)에서 패해서
반도로 달아났다가 일본으로 이주하기 때문에 경상도와 일본에서 많이 발견된다.
환온/환현 부자는 촉나라 제후로 예촉 출신이었으나 성촉(이특의 성촉을 점령하고 성한을 세운 이웅)의
제후로 떨어지자,전진의 부견이 일으킨 영가의 난을 피해 강서성 예장지방으로 피난해 들어왔다가
강소성 남경으로 들어가 동진의 막후 실력자로 부상하여 전연, 후연, 남연을 격파하고
사천성으로 들어가 성촉/ 성한을 멸망시킨 후,
동진에서 소준의 난, 왕돈의 난[성촉출신],유외의 난 등을 진압하고 동진 황제가 되려다가
북위 출신 유유에게 패하자, 양하 사씨 사현가문 일파와 함께 동진 황가 일행을 이끌고 탈출하여,
북 발해만 요녕성 조양>심양 옛 낙랑국에서 낙랑 잔류인을 복속하고 후동진을 세웠다가
고구려 고국원왕에 밀려나자 반도로 들어와 익산 금마 연립 마한국[하한/ 사탁씨, 사택씨, 금성라씨]과
나주지방으로 남하하여 예장라씨,나주라씨,금성라씨(나씨)의 원조가 된다.
(그이전 나국(라국)이 있었기 때문에 지배족이 되기 위해)
[남마한 침미다례국인 여수,사천,통영의 사탁부로도 유입]
유유가 최종 승자가 되어 남송[유송]을 건국하게 된다.
N-동남아 유전자
경상도가 4.76%로 강원도,제주에 이어 세번째로 많다.
D2-티벳, 일본 유전자.
전라도가 3.33%, 경상도가 2.38%로 이들은 전진의 부견이 비수대전 패배로 이주해왔음을 알 수가 있다.
(전진의 부견이 티벳과 서역을 점령함, 티벳 청도(청두), 사천성 파촉국(성도/청두)
이들이 동진을 평정하려다가 안휘성 수춘/수현[기자 조선 탄생지/ 서화/실크로드 소비종착지]에서 벌어진
비수대전에 패하고 반도로 넘어오는 것임)
-전라도가 많은 이유는 호남 동부지방을 통해 일본으로 이주하는 실크로드 교통로였으며,
이곳에서 그릇, 토기, 철기 등을 구워 일본으로 이주하는 이주민들에게 제공 판매하는 상업 행위가
성행하였기 때문이고, 호남 동부지방은 실크로드에서 이주해온 우르가야 지방이었기 때문에
상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가야가 점령하는 것이고, 후일 또다시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당하자,
전라 중동부지방으로 넘어오기 때문임.
대가야인들이 광주 지방까지 피신해 들어가서 무진주로 바뀌는 것임.
경상도가 인도 유전자인 C3 비율이 높게 나오는 것은 아유타국의 허황옥 때문일 것이다.
중인도로 남하한 월지가 사천성 파촉국(축파) 보주로 들어왔다가 신나라와 실크로드 무역을 독점하다
광무제 유수에게 망한 후 반도로 들어오게 되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강원도는 부여 유전자인 O2B가 높은데, 중국 유전자인 O3에게 패해서,
강원도로 들어와 살아간 것을 뜻한다.
경상도인에게 중국 유전자가 가장 적은 36.90%인 것은
역시 경상도인이 중국 유전자에게 밀려나서 동부 지역으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경상도인의 조상 O2B1은 진나라, 전진의 부견(청해성 동부 지방/해동천왕/일본 계열)과 그 동족세력,
그리고 제후국으로 들어간 전연/ 후연의 모용황, 모용수 세력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배층으로 올라섰음을 의미한다.
[신라인은 전진의 부견(청해성 서부 출신으로 청해성 청해호 동부지방을 장악하고
백마저 추장으로 있다가 감숙성을 장악하면서 신강성, 서장성, 서역등 비단길과 초원의길을 평정하고 돌아와
불교전파를 명분삼아 영가의 난인 남북조 천하통일 전쟁을 일으키며 동진을 침공함)과
원래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세력이지만 서로 다른 나라를 세워 마립간 시기에 이질화된다.
그래서 전진의 부견(청해성~감숙성 비단길 ,초원의 길 장악)이 신라 사신에게
해동(청해성 청해호 동부지방)의 사정에 대해 물으면서 예전에는 말이 같았는데
말이 달라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기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자 신라 사신은 말이 달라졌어도 왕가를 구성하는 지도부는 전진과 같은 말을 쓰기 때문에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라고 고해 올린다]
중국 유전자가 적다는 것은 반대로 일본 유전자와 가깝다는 것을 말한다.
일본인 유전자는 20%
경상도 유전자는 36.90%
그러므로 경상도 유전자는 일본 유전자와 가장 가깝다.
그런데 중국 유전자 100%중에서 전라도 43.33%는 중국 유전자 계열이지만,
서울 경기,충청도 50%에 비해서도 확실히 적다.
도대체 전라도가 중국인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일본인의 중국 유전자 비율은 20%
경상도인은 36.90%
역으로 말하면 경상도와 일본인 유전자가 가장 가깝다는 말이다.
전진의 부견이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와 서장성 티벳 자치구를 평정하고,
그들을 동원하여 절강성, 강소성 남경의 동진을 멸망시키려고 영가의 난을 일으켜
북조를 모두 멸망시키고 남조를 침공한다.(비단길, 초원의길 천하통일 전쟁)
서진, 전연, 서연, 북연, 남연 등이 전진의 부견에게 복속되어 모용수는 부견의 휘하 장수로 출정하여
동진을 침공하였다가 감숙성 후진을 세우는 요장에게 부견이 참살당하고 5호 20국으로 분열하며 끝이난다.
그때 동진의 사현에게 비수대전에 패해서 반도까지 달아났다가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유전자하고는 많이 다른 것이다.
(원래 중국화란 서진/동진화, 대량/양나라화, 백제화를 뜻한다.
대량/양나라는 경기인의 선조, 서진,동진화는 사탁씨(사택씨)인 전북 익산인,전남 여수, 경남 사천인,
예촉의 후예인 강서성 예장지방에서 동진의 멸망으로 이주한 전남 나주 예장지방(라/나씨)인의 선조,
백제화는 개성, 서울, 인천(위례백제), 충청, 전북, 전남 장성, 영광, 담양 북부의 선조).
-호남동부는 우르가야, 광주마한은 대가야의 멸망으로 유입하여 무진주가 되는 유전자.
사현 장군은 안휘성 사수지방 양하사씨 출신으로 안휘성 주도 합비 동쪽 서화, 몽성 지방이
기자조선 탄생지 지방이었고 사수지방으로도 불리웠으며 사수강은 산동성에서 발원하여
안휘성 동부를 거쳐 강소성 서북부로 이어지는 강을 말한다. 이 지방을 사수지방이라고 불렀다.
서불한우로국은 사수지방에서 호남성으로 밀려났다가 전남 광주,
광산[우국/호남성 무한시,노국/호남성 광주시/광산]과 서국(반도 서남단에서 중남단으로 확장)
불국(창녕/비화가야로 성장), 한국(함국/김천)등 신라 지역으로 이주해 들어온다.
변방의 유목민에다가 문맹률 99.99%인데다가, 순장뛰기들에다가,
근친혼과 형사취수제인들이었고, 중인도와 북아프간, 카슈미르 혼혈에다가 안좋은 것만 다 가지고 들어왔다.
신라인들은 그 잘난 코카시안 유전자를 함부로 들먹이지 말아야 한다.
중원 위촉오 삼국시대 때 통일하다가 망한 자들이 반도에 와서 삼한통일 하려다가
다시, 일본으로 넘어가 전국통일하고 또 다시 중원통일한다며 임진왜란으로 반도로 나와
어지럽히다 패해서 들어갔다가, 일제시대때 다시 나와 중국을 침략하게 되는 것이다.
남경 대학살을 일으켜 동진의 수도 강소성 남경(건강/견강)을 멸망시키고
다시 못다 이룬 천하통일을 시도하려고 했던 것이다.
일본은 한국과 함께 멸망한 왕가들의 연합체다.
그 중심에 전진과 신라가 있었다.
신라인 경상도에 있는 R유전자 1.19%는 알스퀘어 유전자를 말하는데,
이것은 주식을 밀과 옥수수를 사용한 종족 유전자를 말한다.
신강성 위구르(유이족/오이족)자치구와 서장성 티벳(토욕/토곤족) 자치구에 가면
많이 있는 유전자를 말한다.(돌궐에서 유연이 나오고 유연에서 유이족(궐한,궐용,궐융,궐연,궐강,궐저,
궐농등 융적이 나옴)-궐용으로 분화하기 이전의 용산족이 서울로 들어오는 것임.
석탈해가 산서성 대동시 용성의 용성국 출신이고 다파나국으로 옮겨가는데 이곳은 내몽고 서남부
단파(파단) 길림 사막 지방을 말하는 곳이고 계림으로 옮겨갔던 곳이 섬서성 보계시 계림이었다.
그이후 시라(신라)인들이 북월지(카나,카라,가나,가라,가야,왜)에 밀려나 감숙성 경양시 경양부
금성으로 옮겨갔다가 안휘성 사수지방의 기자조선을 거쳐 훗날 반도로 들어온다.
감숙성,내몽골 서부 사라선맹 지구의 북천축, 중인도의 중천국, 사천성의 파촉국[파촉지방/축파지방]
유전자 그룹은 밀과 옥수수를 주식으로 사용하였다.
즉, 그들이 후한을 세우는 광무제 유수의 추격으로 허황후 일파와 함께 사천성 보주로 피신했다가
강소성 마산을 거쳐 한반도 마산, 진해로 이주해왔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동한(후한)망후 산서성 태원시에서 북한산 지명을 가지고 서울로 들어온다.
그래서 선주민이었던 마한에서 이방인이었으므로 왕과 신하를 파견하여 대리 통치하였던 것이고,
고구려 미천왕 묘 도굴사건을 일으키고 서태후와 왕후를 잡아가는 전연의 모용황(5만 본군)과
그의 형 모용한, 동생 모용진이 고구려 고무장군에게 쫓겨 1만 5천여 명이 반도로 추격을 당해 들어온다.
[모용황의 5만 대군이 고구려의 고무장군 5만대군을 피해 남로군으로 침공하여
미천왕 묘 도굴사건을 일으키고 모용한/모용진이 1만5천을 이끌고 북로군으로 침공했다가
313년 미천왕 묘 도굴 사건 직후, 반도 신라로 고무장군에 쫓겨 들어오게 되는 것임.
후일 이들 진한의 후신 진국과 전진의 제후 전연, 서연, 후연, 북연, 남연 세력이
안휘성 수현[기자 조선 탄생지/ 서화]에서 동진의 사안,사현장군의 8만 기마대군과 비수대전(383년)을 치루고,
후연의 모용수가 북위와의 참합피 전투[산서성 대동시 백등산전투/395년]에 패해서
반도로 숨어들어왔다가 군사세력이 지도부로 올라서게 되면서 선주민과 융합하고 난 후
660년 나당 연합군의 결성으로 한반도의 주인으로 올라섰던 것이다.
익산 연립마한국 이남인 전나국[전주중심]에서 무진주[광주]까지는 한반도에 가장 먼저 정착하였기 때문에
원주민 보호구역이자 소도구역으로 고구려, 가야, 백제, 신라가 차마 무력으로 침공하지 못하였고
전라 연맹체 마한(전나국/전주)이 소도역활을 하여 정치적으로 패한자들이 숨어들면 보호해주는 곳이었다.
전라 연맹체 마한을 대신하여 한반도에서 권리행사를 하던 기준 조선의 평양 상마한>직산 중마한>
하마한[익산 기준조선 연립마한국/하한]이 백제, 신라에 침공을 당하게 된다.
신라는 마립간 시기에 자체적으로 소도를 마련하고 운영하다가 지증 마립간 시기 부터
왕권이 신권을 누르고 정치적으로 패한 자들을 치기 위해 소도에 난입하여 잡아가
정치적 보복을 하게 되면서 신권은 왕권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대가야의 약진으로 처음으로 룰을 깨고 호남 동부 우르가야 지방을 먹어 들어가자,
신라가 대가야를 멸망시켜 차지하게 되고, 백제 무왕이 대가야를 구원해주며
호남 동부 지방을 장악해 들어가면서 산청 생초면, 생비량면까지 백제 영역에 넣고
마산, 거제 견내량 일대를 백제 영향력 하에 두게 되면서 왜 이주 루트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우르가야, 대가야 지방인은 백제인의 이주루트 과정에서 모든 경제적 기반이 나왔기 때문에
백제군과 부흥군에 협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제 멸망기 전라 연맹체 마한국이었던 무진주[광주]는 신라군에 편승하여 정읍 태인으로 북상하다가
야밤에 잠을 자는 사이에 정읍 태인군에 대패하면서 백제 부흥운동의 첫 불씨가 타오른다.
전라 연맹체 마한국중 전주지방은 끝까지 소도 역활을 하면서 전쟁의 화마를 피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원래 땅 주인을 무력으로 치게 되면 자기 나라 안에서도 이웃 땅과 재산을 빼앗아도 된다는
논리가 형성되기 때문에, 자국의 기본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차마 무력으로 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또한 정치적 패자들이 숨어들어 안식처를 찾기 위해 서로 간의 필요에 의해서 침공 불가 방침을 정해
암묵적으로 유지시켜주고 싶었던 이유였다. (이 당시에는 양심철학이 지구의 중심철학이었음)
이 아련한 유전자의 영향으로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 근현대기까지 정치적으로 패한 자들이
호남지방으로 끊임없이 피해 들어오게 된다.
안승의 후고구려[익산보덕국], 가야 멸망, 백제 멸망, 후백제 멸망, 후고구려(궁예)멸망, 정여립의 기축옥사,
이괄의 난, 이인좌의 난, 동학 의병운동, 일제 항일운동, 대구 폭동사건 등으로 이어지며 피신해 들어온다.
[산서성 대동시 용성이 원래의 서진 출발지로 전진의 부견에게 멸망당하고 돌아간 틈에,
내몽골 동부 선비산과 오환산으로 북흉노에게 쫓겨 들어갔던 탁발 선비족이 세력이 불어나 선비산을 내려와,
내몽골 중부 포두시 파언탑랍 지방에서 일어난 탁발 선비족 탁발 십익건의 대나라에 멸망당하고,
다시 전진의 부견이 쳐들어가 대나라를 멸망시키자,서진인이 산서성 장치시 장사지방 부근
사탁지방으로 이주하였다가 사마염 때 사탁지방을 중심으로 서진을 재건한 후
하남성 낙양으로 들어가 유연족으로 분화 단계의 나라인 조나라의 후예 위나라왕 조환을 제후 진왕으로 내려 앉혀
산서성 진성시로 내보내고 낙양에서 서진을 공식 건국한다.
그러자 전진의 부견이 북조에서 불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서진을 침공하여
사마염을 죽이자, 사마염의 동생 사마예가 서진인을 이끌고 강소성 남경으로 들어가 동진을 건국한다.
동진은 산서성 장치시 사탁지방에서 안휘성 사수지방으로 이주해 간 사현 장군과
160여년 전 사천성 유비 촉나라의 이민족 제후였던 예촉의 환온/환현 부자가 성촉의 제후로 떨어지자
영가의 난을 피해 강서성 예장지방으로 피신한 후 동진으로 들어가 막후 실력자로 부상하여
전진의 제후국이었던 전연, 후연, 남연을 격파하고 사천성으로 들어가 예촉을 제후로 떨어뜨렸던
성촉>[대성/성한]을 멸망시키는 것이다.
환온이 성한을 멸망시키는 과정에서 원숭이 고사로 단장[斷腸-단장의 메아리 유래]이라는 말이
시초가 된 것이고,성한>하>후하>대하의 혁련발발[열한/무열황제/중국에 남은 마지막 남흉노 국가]로
이어지며 쌍미족 계열의 북월지 세력과 모용도노 세력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호로자식(猢虜子息-원숭이를 사로잡은놈)"이라는 말이 유래하게 된다.
[북월지 세력 중 일부가 훗날 오월의 강동,강남 진출 실패후 북베트남[월맹]으로 밀려들어가
려국>후려국(후레왕조)을 세운다]-여기에서 "후레자식(後黎子息)"이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실크로드 상업무역 세력이 손해를 보면 칼을 들이대고 자주 사가게 만들었고 살기 힘들어지면
중원으로 침공하며 남하하였기 때문에 "상놈>쌍놈"이라고 비하하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며,
쌍미족(雙眉族)과 무열황제(武烈皇帝/열한)를 가리켜 "쌍열의 자식(雙烈의子息)들"이라는 유명한 말이 탄생하게 된다.
[쌍미족은 미얀마, 라오스 등으로 많이 들어가고 일부가 밀양 지방으로 이주해 들어오며,
성한왕은 이웅, 세한은 4대 황제 이세한, 열한은 대하국의 무열황제 혁련발발의 후예가
진지왕의 손자계인 김춘추, 김법민이었다.
(전진 연합군의 후예 태종 무열왕 김춘추).vs 진평왕계(그 반대로 동진연합군의 후예 사탁부계)
발해 2대왕 무왕(대무예)이 산동성 등주시를 장악하고 대 신라무역을 통제한 후,
고구려 유민 이정기의 치청천국>이납, 이사고, 이사도의 후제가 다시 발해만 산동성 등주시를 장악하고
강동9주를 차지하며 대 신라 무역을 통제했기 때문에 후려자식(後麗子息)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임].
[신라국은 지증 마립간 때부터 진흥왕,
법흥왕[전연 모용황의 동생 모용진/ 또는 백제 동성왕의 자녀 부여 남모, 모랑 남매],
진지왕[성촉/성한의 김춘추, 김법민계], 진평왕[익산 금마 연립 마한 사탁씨(사택씨) 사택적덕 가문
[금성라씨로 분화],
침미다례 사탁부/여수,사천,통영]계가 모두 출신이 다르다.
같은 혈통이 아니며 국가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같은 혈통이라고 역사에 기록한 것이다.
실제로는 각기 다른 세력이 정권을 잡은 것이며 정권을 차지하고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함이었다]
서기 200년대 초기 촉나라의 유비[161~223/유비가 거느린 이민족 제후들이 예촉, 성촉 등
한민족이 많았기 때문에 나라 이름이"촉한"인 것임]가 이민족 제후들을 거느리고 삼국시대를 펼칠때
예촉, 성촉 등은 제후로 활동하였다가 촉나라가 망하자 예촉을 세우고 살았으나
감숙성 동부 6군에서 남하한 북월지 이웅(성한왕)세력이 이특의 성촉을 점령하여 대성/ 성한을 세우고
사천성 강주, 성도 일대를 장악하면서 예촉을 제후로 떨어뜨리자,
예촉의 환온/환현 일파가 강서성 예장지방으로 이주하여 동진으로 들어가 제후로 활동하며
383년 전진의 부견군 90만 대군을 안휘성 동부,강소성 북부 사수지방의 사안/사현장군과 함께
8만 기마대군으로 비수대전[안휘성 수현/수춘 기자 조선 탄생지-실크로드 소비종착지]에서 물리치게 된다.
[예장지방은 이렇게 생겨나게 되는 것이며, 최초 사수지방은 산서성 장치시 사탁지방에서
하남성 정주시 한성백제로 남하하였다가, 산동성과 강소성 북부, 안휘성 기자조선의 탄생지였던
서화지방으로 이주하여 사수지방으로 불리우다가 익산 금마 연립마한국(하한)의 사택씨의 금성과
나주의 예장지방, 여수,사천의 사탁부, 함남 영흥군 영흥강[사수강]으로 이주하게 되는 것이다.
안휘성 동남부 강소성 서북부의 사안, 사현 가문 양하사씨의 사택씨가 하한(익산 금마 연립마한국)으로
들어가자, 김춘추의 조부 진지왕이 하한을 침공하여 점령하는 것이며 신라 사탁부계 진평에게 3년 만에
폐위당한다.
(전진 연합군이었던 진지왕(김춘추의 조부)계가 사현 가문의 사택부(사탁부)의 동진을 눌러보려는 시도가
반도로까지 이어지는 것임)
"전진 연합군이 동진 연합군에 비수대전에서 8만 기마대군에 패전했으니 익산 하한으로 들어온 동진연합군
사택/사탁씨 사현가문을 전진 연합군이었던 신라 김춘추의 조부 진지왕때 하한을 다시 침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탁부계 진평왕이 다시 차지하고 진평계인 선덕여왕 때 동진 연호였던 "태화"를 다시 사용했던 것임.
동진연호를 사용한다는 것은 문명국인 동진문화의 정통성을 이어가겠다는 뜻임.
익산 하한으로 들어간 양하사씨 사탁부 세력이 훗날 좌평 사택적덕 등 유력가문이었기 때문에
동진의 정통성을 잇기 위해 사택부로 바꾸는 것이며 동성왕, 위덕왕, 진지왕의 침공으로
여수, 사천으로 이주한 사탁부 세력은 정통성을 이을필요가 없었으므로
그대로 사탁부로 사용하게 되는 것임(적통을 잇는 세력은 다음 신천지로 이주하면 같은 지역임을 피하기 위해
한자만 살짝 바꿔서 지명이나 성씨 이름을 이어가서 역사적 흔적을 후대에 남김).
북위 출신 유유가 최종 승자가되어 환온을 죽이고 남경에서 남송[유송]을 건국하자
환현 일파가 양하사씨와 함께 동진황가를 이끌고 북발해만 요녕성 조양, 심양 옛낙랑국에서
낙랑 잔류인을 누르고 후동진을 세우며 여기에서 동수가 태어나고 고구려 고국원왕에 밀려
해주로 들어와 낙랑국을 이어가다 고국원왕이 한반도로 진출하며 황해도 안악에서 안악궁을건설하고
남평양이라 칭하자, 동수의 낙랑국이 해주 이남으로 밀려나고, 근초고왕과 근구수태자가
안악의 남평양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케 하고 낙랑왕 동수를 제후로 두고
동진 연호였던 태화를 4년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동진 황제국을 눌렀다는 의미로 동진 연호를 사용하는 것임].^
동수 일행은 그 후 익산 금마, 나주지방(예촉의 환온/환현가문 예장지방)으로까지 남하하여
예장라씨, 나주라씨, 금성라씨 등으로 분화한다.
사씨는 사택씨 [익산 금마 금성(알야산성), 사탁씨[침미다례국/ 진흥왕,진지왕 복속], 사마씨 등으로 분화한다.
>청주사씨, 거창사씨/ 신라 후기 김춘추가 나당연합을 결성하고 거열주[거창]로 창녕의 비화가야인 등
반도 서남단~중남단에서 서불한인들을 북쪽으로 대거 이주시키고
그 후에 훗날 청주, 거창사씨 등으로 분화한다.
서국[서남단~중남단 지방], 불국[창녕/비화가야], 한국[김천]인들은 반도 남단에서 정착하였다가
백제 멸망기 때 국경 강화와 나당 연합군을 지원하기 위해 축출되어 김춘추에게 강제 이주당하며
거창, 선산, 김천이북 조령의 국경 지역으로 보내진다].
사택씨와 진씨는 산서성 진성시 진평성(진평2군/ 고평시 고평성)에서 백제로 들어왔다가
익산 금마 연립 마한국(하한)의 수도 금성에서 금성라씨로 분화하였는데 진지왕의 침공을 받고
포로로 잡혀가서 나주, 경주 금성라씨 등으로 분화한다.
여수, 사천, 통영지방의 사탁부 세력이었던 진평왕 때 김춘추의 조부 진지왕을 4년이 되기 전에
폐위시키고 권력을 장악한다.
진평왕은 말그대로 산서성 진성시 진평성, 고평시 고평성 진평 2군에서 이주한 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진평왕계는 산서성 대동시 용성 서진에서 장치시 사탁지방을 거쳐 하남성 낙양으로 남하하는
사마선비족 사마염의 서진계이며 흉노계가 아님].
유유는 강소성 남경에서 안휘성 서화 옛 기자조선 탄생지( 실크로드 문물 소비 종착지)로 천도하고
동진(사마선비족 사마예)의 사마씨 사마혁, 사마덕종, 마지막 황제 사마덕문 일행은 일본으로 도해하여
성씨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일제시대 때 강소성 남경(난징)을 빼앗긴 원한을 풀려고 남경대학살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기도 함].
신라 찬양론에 억지 주장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동진의 수도 강소성 건강(견강/남경)에서 이러더라.
견강부회 [牽强附會] -동진의 수도 견강[건강/남경]을 흉노(회계)따위가 갖다 붙이려함.
근거가 없고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끌어대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맞춤,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대어 자기에 유리하게 이치나 조건을 맞추다.
견강부회 하지마라. (견강부회 뒤에 ~하지마라가 붙어)
동진의 수도 "건강 변방에 사는 것들"은 "건방 떨지마라."(건방-건강 변방에 사는 것들).
흉노(감숙성, 청해성 회계지방) 주제에 어딜 감히 중원통일을 꿈꾸는가??
말이라는 것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회계산(會稽山)은 원래 절강성 소녕(邵寧-샤오닝)시에 있는 산을 말하는데
이들이 영하성 회족 자치구로 이주하여 생성되는 지명으로 감숙성 돈황지구, 란주시, 청해성, 내몽고 서남부,
섬서성 북부, 산서성 서부 실크로드 문물이 지나가는 하서회랑, 하서주랑, 하서시랑 일대에서
활동하는 지역을 회계지방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감숙성 란주시, 장액시 주변 일대를 회계지방의 중심이라고 부른다.
대하의 혁련창이 회계왕(會稽王428~430)으로 떨어진 곳이 감숙성 란주시였다.
혁련창이 북위에 사로 잡혀 죽고 혁련정이 감숙성 평양시로 탈출하여 대선우에 즉위하였으나
역시 북위에 사로잡혀 살해당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각축전을 벌이며 안휘 동남, 강소 서북으로 밀려나는 세력을 사수지방, 회수지방이라고 한다.
절강성의 양자강 낙수까지를 강회지방이라고 한다.
기원전 494년부터 절강성 소주시의 월나라 구천과 강소성 남경시의 오나라 부차와의 관계는
오월동주 구부능선 관계로 10부능선으로 결코 완성되지 못하는 숙적관계(오월관계)였다.
중국 유전자- 대량>양나라(중국 산서성 양천시, 하남성 개봉시, 하북성 안양시, 강소성 양주시, 남경시 등에서
경기지방으로 밀려나는 유전자),
백제인(중국 산서성 진성시, 고평시, 장치시 장사지방, 하남성 정주시, 산동성 제남시, 동영시, 등주시 등에서
밀려난 한반도인.(개성, 서울, 인천(제남시 위례 백제인), 충남, 충북, 전북, 전남 영광, 장성,
담양등 북부지방과 일본으로 밀려나는 유전자).
동진인(산서성 장치시 사탁지방, 하남성 낙양시 서진인(사마염), 사천성 성도시>강서성 예장지방,
안휘성 동남부~강소성 서북 양하사씨 사안, 사현가문의 사탁씨,사택씨, 사타씨, 사마씨,
강소성 남경시 동진인(동수)이 한반도 익주(익산) 금마(사안,사현가문의 양하사씨, 사탁씨,사택씨),
나주(환온/환현가문의 예장라/나씨,나주라씨,금성라씨), 여수, 경남 사천 등으로 밀려나는 유전자).
사마씨 사마예의 황제가문(사마혁, 사마덕종, 마지막 황제 사마덕문) 일행은 일본으로 이주함.
일제시대때 동진을 빼앗긴 원한을 남경(난징)대학살로 보복함.
조선 초기 익주가 익산으로 변한 것은 익주의 인구가 전주, 군산, 완주 삼례 등으로 빠져나가
인구가 줄어 익산으로 변하는 것임.
(이방간 유배지로 재기를 꿈꾸려하자 징집될만한 자식이 있는 집이 피바람을 미리피해 익주를 이탈하는 것임)
전진과 후연 등 제후국인(티벳, 서역, 한반도 동남단 지방과 동남부를 거쳐 일본으로 밀려나는 유전자)
-그리고 안휘성 서화 기자 조선의 후예 서불한우로국인이 수현(수춘) 비수대전으로
광주,광산 우로국인의 선주민을 따라 한반도로 들어와 남해안 지방,그리고 서불한의 신라지역과
일본으로 이주함.(불국-창녕의 비화가야로 성장,한국(함국/김천/거창 거열주, 선산등 조령 이북 지방으로
국경강화와 나당연합군을 지원하기 위해 김춘추에 의해 강제 이주)
가야왕 김구해(구형왕>김무력>김서현>김유신)의 시조묘가 산청에 있어 구형왕이 태어난 곳은
산청임을 바로 알 수가 있으며,이를 통해 가야, 백제인의 실크로드 교통로 이주 루트를
경제 사학적 시각으로 가장 정확하게 증명할 수 있고, 가야, 백제인들이 김해 금관가야에 집결하여
일본으로 이주하는 배가 부산 동래항에 도착하면 그 인원수에 맞게 출발하여 이주시키면서
임시적으로 세운 나라가 임나가라 (임금님이 나오는 나라)이며, 나라를 세우자 신라의 공격으로
김해항을 통해 이주하다가 신라의 재차 공격으로 거제 견내량을 통해 이주한다.
신라 법흥왕의 수륙 양동작전으로 금관가야 구형왕 김구해가 거제에서 항복하게 되고
진흥왕의 팽창정책으로 북한산주(경기 광주, 여주, 이천, 충주)를 점령하자,
서기 540년 이후 6세기 중반부터 백제의 남진정책(510년)으로 백제 영향력하에 들어간 마산포로 옮겨
이주하게 되는 것이다.
태종 무열왕계는 김헌창의 난 이후 신라 왕 계보와 정치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첫댓글 화폐의 단위 기원: 리(厘)>푼(-)>전(錢)>냥(兩)>환(換)>원(元) - 10리는 1푼, 10푼이 1전, 10전이 1냥, 10(1)냥은 1환, 1환이 1원으로 바뀐 것인데, 최초의 화폐 단위인 리(厘)가 바로 감숙성 돈황지구 이리강의 이리하에서 나왔기 때문에 화폐의 단위로 리(厘)를 사용했던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