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유명 국사 강사 설민석씨가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한 것에 대해 '룸살롱 술판'으로 언급하고, 대표 손병희의 부인인 주옥경(朱鈺卿, 1894-1982)을 '술집 마담'이라고 칭해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적이 있다.
배우자
사별 초배 현풍 곽씨 부인
사별 계배 남양 홍응화
최후 삼취 신안 주옥경
그의 말은 이러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 있었습니다. 태화관이라고. 대낮에 그리로 간 거야. 그리고 거기서 낮술을 막 먹습니다. 마담 '주옥경'하고 '손병희'하고 사귀었어요. 나중에 결혼합니다. 그 마담이 DC(할인) 해준다고, 안주 하나 더 준다고 오라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체육과 출신 설민석 이런 개자식이 있나
그의 말은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이 사건은 단지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들에 대한 학문적 비판의 시각이라기보다는 극히 일면만을 본 매우 경박한 수준의 지식 전달이었다. 이 사건으로 비판을 받은 설민석씨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건 민사소송에서 25~100만 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는다.
.주옥경의 기명은 '주산월(朱山月)'이었다. 주옥경은 1894년 평양에서 태어나 14세에 평양의 기생학교에 들어가 여러 기예를 배웠다.
19세가 된 1912년, 서울로 올라와 '명월관'에서 일하게 된다. 명월관은 1918년에 화재로 불 타 없어지고, 명월관 주인이었던 안순환은 순화궁 터를 매입해서 '태화관'이라 이름 짓고 새로 개업한다.
주옥경은 여러 종류의 소리를 잘 했으며, 또한 가야금·양금·남무(男舞)·입무(立舞)·수심가 등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재다능하였다.
그림에도 능하여 특히 사군자를 잘했다. 그는 당대 저명인사들과 가까이 했는데, 단지 기생과 손님 이상의 예술가적 소통이 있는 특별한 인물이었다.
주옥경은 1915년 손병희와 결혼을 한 후에 본명의 한자를 새로이 바꿔 '주옥경(朱鈺卿)'이라는 이름으로 생활한다.
그러니 3.1운동 때에는 이미 기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손병희의 부인 역할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니 설민석 강사의 의견은 '주산월'이 비록 기생 출신이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설령 현직 기생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입에 담을 말은 아니다.
화가로서의 주옥경
주옥경은 특히 소리로 유명하였지만, 그림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다. 그의 그림은 매우 격조가 높았으며, 글씨 또한 일가를 이루었다. 평양 기생으로 그림으로 유명한 이 중에 강취운(康翠雲), 강윤화(康潤嬅) 등이 있지만, 그림의 격조로는 주옥경이 이들 못지 않았다. 그녀의 그림과 글씨가 일취월장한 데는 손병희와 가까워지며 주변의 명망 있는 인사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