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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3일 성령강림절 후 열넷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35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 시간입니다.
성경은 딤후 1:6-14절(신 343쪽)입니다.
찬송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의 설교 제목처럼, 오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매우 엄숙하고 비장한 바울의 유언적 명령입니다. 이 말씀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그리고 세상 종말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마지막 명령입니다.
1. 우리는 이 세상을 오직 하나님의 능력인 말씀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영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영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워하는 영은 마귀가 주는 영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두렵게 하여 사망으로 잡아갑니다.
광야를 걷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않고 자신의 눈과 귀를 의지하며 가다가 모세가 말한대로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신 1:19)에서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새로 태어난 광야 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광야를 걸을 때, 그 길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는 행진이요, 여행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세상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셔서 악한 마귀와 싸워 승리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이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1:1), 곧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하나님의 능력이신 복음으로 사는 우리는 부끄러워할 수 없고, 두려워하거나 낙심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절제하는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2,3)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너희가 천사의 말로 방언을 하고, 이방 종교처럼 신들을 위해 자기 몸을 불살라 바치는 열심이 있어도 교회공동체 가운데 연약한 성도들을 위하여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하나님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지만,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저주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들을 위하여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행하심과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교회공동체 안에 연약한 형제를 사랑하고, 나의 은사와 믿음, 열심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을 절제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고 구원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2. 우리도 바울을 본받아 복음 전파와 주 예수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8절에서 바울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율법에 대한 열심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가다가 예수를 만나 회심한 후에는 온전히 복음 전파와 주 예수를 위하여 살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바울은 AD 47-58년에 소아시아, 마게도냐 지방을 중심으로 1,2,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고린도 전,후서, 갈라디아서, 로마서를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한 죄목으로 61년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면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의 옥중서신을 기록하고,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는 또 다시 제 4차 전도여행에 나섰습니다.
바울 일행은 로마의 지배와 유대인들의 핍박 속에서 매를 맞고 굶주리며 옥에 갇히면서 유럽과 아시아 여러 도시들을 걸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개척한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이 잘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서, 또 복음을 계승할 다음 세대 우리들을 위해서 13권의 서신을 기록한 것은 바울 개인의 능력이나 지혜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된 것입니다.
바울의 1,2,3차 전도여행은 사도행전 13장부터 28장에 기록돼 있지만, 4차 전도여행과 그의 죽음은 사도행전에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사도행전 27, 28장에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잡혀오는 동안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와 바울의 복음 전도를 4차 전도여행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4차 여행은 바울의 목회서신에 기록돼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왜 바울의 마지막 전도여행과 그의 죽음을 기록하지 않았을까요? 사도행전은 사도 바울의 전기(傳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이방의 모든 나라로 복음이 퍼져간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사도행전 28장은 계속 복음이 전파되는 현재 진행형으로 끝나고 있습니다.(행 28:30,31)
바울의 4차 전도여행은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목회서신인 디모데 전, 후서와 디도서에 기록돼 있습니다. 바울은 세상 끝이라고 생각하던 서바나와 그레데, 에베소, 니고볼리를 거쳐 다시 로마 감옥에 갇힐 때까지의 전도여행을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 여러 군데에 기록하였습니다.(롬 15:24,28, 딛 1:5, 딤전 1:3, 딛 3:12, 딤후 1:17, 4:6)
바울은 4차 전도여행 중에 디모데를 에베소에 머물게 하였고, 디도를 그레데에 머물게 하여 그를 대신하여 목회를 맡기고 목회지침서인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그들에게 써 주었습니다. 바울은 순교하기 1년 전 로마 감옥에 다시 갇혔을 때 그의 유언적 목회서신인 디모데후서를 기록하고 68년 네로 대박해 때 순교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의 유언적 목회 서신입니다. 바울은 구약의 제사의식에서 희생제물 위에 부어지는 포도주처럼(민 15:1-10), 자신의 마지막 피 한 방울마저도 복음의 선한 싸움을 위해 바치겠다고 고백합니다.
“전제(奠祭)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사실, 그의 마지막 죽음은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바울은 임박한 죽음을 예견하고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오라고 부탁합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갔고, 디도는 복음을 전하러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말합니다.(딤후 4:9,10,11)
고난을 함께하며 복음을 전하던(몬 1:24, 골 4:14) 동역자가 하나님의 믿음을 떠나 이 세상 쾌락을 좇아간다는 것은 바울에게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감옥에 갇힌 자신을 돕던 사람들이 복음 사역을 위해 떠나가는 것도 한편으로는 기쁘고 좋은 일이지만 인간적으로는 매우 슬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마가를 데려오라고 부탁합니다. 한 때 다투고 결별했던(행 15:36) 마가는 바울의 1차 감옥에 함께 했고(골 4:10), 베드로와 함께 로마에서 복음을 전파한 사람입니다.(벧전 5:13) 우리는 사역을 하다 서로 다툴 수는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든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사도 바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육신의 안락함을 상으로 주시고 않고, 죽음을 넘어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생명과 의의 면류관을 예비해 주셨음을 우리는 깊이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1:8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본문 1:8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갇힌 자 된 나’라고 했는데, 바울이 2차 로마감옥에 갇혀 있을 때를 말합니다. 바울의 2차 로마 감옥은 1차 때와 크게 달랐습니다. 1차 감옥 때에는 셋집에 거주하며 사람들을 맞이하며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지만(행 28:30), 2차 감옥 때에는 추운 지하 토굴에서 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딤후 1:16)
바울이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디모데에게 당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개인적인 범죄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다가 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 숭배를 강요받고, 헬라의 이방신들을 섬기면서 자신들을 최고의 지성인이고 철학자라고 자부하는 로마인들에게, 아시아의 중심도시 에베소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이 바울은 감옥에 가둘 수는 있었지만, 바울이 선포하는 복음은 감옥에 가둘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유일하신 신이시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모든 만물의 아버지시라. 모든 만물 위에 계시고 모든 만물을 통일하시고 모든 만물 가운데 계시도다.”(엡 4:5,6)
바울이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 하나님도 많은 이방 신들 가운데 한 분이라고 말했으면 그는 감옥에 갇히지 않았고, 죽음에 이르는 고난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악한 이 세상 풍조 속에서도 만왕의 왕이신 주 하나님의 복음 전파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낙심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강한 자를 숭배하고, 약한 자를 핍박하는 세상. 돈을 사랑하고, 경건의 형식만 있을 뿐, 경건의 능력(생활)은 없는 세상 풍조는 말세에 나타날 징조이기 때문입니다.(딤후 3:1,5) 말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속사 속에서 도래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 말세는 먼 미래에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되었고, 오늘도 우리에게 오고 있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 중에 견딜 수 없는 박해와 고난을 당했지만,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다”(딤후 3:12) 말하면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고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종말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경건의 생활은 이 세상과 충돌할 수밖에 없고,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 가운데서 우리를 지키실 줄 믿습니다.
또, 우리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사(선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행위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주권)과 영원 전부터 예정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1:9,10) 세상 사람들은 예수의 십자가의 피를 의지하는 우리를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인생의 심판자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책임자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심판자요, 책임자는 오직 주 하나님 한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가 낙심해 있을 때 그냥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명을 다시 상기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우리 심령 속에 다시 불일듯하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스승의 십자가 죽음에 실망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 24:26)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그들이 마음이 불일 듯 뜨거워져서 곧 그 때로 일어나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남은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심령을 성경 말씀으로 뜨겁게 하시고 일어나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다 복음전파의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피할 수 없는 사명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내가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고전 9:16,17)
또, 우리가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하는 이유는, 내가 믿는 자를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1:12)
바울은 그가 믿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과 무한하신 사랑, 그의 신실하심을 확신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 역사를 생각할 때, 하나님의 아들을 육신을 입혀 이 땅에 보내어 우리 죄를 구속하신 그 사랑을 생각할 때,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택하시고 오늘도 성령 안에서 평안케 하시는 신실하신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나의 의탁한 복음,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주는 복음,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아름다운 복음을 여호와의 심판의 날까지 능히 지키실 줄 확신하기 때문에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명령합니다. 많은 증인 앞에서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들이 또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말합니다.(딤후 2:2) 우리도 충성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가르치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유언적 명령을 기억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대로 행하고, 복음의 약속을 확신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찬송 408장(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을 부르신 후에 성찬예식과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