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문 [跋]
이 책은 우리 선조고(先祖考) 부군(府君)의 어락정중건시집입니다. 부군께서는 만력(萬曆) 시대1)에 살면서 무인으로 왜놈[倭奴]을 모두 토벌하여 나라에 보답하는 충성을 능히 다하고 부모를 잘 섬겨 남달리 뛰어난 효우를 하였기에 문충공 서애 류선생(文忠公 西厓 柳先生)과 용만 권공(龍巒 權公)이 더불어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였습니다. 그 외에 여러 어진 이들의 서문(序文), 기문(記文), 장문(狀文), 갈문(碣文)은 사실대로 행한 것을 기록했는데, 그 처음부터 끝까지의 경과를 불초한 제가 어찌 감히 입을 열어 쓸데없는 말을 하겠습니까?
아, 부군의 세상은 멀고 오래되어 문헌(文獻)이 전하지 않아 기송(杞宋)2)처럼 고증할만한 문헌이 없어지게 되니 자손들의 품은 한(恨)이 어찌 다함이 있겠습니까? 또 정자가 무너진 터에는 공허하게 묵은 풀들이 뜰에 가득 차 느끼는 한을 금할 길이 없었는데. 단기 4280년[1947년] 정해년 봄에 소주의 실업리에 중건했는데, 탁 트이고 건조한 땅으로 조상의 덕을 추모하는 정성을 구실삼아 외진(外鎭) 종숙과 유진(有鎭) 족숙이 장차 부군의 그윽한 빛과 숨은 덕을 분명하게 드러내 밝히려고 강호의 여러 선비들에게 공의 행략(行畧)을 통고하여 사부(詞賦)를 간청하니 두 서너 달도 못 되어 주옥같은 시편을 모으니 거의 적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는 한미한 집안의 보물이기에 장차 책으로 간행하고자 유진 족숙이 노고를 돌보지 않고 동서로 분주히 그 허(虛)와 실(實)을 바로 잡고, 은(銀)자와 근(根)자를 헤아리니 더욱 빛이 났으나 다만 힘이 부쳐 완벽하게 완성하기 어려웠습니다. 내가 공적이 없고 힘을 다해 주선은 했지만 끝맺음을 하려고 하니 잃는 것도 많아 차례가 다르다면 매우 미안할 뿐입니다. 불초한 내가 정성이 없는 것은 삼가 그 이유를 뒷날에 기록하고자 합니다.
단기 4321년[서기 1988년] 무진년 경칩절에
후손 구한(龜漢)3) 손을 씻고 삼가 기록하다.
[ 右我先祖考府君, 魚樂亭重建詩集也。 府君生于萬曆之世, 以武人討盡倭奴, 克致報國之忠, 善事父母, 以爲絶人之孝者, 文忠公西厓柳先生, 及龍巒權公, 幷稱其美。其外諸賢之序記狀碣, 以實行錄, 其顚末, 不肖, 何敢開啄而贅說也哉? 嗚呼, 府君之世寢遠寢久, 文獻無傳, 以爲杞宋之無徵, 子姓之茹恨, 曷有其極? 且亭敗墟, 空宿草滿庭, 尤不勝感恨, 檀紀四二八十年, 丁亥春, 重建于韶州之實業里, 爽塏之地, 以寓追遠之忱, 外鎭宗叔與有鎭族叔, 將欲闡明府君之幽光潛德, 以行畧通告江湖諸彦, 懇請詞賦, 不數月, 瓊章之集, 殆不少矣。 乃寒家之寶, 以將欲付梓, 有鎭族叔, 不顧勞苦, 東西奔走, 正其虛實, 校其銀根, 尤有光焉, 而但力屈難成完璧。 余以無狀極力周旋, 欲成有終, 多有失, 次殊甚未安耳。不肖無誠, 謹記其由於下方云爾。
檀紀四千三百二十一年 戊辰 驚蟄節
十五代孫 龜漢盥水謹識 ]
1) 만력(萬曆)의 시대 : 만력은 명나라 신종(神宗) 황제 때의 연호(1573 ~ 1619)로 이렇게 표현한 것은 김세상이 임진왜란[1592~1598년]을 겪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2) 기(杞)ㆍ송(宋)처럼 고증할 만한 문헌이 없어지게 되니 : 문헌(文獻)이 남아 있지 않아 전통을 고증할 수 없음을 말한다. 기는 주 무왕(周武王)이 하(夏)나라 우(禹)의 후손인 동루공(東樓公)을 봉해 준 나라 이름이고, 송(宋)은 주 무왕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주벌하고 주왕의 서형(庶兄)인 미자(微子) 계(啓)를 봉해 준 나라 이름이다.
3) 구한(1938 ~ 2018) : 호 월산(月山), 경북 의성군 옥산면 실업리에 거주한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