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건축 방해하던 전도사 사망 김선도 김홍도 김국도 김건도 목사 어머니 이숙녀 전도사 간증
1970년 강원도 철원에서 영광교회를 목회할 때다. 시험 없이 성취되는 목회란 있을 수 없지만, 교회를 지을 무렵부터 큰 시험이 따랐다.
동네에서 교회 짓는 것을 방해하는 핍박자가 있었다. 의이 없고 기가 막혔다. 그는 이전에 전도사까지 하던 사람이었다. 충청도 사람인 그는 본 부인에게 자녀를 5명이나 두고도 첩을 얻어 철원에 와서 살았다.
그가 교회 터 옆에 살았는데 이웃의 술망나니를 충동질해 교회 건축을 방해했다. 자기 집 앞에 교회를 지으면 전망이 막히고 일조권이 침해된다는 것이다. 경찰서 지서에 그렇게 고발했다. 경찰이 조사를 위해 현장에 왔다. "이정도로 무슨 전망이고 일조권이냐. 자기들 땅 사서 그 땅에 교회를 짓는데 무슨 말을 하느냐"며 오히려 깨끗하게 쐐기를 박아주고 갔다.
그 후 전도사 출신인 그 사람이 맹장염에 걸려 수술을 했다. 나는 위문봉투를 준비해서 찾아갔다. 그는 나에게 "저런 늙은이가 무슨 전도사냐"고 비방을 했다. 그래도 나는 못들은 척 했다. 교회로 인해 동네에 화목이 깨어져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였다.
그런데 맹장염을 수술했던 그 사람이 수술한 자리에 큰 혹이 생겨 병원에 갔더니 피부암이라고 했다. 배창자에 큰 구멍이 뚫어져 그곳으로 대변이 나왔다. 그를 데리고 서울 성바오르병원에 갔으나 고치지 못했다.
나는 그 불쌍한 영혼이 구원받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마침내 그가 통곡하며 회개한다. “내 영혼을 구원하려고 짓는 교회를 반대하고 핍박했으니 내가 천벌을 받았구나.”고 했다.
내가 수시로 찾아가 먹을 것도 주고 성경을 읽어주니 나를 보고는 “전도사님이 내 믿음의 어머니요, 내 죄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1년 동안 버티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동네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어찌나 인심을 잃었는지 한 사람도 와보는 사람이 없었다. 교회에서 관을 사고 모든 장례를 치러줬다.
죽은 이와 함께 교회를 괴롭히던 술망나니는 위가 터져 입원했다. 내가 위문을 가서 돈을 주고 퇴원한 다음에도 계란과 고기를 사다주곤 했다. 얼마 후 자기 부인을 교회에 보내면서 자기는 부끄러워서 도저히 못나온다는 전갈을 해왔다.
죽은 전도사는 교회 뒷집이고 술망나니는 옆집인데 앞집에는 무당이 살았다. 그 무당이 아침마다 북을 치며 굿을 하더니 교회 음악종이 새벽마다 울려대니 아침에 굿을 못하겠다고 두 손을 들었다.
무당이 복막염이 심해져 수술을 하게 됐다. 위문봉투를 들고 갔더니 좋아하고 고마워했다. 동네에 교회가 들어오고부터 무당 일을 못하게 되어 수입이 없다며 한탄하면서도 교회에서 부흥회를 여니 부흥강사(순복음교회 이재성 목사)를 대접한다고 큰 상에 한 상 차려서 두 사람이 들고 가져왔다. “이것은 제사 안 지낸 깨끗한 것”이라며 꼬리말까지 붙여서.
동네에 떠돌이 노인이 있었다. 마땅히 있을 곳이 없었다. 교회에서 집을 하나 얻어줬다. 중풍을 앓는 독거 어르신도 김장을 담아주고 조석으로 식사도 챙겨주고 세탁도 해줬다. 영광교회 집사들은 동네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칭찬과 존경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