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999-기계제국의 최후] 라는 제목으로 [은하철도999]의 극장판이 비디오로 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남들 다 알고 나만 몰랐던 사실이라 할 지라도 이건 진짜 대단한 발견이다.
망설임 없이 빌려온 테이프를 비디오 데크에 밀어넣은 나.
비록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로 시작되는 김국환 아저씨의 주제가는 없었지만
철이와 메텔의 여정에는 세월을 뛰어넘어 시선을 잡아 끄는 힘이 있다.
좌석버스도 시내버스도 아닌 "레이지 버스"라고 까지 불리운다는(?)
원작자 마쓰모도 레이지의 심오한 작가세계 따위는 잠시 제쳐두고
[은하철도 999]를 바라본다면 이 작품은 종합선물과도 같은 소년 환타지의 구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연약한 인간들을 마구마구 괴롭히는 기계백작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기계화 행성을 찾아가는 들창코 소년의 모험담에는
다양한 인물들과 다양한 사건들이 쉼 없이 펼쳐지며 놓칠 수 없는 재미를 안겨준다.
연정을 바치는 아름다운 여인의 존재는 빼놓을 수 없으며 영웅이자 우상과도 같은 사내
(바로 마쓰모도 레이지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 하록선장이다) 마저 키 작은 소년의 어깨를 두드려 주니
이 얼마나 멋지고 환상적인 모험이냔 말인가.
그리고 길고도 험한 여정을 함께 하는 999호의 모습 또한 눈여겨 봐둬야 할 것이다.
향수를 자아내기 위해 구식 디자인을 선택했다는 막강 조연 투명인간 차장님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빠앙~!" 하는 우렁찬 기적소리를 뿜어내는 증기기관차 형태의 999호가 뽐내는
그 우아하고도 힘있는 자태는 어린 시절 설레이는 마음으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기차 여행의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철이의 옷차림과 들고 다니는 무기를 생각해보자.
길다란 망토와 챙이 긴 중절모, 거기에 전사의 총이라 불리우는 막강 화력의 레이져 건.
딱 보는 순간 떠오르는 것이 웨스턴 무비의 카우보이다.
어린 시절 한번쯤 쿨한 매력의 카우보이를 동경하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은하철도 999]에는 마냥 신나고 환상적인 여행길로 보기엔 너무 우울한 전제가 주어진다.
바로 모성의 결핍. 어머니가 죽는 순간
철이는 세계의 지배구조와 계급관계에 대해 각성하면서
현실의 부조리함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철이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모성의 결핍에 대한 끝없는 갈증인 것이다.
처음부터 "사랑 찾는 나그네의 불타 오르는 눈동자"와 "엄마 잃은 소년의 그리움 가득한 가슴"을 안고 시작되는 여행.
다른 평자들이 지적했듯 ‘999’라는 숫자에서 느껴지는
그 불완전성과 결핍에 대한 갈증을 채우려는 몸짓이야말로
[은하철도999]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의 육신을 빌어 등장한 메텔은 일종의 대리모임과 동시에
가슴속의 허전함을 채워줄 연인이다.
TV판에서의 메텔은 상당한 전투능력을 갖춘 미스테리의 여인으로써
철이의 든든한 보호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던 반면 극장판에서는 훨씬 연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모성과 이성으로써의 연정이 공존하는 관계.
그러한 관계의 중심에는 당연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존재한다.
모든 콤플렉스, 특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미숙함의 증거.
새끼새가 자라면 어미의 둥지를 떠나 자신의 삶을 시작하듯이
인간의 성장도 가슴 깊숙히 드리운 모성의 그늘을 떨쳐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철이의 어머니이자 연인인 메텔 또한 자신의 어머니가 드리운 막강한 영향력을 걷어내기 위해
펜던트 속에 봉인된 자신의 아버지와 비밀리에 교신을 한다.
메텔의 어머니이자 기계화 행성의 여왕인 프로메슘의 강권에 의해
철이 어머니의 육신을 빌은 클론이 되어버린 메텔 역시 올바른 모성에 대한 갈증을 간직한 인물.
결국 999호와 함께하는 여행길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치유해 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철이는 메텔의 모습에서 죽은 어머니의 모습을 느끼며 모성에의 결핍을 위로 받고
메텔은 그 유사 어머니의 위치에서 철이의 인도자가 됨으로써
프로메슘에 의해 뒤틀린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각성하기에 이른다. 그
리고 이들의 최종 종착지는 각자의 홀로서기이다.
철이는 메텔의 아버지가 자신의 강력한 에너지를 응축시켜
보관해놓은 펜던트를 내던짐으로써 프로메슘을 제압한다.
더 나아가 유사 어머니 메텔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만한 기계화 모성
"라 메텔" 마저 파괴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떨쳐내고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 마침내 홀로 서게 된다. 그
리고 메텔은 그런 철이를 떠나보냄으로써 그녀의 어머니 프로메슘은
해내지 못한 어머니로써의 임무를 완수한다.
이들이 각자의 길을 가는 라스트는 결국 철이의 성장을 의미한다.
생각해보면 기차는 그 무엇보다 성장 혹은 홀로서기라는 테마와 밀접해 있는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
시네마 천국]에서 고향을 떠나는 토토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던 것도 기차이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소년을 벗어난 청년의 인증과도 같은 군입대를 위해 타게 되는 것도 입영열차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이별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성장이란 이런 것이다.
철이를 떠나보내며 메텔은 말한다
"난 소년의 꿈속에서나 존재하는 청춘의 환영이야"
환영은 곧 지워지고 눈물은 증발된다.
환영을 떨궈낸 소년이 더 이상 울지 않을 때, 그 소년은 어느 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누구나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들뜨는 마음으로 즐거운 여행길을 꿈꾸지만
그게 꼭 생각처럼 좋은 방향으로만 진행되진 않는다.
끝없는 여행길과 같은 우리네 삶에서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이 때의 생각처럼 마냥 달콤하기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원했든, 원치 않았든 거부할 수 없는 순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내딛게 되는 한 걸음.
슬프지만 진실, 당연한 진리이지만 한편으로는 곱씹을수록 서글픔이 베어 나오는
이 사실을 999호의 승객들은 거듭되는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말해주고 있었다.
P.S 1 : 97년도에 출시된 "은하철도 999-기계제국의 최후"는 애니메이션으로써는 이례적으로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하나의 테이프 안에 수록되어 있다. 혹시 동네 비디오 가게에 이 작품이 보인다면 무. 조. 건. 빌. 려. 보. 시. 오.
P.S 2 : [은하철도 999]의 두 번째 극장판인 [은하철도 999 – 안드로메다 종착역]은 [안녕 은하철도 999]라는 제목으로 두 개의 테이프에 나뉘어 출시되었다. 전편만한 속편 없다는 속설 때문인지 아니면 같은 이야기를 두 번째 만들다 보니 그런 것인지 확실히 전편보다는 힘이 부족했다. 그러나 게릴라로 활동하던 철이가 메텔의 음성메시지를 받고 땅속에 묻었던 자신의 망또, 모자, 전사의 총을 꺼내 들고 은하철도 999호를 다시 타게 되는 초반 20분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첫댓글 멋지십니다
저래 긴 글을 힘들었습니다
만화 안좋아 했던 1인 이였는데 ~~
내용은 연관 안돼나 참 글 잘쓴다요
긴 내용 읽으며 지루한줄 모르고보았네요 ~~^^
언제 꼭 기회되면 보고는 싶은데 아마 현실 가능성이 있으려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