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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 갈라디아서 3장 10~29절,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으니
오늘은 갈라디아서 3장 10절 이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저도 설교 원고를 준비하면서 제가 진리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 생각하게 되는 그러한 말씀이었습니다.나눠드린 주보 교안을 보시면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갈라디아서 3장과 4장 단락은 이신득의의 복음에 대한 변증의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 소 단락으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먼저 3장 1절에서 5절은 유대주의자들의 미혹에 넘어간 갈라디아 성도들의 영적 어리석음에 대한 책망의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 9절 소 단락은 아브라함의 전례를 통해 본 이신득의의 역사성에 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10절에서 14절 소 단락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였음을 밝히는 중요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제 살펴볼 3장 10절에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율법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자들, 유대주의자들을 의미합니다.
10절 말씀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율법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 유대주의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이는 신명기 27장 26절에)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율법)을 항상 (지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하였기 때문이라)
[구약 율법은 그 특성상 모든 율법 조항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온전히 지킬 것을 요구하는데, 문제는 모든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의 문제나 율법을 주신 성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 의지를 통해 타락하고 악해진 사람의 문제입니다. 이처럼 죄에 오염된 악한 인간은 그 누구도 선하고 의로운 율법의 모든 조항들을 온전히 지킬 수 없으므로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에 율법의 저주문 아래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음을 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오늘날 구약 율법에 대한 통전적 이해가 없는 설교자들은 율법을 악한 것처럼 부정적으로 설명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율법이 악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악한 것입니다.]
나눠드린 교안을 통해서 우리 로마서 7장 12절을 보시면 우리 괄호 안에 있는 내용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이로 보건데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율법)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이러한 바울 사도의 기본 입장을 바르게 이해하고 율법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명기 30장 11절 말씀 보시면 내가(모세가) 오늘 네게(출애굽 2 세대에게) 명령한 이 명령(율법)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신명기 30장 14절 오직 그 말씀(율법)이 내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내 마음에 있은, 즉 내가 이를(율법을 충분히) 행할 수 있느니라.이 신명기의 말씀처럼 원래 하나님께서는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율법을 주신 것인데, 인간이 죄에 오염되어 악해지면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갈라디아서 3장 11절을 보시면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율법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하박국 2장 4절 말씀에 강조 표시합니다. 하박국 2장 4절 말씀에) 의인는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읽어드린 갈라디아서 3장 11절과 로마서 1장 17절은 모두 다 구약 성경 하박국 2장 4절을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예전에 하박국 대하 설교 시에 설명했던 것처럼 하박국 2장 4절의 문맥에서 말하는 믿음은 겸손한 믿음, 정직한 믿음, 성실한 믿음, 진실한 믿음, 충성된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 바벨론의 침공이라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중에 의인은 이러한 성경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입으로만 아멘, 아멘 믿습니다. 믿습니다 를 되뇌이는 그러한 추상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갈라디아서 3장 12절 말씀 보시면 (그러나) 율법은(유대주의적 율법주의는 11절 하반절과 같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오히려)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율법을 행함으로) 살리라 하였느니라.
[이렇게 바울은 11절에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과 12절에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 (별표합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13절) ★그리스도께서 (죄에 오염되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우리를 위하여 (율법의) 저주를 받은 바 되사(십자가에서 대신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신명기 21장 23절에)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3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율법의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함으로 인하여 받아야 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다는 진리의 말씀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속량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노예의 몸값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하고 노예를 자기의 소유로 만들어서 그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에서 유래된 표현입니다. 이처럼 진실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사역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본문에서 핵심적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되겠습니다.]
이제 14절을 보시면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약속된 성령)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 약속된 성령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성취가 되었음을 사도행전 2장에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10에서 14절 소 단락에서 바울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자들은 율법의 저주 아래에 있는 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자들은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어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교안을 보시면 15에서 18절 소 단락은 그리스도에게 집약된 아브라함 언약의 영원성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15절에 사람의 언약은 언어적으로 사람의 유언을 의미합니다.
15절 말씀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사람의 관례를 예로 들어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 사람의 유언)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바울은 사람의 유언도 함부로 무효화하거나 덧붙일 수 없다는 사실을 들어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었던 언약의 영원 불변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바울이 창세기 22장 18절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맺었던 그 언약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교안을 보시면 창세기 22장 18절을 보십니다. 창세기 22장 18절 또 네 씨(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제 갈라디아서 3장 16절을 보시면 16절 이 (하나님의)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네 씨라 라고 단수로 말씀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것이라 라고 바울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16절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 집약되어 있음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언약, 즉 이신득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온전하게 성취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17, 18절은 아브라함의 언약은 영원하여 그 이후 주어진 율법이 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폐하지 못함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17절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아브라함의) 언약(이신득의 복음)을 430년 후에 (주어진 시내산에서 받았던) 생긴 율법이 (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폐기하지 못하고 그 (율법이 그) 약속(아브라함의 언약)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17절에서 말하는 430년이라는 기간은 출애굽기 12장 40절에 외국 체류 기간에 근거한 것인데, 아브라함의 언약이 구체적으로 현실화된 야곱의 때, BC 1876년으로부터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진 때 BC 1446년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17절은 그리스도에게로 집약되는 아브라함의 언약이 시내산에서 받았던 율법보다 430년이나 선행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내세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구원받는다는 이 이신득의 복음의 역사성과 역사적 권위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이신득의 교리가 자신을 통해 새롭게 계시된 것이 아니라 율법이 주어지기 430년 전에 아브라함과 야곱 때로부터 이미 계시된 진리임을 6절에서 9절 소 단락에 이어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18절 말씀 만일 그 유업(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되는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그 유업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이처럼 15에서 18절 소 단락은 아브라함의 언약과 율법의 대조를 통해 이신득의의 역사성을 제시하는 강조하는 내용입니다.이러한 이신득의 복음의 역사성을 통해 아브라함도, 야곱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며, 이스라엘 역시도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출애굽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신득의의 복음이 온전히 주어지지 않았던 구약 시대에도 율법을 지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통해 이신득의의 역사성을 바울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은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은혜로 값없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후에 이제는 구원받은 백성답게 거룩하게 구별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법이었음을 우리는 분명하게 인지해야 합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바울은 19절 이하에서 하고 있습니다.
교안을 보시면 19절에서 29절 소 단락은 율법의 초등 교사로서의 역할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19절 말씀 그런즉 율법(의 역할, 율법의 목적)은 무엇이냐?
[율법이 구원의 문제와 상관이 없다면 도대체 율법은 무슨 역할을 하는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란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의문에 바울은 분명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9절 상반절 ★범법하므로 (악한 사람이 계속해서 죄를 지음으로 율법이) 더하여진 것이라
[본문은 악한 인간이 계속해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율법이 더하여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계속해서 죄를 짓는 악한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죄로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범죄적 성향을 억제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악하고 타락한 사람들이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부분입니다.하지만 구약 성경은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죄로 뚜렷하게 인식하게 하여 선과 악의 기준이 무엇인지, 인간이 왜 죄인인지, 그리고 그 죄의 대가가 얼마나 무섭고 참담한 것인지를 깨닫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19절에 범법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에 대한 일탈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성경적 정의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19절 중반절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모세)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그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제한적으로) 있을 것이라
[본문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이 제한적인 역할을 하다가 예수님께서 오시면 율법을 완전하게 하셔서 율법의 역할이 완전해지게 된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이처럼 율법은 복음과 하나가 될 때에 드디어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살펴볼 20절은 무려 수백 가지의 상이한 해석이 나올 정도로 원어적으로도 매우 난해한 구절입니다. 아마도 방금 해석한 19절 뒷부분을 한 번 더 강조하는 말씀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20절 그 중보자(모세)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절 그러면 (구약의)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이신득의의 복음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오늘날의 설교자들은 편향적인 시각을 가지고 율법과 복음이 마치 서로 반하는 것처럼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1절에서 바울은 그러면 구약의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 이신득의의 복음과 반대되는 것이냐? 강조 표시합니다.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혹자는 생각하기를 율법은 사람을 저주하기 위한 것이고, 오직 이신득의의 복음만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관찰에서 나온 심각한 오해입니다. 율법과 복음, 즉 구약과 신약은 반대되거나 상호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서 함께 발전되어 가는 동일한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 둘 다 한 분,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1절 하반절, 만일 능히 살게 하는(만일 구원을 목적으로)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본문은 율법을 준수하여 의로움을 얻는 것, 구원을 받는 것은 불가능함을 피력하는 내용입니다.]
22절. 그러나 (결과적으로 구약) 성경(율법)이 모든 것(사람)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결과론적으로는 율법이 사람을 죄 아래에 놓이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인간의 범죄적 성향이 율법을 범함으로 죄 아래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 율법을 범하는 인간의 타락한 죄성이 문제인 것입니다.]
23절. 믿음이 오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속량해 주시기 전까지) 우리(인간)는 율법의 (저주)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그 율법의 저주에) 갇혔느니라
24절 ★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같이 (구약)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 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초등 교사의 역할을 구약 율법이 하는 것입니다. 율법이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두려워하게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바로 이 율법이 하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도록 해서 그리스도께로 안내하는 율법의 이 중요한 역할을 우리는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25절.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 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5절은 이제 구약 율법은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구약 율법이라는 기초적인 진리를 수용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사도들을 통해 증거된 고차원적인 신약의 진리까지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구약과 신약의 모든 말씀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약의 고차원적인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약의 기초적인 진리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6절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절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오,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약속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을 자니라.)
19절에서 29절 소 단락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을 기억해야 합니다.
율법은 원래부터 구원을 얻게 하려는 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범죄적 성향을 억제하고 성화 거룩의 기본기를 닦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신 것임을 우리는 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구약 율법에 대한 통시적 이해를 갖지 못해 율법은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은 여전히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 율법을 선한 행위의 기준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안을 통해서 마태복음 5장 17절, 18절 말씀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 세상 종말이 오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지막으로 야고보서 2장 12절의 말씀을 우리는 가슴에 철필로 새기기를 원합니다.
우리 야고보서 2장 12절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자기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야고보서 2장 12절에서 야고보 장로는 구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자유자로서 감사한 마음으로 마땅히 거룩의 기본이 되는 율법을 자발적으로 지켜야 함을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결코 쉽지 않은 갈라디아서 3장 10절에서 29절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묘한 섭리 가운데 우리에게 너무나 희소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이 말씀을 공부하시고 상고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평안을 허락하시고 예배의 자리로 나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진리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깨닫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을 허락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 증거된 이 진리의 말씀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에게 밝히 이해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리며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축도문]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구별된 것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와 예물을 올려드립니다. 받아주옵소서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놀라우신 사랑과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이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심이 율법과 복음에 대한 오해를 수정하고 바른 이해를 가질 것을 다짐하는 성도들 머리 위에 이제부터 함께 하오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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