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창조적 사랑
10/29화(火)눅 15:11-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눅 15:24).
다가오는 2050년에는 지구 평균온도가 6도 이상 올라감으로써 환경 재해를 넘어서는 환경 파멸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자연을 풍요롭게 하고 생명을 주는 것인데 인간의 탐욕과 교만으로 자연까지 병들고 사막화되어 죽어 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을 모르고 체험하지 못하면 병들고 사막화되어 죽게 됩니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요일 4:4-10). 이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우주적인 사랑을 체험해야 모든 것이 복되게 회복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적인 사랑입니다.
▣인간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는데 작은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재산 가운데서 내게 돌아올 몫을 내게 주십시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살림을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제 것을 다 챙겨서 먼 지방으로 가서 거기서 방탕하게 살면서, 그 재산을 낭비하였다”(눅 15:11-13). 작은아들은 불법을 범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죽어야 유산 분배가 이루어지는데 자식이 그것을 요구하니 아버지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허용해 주십니다.
▣인간이 자신의 잘 못을 돌이키게 하는 사랑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은 잘못된 것을 깨닫고 돌이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허용하시지만, 경계를 넘어선 잘못에 대해서는 그것을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십니다. 이것을 회개라 합니다. 잘못한 것은 문제가 되지만 진정한 회개는 창조적 사랑입니다. 이렇게 할 때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됩니다. 본문의 둘째 아들은 분명 잘못하여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 못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은 끝까지 기다려 주시는 인내의 사랑입니다.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눅 15:20).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은 인간을 기다려 주는 인내의 사랑입니다. 인간은 끝까지 기다려 줄 힘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가 잘해서 구원받은 것 같으나 실은 하나님이 무한한 인내의 사랑으로 우리를 여기까지 오도록 기다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은 회복의 사랑입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벌였다”(눅 15:22-24). 아버지는 옷, 가락지, 신발 다 제일 좋은 것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십니다. 세상은 잃어버리면 다 끝나고 나중이 나빠지지만 우리는 나중이 좋아지고 죽어도 천국입니다. 오직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입니다.
And...
대부분 성도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환경이 열리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기뻐합니다. 저 역시 신앙 초년병 시절에는 내가 원하는 기도 응답을 주실 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아 답답하고, 속이 상할 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체험하고 나니 온 우주가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신앙이 성장하니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여짐이 내게 얼마나 큰 유익인지 깨닫습니다. 이제 조금 철이 든 자식이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본질을 먼저 생각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성공해도 그 성공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진다면 그 성공은 결코 내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8장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이란 풀무에 넣어 이 세상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먼저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삶에서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되고, 말씀 자체이신 하나님을 더 많이 신뢰하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이 변화되어 가는 것을 보며, 그 일을 위해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할당된 사람들에게 잘 정리해서 보낼 뿐인데, 부지런히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톡을 읽은 여러분들이 주변 사람들의 변화를 알리며 위로와 용기를 주십니다.
이것은 나는 감각으로 느끼지 못하지만, 분명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또다시 내 마음 판에 주님의 말씀이 새겨집니다. ‘너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네 모든 것을 더하여 주리라.’ 하나님의 생명이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지기를 소망하는 일들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또한 주님이 나를 통해 하시는 일이기에 내가 할 일은 그저 도구로 쓰임 받을 뿐입니다. 부족한 자를 통해 주님이 나타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의 창조적 사랑은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며 그 뒤에서 함께 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외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합 3:17-18).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안에
https://youtu.be/lxe5Akjq2V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