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연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6 ('16.10.26~28)

[빈들]

춘천에서의 행복한 하룻밤을 보내고 남이섬을 향한다. 남이섬을 향해가는 곳곳에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은 가을풍경이 아름답다. 마지막 불꽃을 사르는 오색의 물결이 출렁인다. 자신을 불태울때 비로서 피어나는 진한 자아.. 그것은 아름다움으로 때론 연민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가을 끝자락에서 느끼는 이 감회와 회한의 되풀이에서 인생도 깊어진다.

황혼을 이처럼 아름답고 화려하게 꽃필 수 있을때 잘살아온 삷일게다. 맥없이 쓰러지는 황혼이 아니라. 저 찬란한 단풍처럼 고운 빛깔로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바람에 뚝 떨어지는 그런 여정이라면 그는 행복한 삶을 산거다.

남이섬 선착장에는 인산인해다. 평일인데도 수많은 인파로 들끓었다. 한적한 남이섬을 생각했다. 남이섬에서 가을을 마음껏 마시고 여유를 찿고자 했다. 완전히 빗나갔다. 모처럼 아내와 호젓하게 가을속에 푹 빠져 사념에 빠질 생각이었다. 벤치에 앉아 가을이 가는 소리를 듣고, 조용한 카페에서 진한 아메리카노 향을 마시며 연구실로 그 향을 배달한 친구 교수의 고마움도 되새기고 싶었다.

애틋하고 애련한 사랑이 이 남이섬을 온통 사랑의 물결로 만든 것은 좋은 일이나 그 애절한 사랑을 구가 하기엔 너무도 번잡하고 잡탕이 된듯하여 안타까울뿐이다. 그 가슴졸이며 안타까운 사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한류 열풍을 타고 날아온 수많은 외국관광객과 국내 관광객이 뒤범벅 되면서 겨울연가는 시끄러운 소음속으로 사라졌다.

겨울연가를 상상하며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을 환경은 사라졌다. 형식만 자리한다. 겨울연가 촬영지에서 기념사진 한장 남기는 것조차 의미를 잃어버릴까봐 안타까웠다. 세상을 들끓게 했던 겨울연가는 폭풍 반응으로 국내를 넘어 아시아로 한류를 몰고오며 그 촬영 현장인 남이섬이 최대의 관광지가 되었다. 관광지가 되면서 그 사랑의 아픔에 함께 하고 싶은 감수성 풍부한 연인들의 자리는 이미 날아가 버렸다고나 할까?

우리 부부도 그런 사랑과 꿈을 갖고 여기에 왔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를 찾기엔 부적절한 곳이 되어 너무도 아쉽다.

가을이 되면 심호흡을 한다. 언제나 그랬다. 못견디게 쓸쓸하고, 우수에 젖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흔들리고, 가을을 앓았다. 심하게 앓았다. 앓은 만큼 성숙해가며 오늘까지 왔다.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사랑도 화학작용의 하나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귄지 18~30개월이 되면 항체가 생겨 사랑과 관련된 화학물질이 더 이상 생기지 않으면서 시들해진다고 한다. 옛 말에 결혼한지 3년이 위기라는 이야기가 근거 없는 얘기가 아니다.

사랑의 단계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열정적 단계-사랑을 하는 단계-머무는 단계를 거쳐 안착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단계인가? 당연히 머무는 단계다. 라쉬 교수는 머무는 단계를 '차가운 세상에 있는 천국'이라고 했다. 즉, 머무는 단계는 서로의 삶을 나누며 따뜻함과 부드러움 속에 살아 행복하고 편안함 가운데 서로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말한다. 머무는 단계에 비로소 정착할때, 진정한 사랑의 존재로 평온한 부부가 되는 것이다.

사랑의 단계와 이치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보다더 아름답고 행복한 사랑의 완성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아름다운 환경에 부닥치면 '머무르고 싶다'는 말을 한다. 머무르고 싶다는 것은 그곳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당신 속에 머무르고 싶다'라는 말은 당신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겨울연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남이섬을 거닐면서 우리 부부의 삶도 머무는 단계로 깊숙히 와 있음을 발견한다. 어느새 많은 세월을 함께 했다.

군중 속에 고독이라 했던가? 시끌벅적한 남이섬에서 그래도 남아 있는 가을의 자취가 듬뿍 살아 있는 갓길을 걸으며, 분위기 있는 장소를 택해 가며 우리만의 '머물 수 있는' 그런 곳들로 거닌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을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아름답게 머문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가을을 사랑하여 운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그 복잡함도 다시 사랑스런 마음으로 변화됨을 발견한다.

아, 그렇게 생각하자. 저들도 나와 같이 한적하고 여유로운 남이섬을 그리워하며 찾아왔다가 수많은 인파에 놀란 사람들이라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각고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다. 겨울연가의 그 애틋하고, 애련하며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의 흔적들이 날아간 이 복잡한 남이섬이지만 그래도 사랑의 의미와 부부란 어떤 것이며 다시 한 번 사랑의 단계를 회상하는 기회가 되었다.

부부가 함께한 2박3일의 가을 여행은 가을 정취와 중간 중간 소중한 아들과 친구도 만난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음을 감사한다. 2016년 가을은 '머무는 연가'로 우리 부부만의 가을로 남겨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