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폴 벨몽도(Jean-Paul Belmondo 1933년 4월 9일 ~ )은 프랑스의 배우이다.1960년대 프랑스의 '누벨바그(뉴웨이브)' 영화에 출연하였고 《네 멋대로 해라》(À bout de souffle 1960년) 장 뤽 고다르 감독.《레옹 로랭 신부》(Leon Morin Priest 1961년) 장 피에르 멜발 감독.《밀고자》(Le Doulos 1962년) 장 피에르 멜빌 감독.《리오의 사나이》(L'Homme de Rio)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을 하였다.
첫 영화로 인생의 대전환점을 찍고 영화사에 획을 그은 작품을 만든 감독보다 행복한 영화인은 없을 것이다.
장 뤽 고다르는 데뷔작 <네멋대로 해라>(59)로 영화의 규칙을 바꾸고 새로운 "영화보기"를 제안하며 누벨바그의
포문을 열었다. 이 작품에서 탄생한 행운의 반 영웅이 장 폴 벨몽드. 중절모에 담배를 문 건달 청년 미셀 프와카르
(장 폴 벨몽드)는,차를 훔치고 어쩌다 미국여자(진 시버그)와 함께 경찰에 쫓기게 되는 건달이다. 40년대 헐리우드
갱스터영화의 로맨틱한 분위기를 비꼬아 반 사회적인 인물을 그려낸 이 작품은,기존의 영화관습을 무너뜨리는 파격적인 캐릭터와 카메라 워크로 비평가들의 강렬한 주목을 받았다. 바야흐로 영화는 문학이나 연극이 아닌 카메라의 이미지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프랑소와 트뤼포 시나리오, 장 뤽 고다르 연출, 장 폴 벨몽드 주연의 3박자는 이로써 누벨 바그의 이름을 창조했다.
당시 26세였던 청년 벨몽드는 건들거리는 유머와 니힐리스트의 눈매로 스타덤에 올랐고,그후 20여년간 프랑스에서
해마다 "인기 베스트 10"에 꼽히는 스타가 되었다. 알랭 들롱이 차갑고 잘생긴 배우라면 벨몽드는 복싱선수처럼
거친 외모와 유머가 있는 인물형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1933년생. <네멋대로 해라>, <여자는 여자다>(60),<미치광이 삐에로>(65) 등 고다르의 문제작과,프랑소와 트뤼포 감독 <미시시피의 인어공주>(69)에 잇달아 출연해,누벨 바그의 상징적인 배우가 됐다. 그러나 여전히 누벨 바그는 비대중적이며 흥행과는 거리가 먼 지식인 영화였다.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랭 들롱과 벨몽드를 한 화면에 묶어놓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자크 드레이 감독
<볼사리노>(70) 덕분에 이 둘은 70년대 최고 인기 배우로 발돋움한다.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말까지 프랑스
오락액션영화는 벨몽드와 알랭 들롱을 양축으로 호황을 구가했다. 80년대 벨몽드는 알랭 들롱처럼 "세리토"라는
자신의 제작사를 설립해 연기와 제작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중 <인생의 여정>(88)은 세자르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은 수작으로 부유한 사업가가 인생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그렸다. 밸몽드의 깊은 주름처럼 생의 깊이를
보여주는 성장영화로 벨몽드 말년의 중후한 연기가 돋보인다.
<20세기 레미제라블>(95)도 노인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새로운 성격의 현대판 <장발장>을 제시하고 있다.
서정적이면서도 위엄을 잃지않는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멜로드라마다. <욕망>(95), <백하룻밤>(95)을 비롯 환갑을 넘기고도 영화 활동을 쉬지 않는 노장 벨몽드에게,프랑스 정부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