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슬 - 양희은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양희은]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에 서울 YMCA가 운영하던
청소년 쉼터 "청개구리"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바로 양희은의 음악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인 김민기였다.
김민기가 없었다면 현재의 양희은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육군 대령이었으나,
39세의 나이로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집안이 기울어 대학시절 끼니는
물론이고 교통비조차 없어서 걸어다녔다고 한다.
이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해야만했고 무대에 올려 달라고
부탁했던 사람이 바로 송창식이었다.
송창식은 자신이 노래를 부르던 명동의 맥주집에 데리고 가서
자신의 공연시간 10분을 떼주면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놀러와 설날 특집 세시봉 콘사트때 양희은이 직접 언급.
송창식에게 '형 저 노래 하고 싶어요' 라고 하자
송창식이 '노래 하고 싶어?' 라고 묻고는 자신이 공연하던 맥주집에
데려가서 자기 공연시간의 일부를 때줘 무대에 세워줬다.
받아준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양희은은 맹랑하게 사장에게
가불을 부탁했고 4만원을 받아냈다.
당시 국립대학교 한학기 등록금이 7천원이었다.
사장이 엄청난 대인배였던 셈.
물론 송창식을 믿고 내준 게 더 컸겠지만.
사람 추천 안하기로 유명한 송창식이 추천한 사람은
양희은이 최초라고 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가수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1년 9월에 발매된 양희은의 첫 정규앨범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을 냈는데
여기에 수록된 김민기의 "아침 이슬"과 "세노야 세노야"는
양희은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