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
사도행전 9장 26-27절『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바나바의 사울에 대한 보증과 새 삶을 시작하게된 사울의 증언, 그리고 그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교회는 안정을 찾아갔다. 온 유대와 갈릴리, 사마리아 교회가 든든히 서가게 되었다. 이제 변화된 사울에게는 죽음의 위협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의 든든히 세워짐과 부흥 뒤에는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되는 사울의 인생이 전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겉으로 든든히 서가는 무대 뒷편에서는 죽음의 위협을 감수하며 증언하는 변화된 바울과 같은 사람들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나바가 사울을 다른 제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세가지였다.
첫째는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 말한다. 사도행전 9장 3절『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빛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1장 1절『태초(엔 아르케)에 말씀이 계시니라(엔)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그리고 1장 4절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헤 조에)은 사람들의(톤 안드로포스) 빛(엔 토 포스)이라』라고 말한다.
엔 아르케 (Ἐν ἀρχῇ) 엔(~안에) 아르케(처음에, 첫번째에)는 엔과 여격명사가 결합되어 있어서, 시간적 태초가 아니라 첫째되는 분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베레쉬트(태초에)와 같은 개념이다. 첫째 되는 분은 바로 성도를 이끄는 호 로고스(말씀이신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헤 조에(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엔 토 포스(ἦν τὸ φῶς)는 『그 빛으로』이다. 관사가 있으므로 특별한 빛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그 빛을 받은 사람들은 성도들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소유한 특별한 사람(톤 안드로포스)을 의미하며, 생명은 부활생명을 의미한다. 번역을 다시 해보면『호 로고스께서 비춰주는 부활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그리스도)은 그 사람들(성도)의 빛이라.』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춰주시는 빛은 부활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활생명을 소유한 성도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부활생명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라고 했는데, 여기서 빛이 바로 특별한 빛(토 포스)인 것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부활생명)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므로서 그 빛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성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이다. 성도는 먼저 어둠에 있는 자신을 비추고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빛을 비추는 것이다.
둘째는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이다. 사도행전 9장 4절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데 앞장섰다. 스테반을 돌로 쳐죽이는데, 증인이 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을 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이유는 그의 입장에서는 기독교는 이단이었던 것이다. 율법을 기준으로 유대교 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고, 예수는 이단자로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는데, 그의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외치고 있었으므로, 사울은 제자들을 없애야 할 존재들로 여긴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빛으로 나타나셔서, 사울에게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날 교리에 사로잡힌 신도들은 영적 부활과 현재적 부활에 대해서 이단이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성도들을 핍박한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이 성경 말씀 속에 기록되어 있는데, 영적인 눈이 감겨져 있어서 보지 못하고,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깨달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성도가 말씀을 전할 때, 예수님이 역사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서 듣지 못하면, 영적인 맹인인 것이다.
셋째,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엔 토 오노마티 투 예수) 담대히 말하였다는 것이다.
『엔 토 오노마티 투 예수 ἐν τῷ ὀνόματι τοῦ Ἰησοῦ.』는 예수의 이름 안에서 라는 의미다. 예수의 이름 안에서 라는 의미는 예수를 통하여 말을 하는 것이다. 단순히 이름인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연합되어, 그 분의 음성을 듣고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사울이 말을 하지만, 예수님이 사울의 입을 빌려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이 아닌 교리로 예수를 전하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역사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역사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였음을 믿어야 하며, 믿는 자에게 예수님이 역사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전하는 핵심의 내용이 부활생명이기 때문이다.
부활생명은 바로 죄인이 하나님 나라로 복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죄인된 사람들은 영이 육체에 갇혀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부활생명을 받으면, 육체로부터 자유함을 입어서 하늘에 앉힌 바 되는 것이다. 현재 살아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5-6절에서『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육체로 인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음을 보지 못하지만, 영의 눈으로, 믿음으로 이런 일이 되었음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믿음대로 된다고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 믿음은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인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2-24절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