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 처치하고 족장된 동쪽별은 ‘비손’선지자를 만나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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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 칠포리 암각화군은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포항시 북구 흥해읍 칠포리 일원에 위치해 있다. 1989년 11월, 고대문화 연구모임인 ‘포철고문화연구회’에 의해 발견되었다. |
#1. 선사시대인의 염원을 담은 바위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인 1970년 겨울, 울산 언양면 일대에서 불교유적을 조사하던 동국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기이한 바위그림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암각화(岩刻畵)였다. 고대미술사의 한 분야이기도 한 암각화, 혹은 암화(岩畵)로도 불리는 이 바위그림은 주로 선사시대의 인간들이 바위표면에 천연물감이나 또는 어떤 도구를 사용하여 그림을 새긴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이제까지 발견된 암각화는 모두 물감을 사용하지 않은, 새김법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새김법이란 흑요석이나 화강암, 석영 따위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돌이나 청동, 혹은 다른 견고한 도구를 사용하여 바위표면을 쪼아내거나 파거나, 갈고, 그어서 새기는 것을 일컫는다. 당시 울산 천전리 계곡의 암벽에서 발견된 암각화는 동심원을 비롯한 갖가지 기하학적 무늬와 사슴 따위의 동물상과 인물상, 또 신라의 화랑들이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글씨가 새겨진 거대한 바위그림 등이었다. 이후에 재차 고령군 양전리에서 독특한 형식의 기하문(幾何文) 그림이 발견되었고, 첫 암각화 발견이 있었던 다음 해인 1971년 12월에는 울산 대곡리 태화강 강변 절벽에 고래를 비롯한 육지동물과 춤추는 인물 등이 조각돼 있는 것이 새롭게 발견되었다.하늘의 계시받은 선지자
남정네들에 명령했다
“대지의 어머니를 불러라”
바위에 표식이 새겨지고…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들
해석 분분해 궁금증 증폭
국내의 역사학계는 물론 고고학계, 미술사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암각화의 발견은 일반인들에게까지 한반도에 기거했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신앙, 문화 전반에 걸친 지적인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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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포리의 암각화군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신앙, 문화 전반에 걸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암각화가 새겨진 칠포리의 바위 주변에 보호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
이런 가운데 영일 칠포리 부근에서 바위그림이 발견된 것은 1989년 11월이었다. 고대문화 연구모임인 ‘포철고문화연구회’에 의해 새로이 고인돌에 새겨진 바위그림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뒤이어 동 단체의 지속적인 조사활동에 의해 그림이 조각된 바위와 그림의 가짓수가 계속적으로 늘어났다. 칠포해수욕장 뒤편 곤륜산(昆崙山) 자락과 농발재의 바위들, 그 사이의 구릉지대에 분포하는 고인돌에 남아 있는 칠포 바위그림은 돌칼이나 돌화살촉, 이른바 성혈(性血)이라고 부르는 둥글게 움푹 파인 크고 작은 바위구멍들과 다양한 기하학적인 무늬 등이 있다. 다양한 그림만큼이나 해석 또한 분분하여 바위그림이 사람의 얼굴을 그린 것이라거나 추상화된 가면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철기시대의 방패를 상징하는 ‘방패문 암각화’라는 해석도 있다. 돌칼의 손잡이를 닮은 모양이어서 ‘검파형(劍把型) 암각화’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그 다양한 해석의 이면에는 아주 오랜 옛날인 선사시대 사람들이 ‘과연 어떤 소망과 기원을 품고 이러한 기이한 암각화를 제작했을까’라는 의문이 포함되어 있다. 그걸 안다면 암각화에 새겨진 그림의 의미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상으로나마 당시 암각화를 그릴 때의 상황을 스토리로 구성해본다.#2. 선지자의 지혜가 깃든 곳지팡이를 짚은 ‘비손’선지자가 사방을 둘러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거칠게 무두질하여 말린 담비나 사슴, 늑대 등의 짐승가죽으로 몸을 가린 한 무리의 남정네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의 손에는 돌망치나 석영으로 만든 돌촉 따위의 연장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부족민들 중에서 선별된, 남다른 감각과 손재주를 가진 예인들이었다.허리까지 우거진 잡초와 들꽃을 헤치며 한참 비탈진 사면을 올라가자 소나무가 듬성한 작은 언덕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부가 둔덕을 이뤄 아늑했고, 신령스러움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부근에는 몇 개의 커다란 황적색 바위가 기이한 자태로 솟아나 있었다.걸음을 멈춘 ‘비손’선지자가 지혜가 깃든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하늘과 해의 방향, 지형과 바위를 세세하게 살폈다. 남정네들은 선지자 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외경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제 부족민들의 앞날은 ‘비손’선지자의 손에 달려 있었다.폭군 ‘불뫼’를 단숨에 처치하고 족장자리에 오른 ‘동쪽별’이 부족 청년들을 풀어 ‘비손’을 찾아 나선 이유도 거기 있었다. 두 봄이 지난 끝에 마침내 ‘겨울동굴’에 은거하고 있던 그를 모셔온 것도 ‘비손’선지자의 놀라운 능력을 들어 알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부족민들은 잘 알지 못했지만 ‘비손’선지자의 능력과 행적은 사람들 입을 통해 전설처럼 전해져 오고 있었다. 아무도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나이가 몇인지도 몰랐다. 다만 사람들은 ‘비손’선지자가 세상의 모든 일을 헤아리고 있으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액운과 부정을 방지하고 하늘의 뜻을 전달해주는 신인(神人)이라고 믿고 있었다. 돌림병으로 전멸 위기에 처했던 어느 부족도 그의 도움으로 다시 번성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부족장이 된 ‘동쪽별’이 서둘러 ‘비손’을 찾아 모시게 한 것도 부족에 드리운 무서운 재앙의 그림자를 걷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 부족에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재앙이 찾아온 것은 ‘불뫼’가 부족장이 된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당시 수십 개의 봄이 지나도록 평화롭게 부족을 다스리던 족장 ‘큰바위’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아들에게 부족장 자리를 넘길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에게는 두 아들 ‘불뫼’와 ‘승냥이’, 그리고 비슷한 또래의 양아들인 ‘겨울강’이 있었다. ‘큰바위’가 청년이었던 어느 날, 그는 친구들과 함께 들소사냥을 나갔고, 돌창을 빗맞아 한껏 사나워진 들소의 공격을 받았을 때 이를 막아서서 생명을 구해준 친구가 있었다. 그때 입은 상처로 친구가 죽은 뒤 ‘큰바위’는 친구의 아들인 ‘겨울강’을 자신의 양아들로 받아들였던 것이다.#3. 대지의 어머니를 부르다‘큰바위’가 판단하기에 ‘겨울강’은 부족의 융성을 가져올 훌륭한 부족장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온화한 심성에 어려운 일에 앞장설 줄 아는 용기를 갖추고 있었다. 그에 비해 두 아들은 오만하고 고집이 셌으며, 시기심과 욕심이 많았다.그런 어느 날이었다. 부족장 선출을 하루 앞두고 두 아들을 집안에 불러들였을 때 ‘큰바위’가 돌연 숨을 거두었다. 마침 양아들인 ‘겨울강’은 사랑하는 부족처녀인 ‘가을꽃’과 들판에 나가 있을 때였다. 부족장의 큰아들 ‘불뫼’는 부친이 운명하기 직전에 자신에게 족장을 맡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말했다. 동생 ‘승냥이’도 이에 동의했다. 의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으나 부족민들은 두 아들의 말을 믿었다. 그때부터 ‘불뫼’는 족장의 권세를 마음껏 휘둘렀다. 동생을 자신의 호위대장으로 앉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늙은 원로들을 자리에서 쫓아냈다. 부족의 처녀들을 뽑아서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또 항시 자신의 땅이 좁다고 투덜대던 ‘불뫼’는 이웃부족에 전쟁을 선포했다. 많은 부족민들이 전쟁 중에 죽거나 다쳤고, 이웃부족의 젊은 여자들이 육욕의 희생물이 되었다. 전쟁에 승리하고도 ‘불뫼’의 욕심은 채워지지 않았다. 반역을 꾀했다는 이유로 ‘겨울강’을 죽이고, 그의 여자 ‘가을꽃’을 강제로 범하고 죽게 만들었다.부족민들이 정성으로 섬기던 여신(女神) ‘대지의 어머니’가 부족을 떠나간 것은 이즈음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이상한 일들이 거듭되었다. 먼저 짐승들이 새끼를 배지 않았다. 새들도 알을 낳지 않았고, 나무들은 열매를 맺지 않았다. 태어난 아이들이 자다가 이유 없이 죽는 일이 잦았다. 자주 비가 내렸고, 들판의 곡식들은 쭉정이로 말라갔다. 사냥할 짐승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밤하늘에는 무시무시한 유성이 불꽃을 남기며 지나갔고, 밤마다 죽은 자들이 슬프게 울며 숲 속을 걸어 다녔다. 결국 참다못한 부족의 청년 ‘동쪽별’이 야음을 틈타 몇몇 청년들을 이끌고 족장의 숙소를 습격했고, 흉포한 부족장 ‘불뫼’와 그의 동생 ‘승냥이’를 죽였다. 부족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족장자리에 오른 ‘동쪽별’은 ‘대지의 어머니’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어렵게 ‘비손’을 모셔오기로 했던 것이다. “이 자리에 ‘대지의 어머니’를 부르는 표식을 새기어라. 표식은 내가 알려주마.”준비해온 재물을 바친 뒤 한동안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려 하늘의 계시를 받은 ‘비손’선지자가 명했다. 남정네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가져온 연장으로 바위 표면에 그림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믿었다. 그리고 간절하게 염원했다.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대지의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그리하여 다시 풍성한 나날이 찾아오기를. 염원을 담은 돌망치소리가 빈 들판에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