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수주문학상 수상작 / 이동욱 시인
치(齒) / 이동욱
호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면
물줄기는 날카로워진다
연약함을 가장하지 않는다
다시 아침
어김없이 남자는 옥상에 올라
채소에 물을 준다 채소는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있다 정확히
박스는 사각의 스티로폼, 하얗게
모여 있는 알이 위태롭다
옥상 아래 아이들은 잠들어 있고
언제 깨어나 울지 모른다, 시커멓게
동굴 같은 입 가득 허기를 물고 남자에게 물을지 모른다
그건, 아직, 네가 알 수 없는 일
아내는 왜 나비를 좋아했을까
남자는 채소에 물을 준다
언젠가 하얀 뿌리까지 닿을 수 있을까
자주 뽑히는 너희는 왜 이다지 순종적인가
왜 우리는 반복되는가
어서 자라라
다시 돌아오지 말아라
남자는 호스를 움켜 쥔다
우리는 무해한 짐승일까
초식동물 목덜미를 파고드는 송곳니처럼
담장 위로 박혀 있는 병조각이 햇빛과 첨예하다
<심사평>
올해도 수주문학상은 예년처럼 높은 관심과 호응 끝에 404명이 작품을 투고하였다. 예심에서 23명의 작품이 추천되었고 본심에서 추천 작품들을 다시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3명의 작품을 놓고 논의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지지를 받은 당선자와 당선작을 가려낼 수 있었다. 3명의 작품 세계를 논의하는 과정 중에 이미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먼저 「동거」외 6편의 시들은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세부 묘사가 시의 정황을 이끌어가고 있어 매 연의 진행과 변화가 설득력 있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어의 활강이 자유롭고 활달해서 인상적이었다. 구어체의 힘이 일상적 상황에서 잘 살아나고 있어 생기발랄한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는 까닭이다. 예컨대 “사랑하면 힘이 세진다고 하던데” “남기지 말고 먹어, 벌레 꼬여” “우리도 음식물 쓰레기 압축기 살까?”와 같은 구어체의 활용은 상황을 명료하게 드러내고 진전시키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다만 언어의 활용이 지나쳐 함께 수록된 시들에서 언어가 과하게 중첩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실비집」외 6편의 시들은 여러 점에서 완성도가 높은 시들이었다. 언어나 이미지의 착상 단계에서부터 무리 없이 진행되는 섬세한 전개, 오랜 훈련을 거친 정확하고도 성숙한 시선, 자연과 인간에 대한 통찰 등 잘 구성된 시편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얼큰한 체념들” “물은 흐를 때만 힘차다...손발이 없는 것들에게도 안간힘은 있다” “동그란 씨앗 속에 왜 동그란 꽃이 들어 있을 거라 상상하지“ 같은 구절에서 시선과 통찰의 넓이, 깊이를 잘 읽어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깨달음의 관성에 머물지 않고 좀 더 과감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시세계를 개방해 간다면 좋은 발전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치(齒)」외 9편의 시들에 손을 들어주는 데 이견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미지의 전면화, 그리고 이미지를 제시하는 새롭고 신선한 언어의 운동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선명하면서도 신비한 장면들이 넘쳐난다. ”비와 함께 미용실로 가자 누군가 머리를 지그시 누르면 너는 왜 부끄러운가“ ”누군가 주먹을 쥔 채 다가온다면 나는 무방비 상태인 그 안을 상상할 것이다“ ”내리는 눈은 돋아나는 이빨들처럼 한 번씩 눌러보고 싶지”와 같은 구절들은 유니크하고 개성적인 장면을 창출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사물과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획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 중에서도 「치(齒)」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옥상에서 호스로 채소에 물을 주는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채소에 물을 준다 언젠가 하얀 뿌리까지 닿을 수 있을까 자주 뽑히는 너희는 왜 이다지 순종적인가 왜 우리는 반복되는가“라는 구절에서 날카로운 물 줄기의 반복과 채소의 순종이 대비되는 장면은 강렬하고 참신했다.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모든 응모자들에게 격려를 전한다.
심사위원 : 손택수, 안지영, 이설야, 이수명, 황규관
<수상소감>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바위
집 앞 천변에는 드문드문 징검다리가 있습니다. 도시에서 징검다리는 생소한 터라 아내와 나는 부러 징검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산책을 마무리 합니다.
징검다리는 넓은 바둑판 모양으로 천변 바닥에 박혀 있습니다. 비록 반듯하게 깎여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편평하고 하얗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기 전 일단 멈춰 서서 어느 발을 먼저 디딜지 결정합니다. 거리를 가늠하고 무릎을 굽힌 뒤, 폴짝.
그렇게 공중에 있을 때 기분은 참 좋습니다.
서사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의미의 도약처럼.
공중에 떠 있던 발이 바위에 닿는 순간, 발바닥에 닿는 바위의 감촉이 깊은 신뢰로 다가옵니다.
여름이 되어 비가 그치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이거 이상한데, 하는 생각이 들 때쯤엔 이미 늦어버렸지요. 천변에는 통행금지를 알리는 방송이 울렸고, 우리는 종일 집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빗소리는 기관지가 약한 사람처럼 실컷 퍼붓다가 한순간 조용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강물이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비가 그치지 않는 새벽. 혼자 천변에 나가보았습니다. 강물은 넘칠 듯 흔들리고 연약한 가지와 수풀들이 떠내려가는 중이었습니다. 바람을 타고 온 빗물이 허벅지를 차갑게 했습니다. 나는 걸어가 멀리서 징검다리가 있던 곳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어두운 강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하얗고 굳은 바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 발을 디딜 때의 감촉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는 쉴 새 없이 우산을 두드리고, 강물이 거대한 빗자루처럼 천변을 휩쓸고 다니는 중에도 나는 바닥에 박혀 움직이지 않고 있을 바위를 생각했습니다. 발바닥에서부터 따뜻한 기운이 올라왔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집 쪽으로 크게 한 발을 내딛었습니다.
* 약력
1978년 출생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연금술사의 수업시대」 당선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여우의 빛」 당선
2019년 소설집 「여우의 빛」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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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GPT분삭
1. 제목의 의미: 「치(齒)」*치가 떨리는 일
한자어 '치(齒)'는 이빨, 즉 날카로운 것을 연상시키며, 특히 마지막 연의 “초식동물 목덜미를 파고드는 송곳니” 이미지와 연결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한다.
본능적 폭력성과 잠재된 위협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내부에는 언제든 드러날 수 있는 본능적인 폭력성과 위협이 존재함을 상징한다.
생존과 순환성
치아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기관으로, 음식물을 씹는 행위는 반복적이다. 즉,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의 단면을 드러낸다.
1. 이미지의 상징성
물줄기와 호스: 날카로운 물줄기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삶의 긴장감을 상징
채소와 뿌리: 채소의 순종적인 모습은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반복성을 암시
2. 대비와 대조
날카로움 vs 순종: 물줄기의 날카로움과 채소의 순종적 성격이 대비되며, 인간과 자연, 혹은 삶의 이중성을 드러냄
옥상 위 vs 아래: 옥상에서 물을 주는 남자와 아래 잠든 아이들 간의 공간적 대조가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2. 주제 분석
이 시는 일상의 평화롭고 무해해 보이는 풍경 속에서 내재된 인간 존재의 폭력성, 순환성과 반복성, 순응과 저항 사이의 긴장을 표현하고 있다.
일상 속의 숨겨진 폭력성
"호스를 쥔 손"과 "물줄기"가 평화로운 물주는 행위를 넘어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묘사된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 겉으로는 무해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잠재된 공격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복적이고 순환적인 삶
매일 아침,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옥상에서 채소에 물을 주는 남자의 모습은 삶의 반복성과 무의미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다. “왜 우리는 반복되는가”는 삶의 근본적 회의감에 대한 질문이다.
순종과 저항의 긴장
자주 뽑히는 채소의 "순종적"인 모습은 인간이 사회적 압력과 억압에 순응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남자의 물음은 이런 순종적인 존재 방식에 대한 의구심과 저항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3. 상징 및 이미지 분석
① 호스와 날카로운 물줄기
호스는 남자의 손에 의해 폭력과 지배의 수단으로 변모한다.(그 남자 위에 또다른 남자가 호스를 잡고 있을 것이다)
평범한 물줄기가 "날카로워진다"는 표현을 통해 일상의 행위에도 숨겨진 공격성이 있음을 상징한다.
② 스티로폼 박스와 채소
스티로폼 박스는 인위적이고 불안정한 인간 삶의 환경을 상징한다.
"하얗게 모여 있는 알이 위태롭다"는 표현은 인간의 삶이 연약하고 불안정함을 보여준다.
③ 아이들의 동굴 같은 입
아이들의 시커먼 입은 억압된 욕망과 허기를 드러낸다. 그것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잠재된 욕구의 위협을 상징한다.
④ 뿌리와 순종
뿌리는 존재의 근원, 본질적이고 순수한 영역을 상징한다. "하얀 뿌리까지 닿을 수 있을까"는 남자의 존재론적 탐구이자 소망이다.
"자주 뽑히는" 채소의 모습은 인간의 수동적이고 반복적인 삶, 그리고 사회적 요구에 따른 순응을 상징한다.
⑤ 송곳니와 병조각
"초식동물 목덜미를 파고드는 송곳니"는 일상에 내재된 본능적 폭력성을 강력하게 드러낸다.
"담장 위 병조각이 햇빛과 첨예하다"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긴장과 위험의 순간을 암시하는 강렬한 이미지로, 평범한 것들조차 공격성을 지닐 수 있음을 나타낸다.
4. 시의 구조 분석 (기승전결)
기(起): 남자가 매일 아침 호스를 쥐고 물을 주는 평범한 일상의 장면 제시.
승(承): 채소와 아이들 이미지가 대비되며 삶의 반복성과 불안을 드러냄.
전(轉): "왜 우리는 반복되는가"라는 의문과 "어서 자라라, 다시 돌아오지 말아라"라는 모순적 소망으로 내적 갈등을 고조시킴.
결(結): "송곳니"와 "병조각"의 강렬한 이미지로, 평화롭던 일상 이면의 숨겨진 폭력성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며 마무리.
종합 평가
이동욱의 「치(齒)」는 평범한 일상의 장면을 통해 존재론적 문제를 깊이 탐구한다. 날카로운 이미지와 섬세한 상징들이 교차하며 삶의 반복, 순종과 저항, 잠재된 폭력성과 같은 복합적 주제를 강렬하고 효과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