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맥도널드 씨
이성렬
그날 늦은 저녁에 나는 한 시간을 기다려
반값 세일 트리플 오니언 버거를 구매했다
늘 우리의 위태로운 가계를 근심해 주는
로널드 맥도널드 씨의 후의에 감사하며
트리플 버거라는 이름의 이물감이라든가
매운 맛이 제거되어 단맛으로만 남은 물컹한 양파의
생경함 따위는 잊어버리고 이 순간, 세계의
<낯설음>이라는 현학과는 결사적으로 무관하게
<Enjoy it!>이라는 맥도널드 씨의 낙천에 기대어
굶은 강아지가 고구마 맛탕을 씹지도 않고 넘기듯
트리플 오니언 버거를 통째로 삼킬 듯한
그러나 목이 메인 나는 잠시 인내를 불러와
<Misery_99>라는 내 랩탑의 비밀을 풀고는
9년 동안 갈 곳을 몰라 천공을 떠도는, 누구의
빵이 될 수 없는 시집 원고를 들여다본다
소화기관의 천공으로 작고한 마왕 가수의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라는 중얼거림을 들으며 다시 목이 메인 나는
셋방을 간신히 면한 우리 가족이 신림동에서
환호했었던 학부 고학년 시절 처음으로 읽은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라는 단편이 수록된
아름다운 책을 꺼내어 본다, 그 후 오랫동안
침묵했었던 이 소설집의 저자에 비하면 나는
너무 많은 문장들을 쏟아 내었다고 자책하는데
<이 죽은 땅을 떠나… 달나라를> 올려다보는
난장이의 낡은 공구들은 여전히 침울하다
그러니 나는 뜨거운 육교 위에 주저앉아
생애를 포기하는 젊은이에게 오백 원 동전
한 잎을 던지는 장면으로 스스로를 위무할 뿐
트리플 오니언 버거를 완전히 소비한 나는
축축한 버거 포장지를 버리려다가
흰종이와 알루미늄 박막이 따로 놀아 너덜거리는
귀퉁이를 주목한다, 그렇다면 이 순간 내가
겨우 감당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한 극소의
진실은 무엇인가? 빵을 감싼 은박지의 양면이
두 겹인 채로는 절대로 재생불능이어서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빈자와 가진 자 사이의
이질감처럼 머나먼 두 표층을 철저히 분리해야
양쪽 모두 지구를 구할 자원이 될 수 있다는
냉철한 자본가 로널드 맥도널드 씨의 간명한 선언에
평행한 철로처럼 마주보는 두 불투명막을 난감한
자세로 천천히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
*<민물장어의 꿈>
이성렬
2002년 <서정시학> 등단.
시집 <비밀요원>, <밀회> 등. 산문집 <겹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