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범죄 스릴러 '괴물 메넨데즈 형제 이야기'(Monsters: The Lyle and Erik Menendez story)가 19일 공개됐을 때 9부작이란 사실을 알고 꽤 놀랐다. 다머 스토리의 성공에 힘을 잔뜩 받은 라이언 머피와 이언 브래넌이 야심차게 준비한 두 번째 작품이란 것을 알았지만 35년 전 부모를 잔혹하게 살해한 망나니 형제 얘기를 뭐 그렇게 잔뜩 할 게 있겠는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1화 '차라리 비를 탓해'를 보면서 '다머' 때와 마찬가지로 정신 없이 빠져들었다. 1989년 8월 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 힐스의 고급 주택에서 쿠바계 연예 사업자 호제이 메난데즈(하비에르 바르뎀)와 부인 키티(클로에 세비니)가 잔혹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다음해 3월에야 용의자들이 체포됐는데 두 아들 라일(니콜라스 차베스)과 에릭(쿠퍼 코치)이다. 에릭이 심리상담의에게 범행을 털어놓았는데 그의 불륜녀가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에릭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모습을 비치지만 사실 부모에게 방아쇠를 당겨 얼굴을 반쪽 날려 버릴 때는 조금도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관객은 라일과 에릭 둘 중 누가 더 범행에 주도적이었는지 헷갈리게 된다.
2화 '폭주'에서 범행 동기를 구체적으로 늘어놓기 시작한다. 어느날 형제와 부모들은 식탁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운다. 엄마 키티가 라일의 머리채를 잡으려 하는데 뚜껑처럼 열리는 가발이었다. 라일은 미국의 대통령이 돼서 가문을 빛내라는 아버지의 엄격한 교육 지침 때문에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를 겪고 있었는데 세 살 아래 동생은 이제야 알게 됐다. 그 뿐일까? 테니스 코치를 어마어마한 값을 치르고 붙여줬는데도 그것 밖에 치지 못하느냐고 수많은 이들 앞에서 창피를 주고 코치를 단칼에 해고해버린 아빠다. 그런데도 모두들 가만히 지켜본다. 돈이 있어서다. 쿠바 출신으로 뭔가 음험한 뒷배경이 있다고 믿어 그럴 지도 몰랐다.
하여튼 아빠의 억압과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엄마는? 아빠로부터 벗어나야 행복해질 수 있다며, 본인도 그러길 바랄 것이란 어이없게 형제는 판단한다. 철부지다. 덩치는 크고 하는 짓은 어른인데 사리분별을 전혀 못하는 데다 어이없는 합리화를 일삼는다.
우리도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일이 어쩌다 벌어지는데 이들 형제는 조금 차원이 다르다. 형제를 체포하는 데 8개월이 걸렸는데 재판이 시작된 것은 4년 뒤였다. 그만큼 검찰이 보강 수사를 할 것이 많았다. 부잣집 망나니 형제들에겐 알게 모르게 특혜가 주어진다. 경찰은 초동 수사 때 형제의 승용차 트렁크에 있던 산탄총 탄환 포장박스 등을 찾아내지 않았다. 형제가 의심의 대상으로 찍어준 마피아나 (마약) 카르텔, 라일과 사이가 안 좋다는 지역 갱단 등의 소행이 아니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형제의 손에 남아 있을 법한 화약 성분 검사도 하지 않았다. 교도소 옆방에 나란히 지내게 해준다. 이게 말이 되는가? 존속 살해 용의자 형제를 나란히 지내게 해주는 일이 가당키나 한가 말이다.
형제는 검거될 때까지 70만 달러를 써버린다.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으름장에 범행 실행을 서두른 것 같기도 한데 이렇게 흥청망청 돈을 쓴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을 일인데 애들은 그랬다.
3화 '동전 좀 빌려줘'에서 형제는 우발적 살인을 주장하며 양형 거래를 제안한 변호사를 해고하고 싸움꾼으로 악명 높은 여자 변호사 레슬리 에이브럼슨(아리 그레이너)를 기용해 아빠를 죽여야만 했던 그럴 듯한 이유를 찾는다. 그녀는 일 중독에 빠져 아이를 제대로 기르지 못했다며 아이를 입양하려 하던 참에 더 나긋나긋한 에릭만 변호하겠다고 나선다. 형제가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해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보고 멈추고 이 글을 적는다.
4화 '죽거나 죽이거나' 5화 '상처 입은 남자' 6화 '아직 끝난 게 아니야' 7화 '결전의 날' 8화 '지각 변동' 9화 '행맨' 등 갈 길이 멀다.
일단 라이언 머피 사단답게 각본의 짜임새가 촘촘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균일하게 잘 나왔다. 형제와 변호사들의 법정 대응을 시니컬하게 바라보며 어이없는 형제들의 변명과 자기 합리화를 지켜봐야 한다. 동정을 표하게 될까, 역겨움을 느껴야 할까 상당한 부담이 관객에게 주어질 것 같다.
미국에서도 남성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호제이가 여러 남자들을 건드렸다는 새로운 증거도 많이 나왔다고 한다. 무기 징역형을 선고받고 이제 34년 반을 복역한 56세와 53세 형제가 풀려날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아 보인다.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쓴 행동을 합리화할 방법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형제의 변호사는 유죄 판결 무효 청원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