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누군가를 돕는 것이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돕는 일에 대해 잘못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거나, 방법을 몰라서 어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영화와 광고를 통해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방적인 도움은 없다
1988년 가수왕으로, 왕년에 잘 나갔던 최곤(박중훈)은 이후 이렇다 할 히트곡을 내지 못하는 변변치 않은 가수로 전락합니다. 폭행과 대마초사건으로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다 또다시 폭행사건을 일으켜 당장 합의금조차 없는 신세가 됩니다.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최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강원도 영월까지 가서 라디오DJ를 맡게 됩니다. 최곤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만 그의 곁에는 한시도 그의 재기를 의심치 않으며 항상 수퍼스타로 떠받드는 20년 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있습니다.
영화 [라디오스타]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포근한 감동을 느낍니다. 철부지 같은 최곤을 그림자처럼 지켜주는 박민수를 보며, 내게도 저런 사람이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최곤이 대형 기획사와 계약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아무 대가 없이 떠나는 박민수를 보며, 나도 저런 사람이 한사람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늘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 자기 이익 때문에 나를 버리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이 그리운 것입니다. 잊혀진 스타 최곤을 위해 자신의 가정까지 뒤로하고 희생하는 헌신적인 매니저 박민수의 모습은 흡사 모성애를 떠올리게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이처럼 도움을 받는 사람을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도움은 그저 주는 사람에게서 받는 사람에게로만 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일까요.
박민수의 커다란 빈자리를 느낀 최곤은 대형 기획사의 엄청난 제의마저 뿌리치고, 라디오 방송 중에 울먹이며 20년지기 매니저에게 돌아오라고 소리칩니다. 그 순간 우연히 방송을 듣고 있던 박민수는 전율을 느낍니다. 박민수 역시 최곤에게 많은 것을 얻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과 정서적 교감은 최곤에게만이 아니라 박민수에게도 큰 힘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최곤을 다시금 최고의 스타로 만드는 것은 좋은 기획자가 되고 싶은 박민수의 꿈과도 맞닿아 있었던 것입니다. 박민수가 일방적으로 최곤을 도운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원봉사를 해본 사람들은 말합니다. 오히려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요. 그러니 누군가를 돕는다는 일은 결코 일방적일 수 없습니다. 남을 위하지만 또한 자신도 위하는 일이며 관계를 통해 도움을 주고받는 일인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 그대로
KT의 'IT서포터즈' 광고를 보면 IT전문가인 KT직원들이 시골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름하여 IT서포터즈입니다. 삼성금융광고를 보면 같은 차종을 타는 자동차동호회에서 야외로 정기모임을 가며 어르신들을 함께 모시고 갑니다. 정기모임을 하면서 어르신나들이 자원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직업을 통해 혹은 자신의 관심사를 살려서 남을 돕는 것은 쉽고도 지속하기가 좋습니다. IT서포터즈는 자원봉사를 위해 따로 교육을 받지 않아도 자원봉사를 할 수 있으며, IT전문가이기에 누구보다도 컴퓨터를 잘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또한 직장을 다니는 동안은 계속해서 IT자원봉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자동차동호회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가는 야외 모임 때 가끔씩만 어르신을 모시기만 하면 되니 이 역시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자동차 정기모임을 하면서 좋은 일도 하니 동호회로써도 일석이조인 것입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돕는 일은 결코 나와 동떨어져있지 않습니다.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출발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직업이나 관심사를 통해서 돕는 일은 식탁에 숟가락을 하나 더 놓듯이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의 직업이나 관심사를 통해 남을 돕는 것은 더 재미있고 보람됩니다. 남을 돕기 위해 하기 힘든 일을 억지로 붙들기보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출발하면 되는 것입니다. 등산동호회라면 두 달에 한 번 장애인과 함께 등산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식당주인이라면 한 달에 한번 식당에서 어르신 생신잔치를 열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들어주고, 쉽고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것
신동엽이 주변 사람들에게 보험상품을 이야기하고 다니는 광고 속의 삼성생명FC(재정설계사), 집안의 모든 해충은 박멸할테니 안심하라는 광고 속의 세스코직원.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고객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고, 고객의 요구나 질문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준다는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그저 믿을 만한 금융기관이니 투자를 하라거나, 뿌려만 주면 해충이 다 죽는다고 하고 말았는데 요즘은 참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줍니다.
삼성생명FC는 건강까지 신경 쓰는 김원희에게는 리빙케어보험을, 보장자산을 전혀 모르는 윤종신에게는 종신골드보험을 추천합니다. 광고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김원희, 윤종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거기에 따라 추천을 했을 것입니다. 살충제로 개미를 잡으려는 여성에게 세스코 직원은, 개미는 위협을 느끼면 새로운 여왕개미를 더 많이 만들어서 개미가 더 늘어나게 된다고 개미의 심리까지 활용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줍니다. 게다가 세스코 광고에서는 전화번호를 보여주며 세스코와 ‘상의하세요’라고 말합니다. ‘맡기세요’가 아니라 ‘상의하세요’라고 한 것은 고객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것이며, 궁금한 점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해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작은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엉뚱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도움 받는 사람에게 알아듣게 설명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돕는다 해도 받는 사람이 싫어하거나 부담을 느낀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도움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와 의지에서 출발하여 그 사람의 동의를 얻어서 도와야하는 것입니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자원봉사자 학생은 처음부터 시각장애인 알파치노를 도운 것은 아닙니다. 탱고를 추러 나가면서 알파치노가 도와달라고 하자 그제서야 무대의 크기나 밴드의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돕는 일을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하는 일 그대로 누군가를 돕는 건 어떨까요? 도울 땐 잘 들어드리고 쉽게 설명해드리면서요. 그렇게 돕다보면 삼성금융광고 자동차동호회편에 나오는 노래가사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널 만난 후부터 난 달라지고 있어. 매일 걷던 그 길거리를 걸어도 늘 새롭게 느껴져 처음인 것처럼 온종일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아.’ -[왠지 느낌이 좋아], 여행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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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번 글은 제목이 영 안떠오르고, 지금 제목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글을 쓸 때마다 한덕연 선생님의 가르침이 떠오릅니다.
혹시나 제가 잘못 받아들인 것은 없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첫댓글 사랑하는 김상진 선생님~ 꾸준히 글을 쓰시니 안도합니다. 제가 뭘 가르쳐드렸다고 "잘못 받아들인 것은 없는지" 생각하십니까? 김상진 선생님 속에 있던 것이고 또한 살아오면서 배우시거나 경험하신 것이겠지요. 제게는 김상진 선생님의 생각 그대로 귀합니다. 벌써 이렇게 속깊은 이야기를 풀어내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두렵고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이 혹 김상진 선생님과 저의 생각을 다듬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내가 하는 일 그대로" 부제가 좋습니다. "직업을 통해 혹은 자신의 관심사를 살려서 남을 돕는 것은 쉽고도 지속하기가 좋습니다." 하신 말씀도 공감합니다. "식탁에 숟가락을 하나 더 놓듯이" 봉사하게 하자는 말씀도 와닿습니다. 김세진 선생님이 말씀하셨던가요? 숟가락 여러 개 더 놓은 그림 말입니다.
그런데, 남을 돕는 일은 쉽지 않더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은 남을 돕는 일인가 합니다. 그래서 주선하고 거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느낍니다. "남을 돕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하신 말씀을 더 쉽게, 더 가깝게 바꾸어보면 어떨런지요?
권정생 선생님 글에, "되로 주고 말로 빼앗아가는 '자선사업'은 가장 미워해야 할 폭력행위입니다." - 오늘은 이 말씀을 새김질하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말과 맺음말을 수정하였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남을 돕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다만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대단하고 어려운 일'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어렵지 않다', '쉽다'는 표현을 썼던 것입니다.
"돕는 일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 이 말을 빼도 될 것 같은데, 꼭 넣어야 한다면 "돕는 일을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이런 내용으로 대체하면 어떨까요?
세상에 온전한 이타심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직업이나 관심사를 통해 돕는다는 것이 자연스럽고 쉽다는 것도 선생님께 배운 것이어서요. 지난 번 글에서도 강점관점을 말한 것도 그랬고요. 글을 쓰다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 하지만 제 속에 있던 것이고 살아오면서 배우거나 경험한 것이라고 하시니 그런가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