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달은 바보가 아니고 막 성장한 부유한 평민이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집안이 왕의 부마가 되는 게 싫었던 귀족세력이 바보 온달이라고 비꼬아서 기록했을 수 도 있습니다.
당시 고구려 평원왕은 왕권 안정을 위해 기존 귀족 세력을 배척하고 온달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력을 포섭하기 위하여 공주의 일탈을 핑계로 결혼시켰다고도 합니다.
평강 공주의 내조로 훌륭한 무사가 된 온달은 고구려를 침공한 후주(북주)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우자 평원왕은 기뻐하며 내 사위라고 공표하였습니다.
그 후 온달 장군은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 찾아오려고 출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충주, 단양인 계림현과 죽령 전투에서 흐르는 화살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차가운 온달의 시신을 관에 넣고 옮기려는데 관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공주가 와서 고구려 땅에서 나신 몸 이제 고구려 하늘로 가실 때라고 온달의 원혼을 달래주자 그때서야 관을 들어 묻을 수 있었습니다. (삼국사기 열전 온달)
온달이 죽은 곳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단양군의 온달산성은 옛 지명이 ‘을아단’이고 이곳이 ‘아단성’입니다.
그런데 광진구 아차산의 아차산성을 아단성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아단성(阿旦城)과 아차성(阿且城)은 가운데 한자가 비슷하고
다양한 판본이 있었을 삼국사기여서 잘 못 적힌 것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동화같은 온달이야기 속에 우리 역사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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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공주가 청혼한 온달은 바보가 아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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