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9일(금), 강원특별자치도 양양 일대에서 ‘제18회 38선 티모테오길 도보순례’가 열렸습니다.
춘천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주관한 이번 순례에는 교구 내 여러 본당에서 모인 1,200여 명의 교우들이 함께하였으며, 특별히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님께서도 참석하시어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38선 티모테오길’은 6·25전쟁 당시 신자들을 지키고 구하기 위해 헌신하시다가 순교하신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님(1909~1950)의 삶과 신앙을 기억하고, 시복·시성을 기원하며 걷는 순례길입니다.
이날 참가자들은 38선 남쪽의 명지리 안골에서 출발하여 38선 북쪽의 양양성당까지 이어지는 약 11km의 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과거 분단의 아픔이 서려 있는 길이지만, 이날만큼은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교우들의 발걸음으로 채워졌습니다.
순례자들은 이광재 신부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되새기며, 남과 북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전쟁과 갈등으로 고통받는 세계 곳곳에 참된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도보순례를 마친 뒤에는 양양국민체육센터에서 교구장 김주영 시몬 주교님의 주례로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김주영 주교님께서는 강론에서 순교자들의 죽음은 단순히 과거의 슬픈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요청하는 ‘위험한 기억’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다른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하며,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하느님의 평화를 이루어 가자고 당부하셨습니다.
올해로 18회를 맞이한 ‘38선 티모테오길 도보순례’는 순교자의 신앙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분이 남기신 사랑과 희생의 정신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이어가는 소중한 신앙의 여정입니다. 분단의 길 위에 평화의 발자국을 남긴 1,200여 명의 순례자들. 그날 함께 걸었던 발걸음과 기도가 우리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일상에서도 화해와 사랑을 실천하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38선 티모테오 순례길>
순례길은 1945년 8월 15일 해방부터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신앙과 자유를 찾아 38선을 넘어 남하한 북한 동포들의 도보길입니다. 그들은 이념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시 공산치하의 박해를 피해 월남했습니다. 그야말로 <죽음의 38선길>이었습니다. 당시 양양성당(양양읍 성내리 소재)은 38선에서 북으로 약12km정도에 위치하여, 38선에 가장 가까운 성당이었습니다. 그래서 박해를 피해 남하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그곳을 찾아 도움을 받았습니다. 해방 후, 북한에는 1946년에 소련군이 진주하였습니다. 그들은 양양성당을 무전실로 쓰다가 1948년엔 인민군이 성당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이때부터 북쪽지역의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양양성당에 찾아와 당시 주임사제였던 이광재(티모테오) 신부님께 38선을 무사히 넘을 수 있게 부탁해오면, 38선 인근 마을 신자를 불러 그네들을 무사히 38선 남쪽까지 넘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셨습니다. 이때 남하한 경로는 여러 곳이지만, 주로 많이 이용한 코스는 고노골(월리), 한구령(용천), 부소치고개(남양리), 한천산 부근, 명지리 안골이었습니다. 양양본당의 제3대 주임사제이던 이광재(티모테오) 신부는 공산당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이들을 안전하게 숨겨주었다가 본당 교우들을 통해 무사히 38선 이남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따랐지만,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월남시킬 수 있었습니다. 달도 없는 칠흑 같은 그믐밤에 그물처럼 짜여진 38선 보위대 경비초소의 인민군 총부리를 피해서 목숨을 걸고 그들의 등불이 되어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생생한 현장을 체험하며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님의 삶을 묵상할 수 있도록, 춘천교구에서는 2009년부터 38선 티모테오 순례길 걷기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매년 행사일은 티모테오 신부님이 돌아가신10월 9일입니다.
※ 일부 사진 제공: 이응호 베네딕토(양양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