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유학자들의 사호(四皓.상산에 사는 네 노인 즉 商山四皓를 말함)에 대한 논의를 보면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그렇지만 전국 시대부터 초한(楚漢) 시대에 이르기까지 온 세상의 부귀와 공명(功名)이 바람이 몰아치고 파도가 밀려오듯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까부르고 사람들의 다리를 흔들었으니, 한 남자도 먼지와 티끌이 가득한 혼돈 속에서 눈을 뜨고 머리를 내민 사람이 없었다. 오직 이 네 사람만 뜻을 같이하여 서로 소리 높여 노래하며 마음을 터놓았고,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은 달팽이 뿔 정도로도 보지 않았으니, 그 얼마나 고상한가.
천하가 크게 안정되기에 이르러 찌푸린 이마가 조금이나마 펴졌는데, 또 태자가 동요하여 장차 난리의 조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번 세상에 나와 노인의 가려움증을 긁어 주는 것도 무방하다고 여겼다. 마침내 황제로 하여금 한번 보고 관(冠.갓)에 오줌을 누었던(패공이 선비를 좋아하지 않아 선비의 갓을 쓴 이를 보면 그 갓을 벗겨 오줌을 누어 모욕을 주었음) 잘못을 알고 후회하게 했으며,태자가 다시 편안해져 나라가 반석처럼 길이 안정되는 근본이 되었다. 그들이 보기에 말을 잡아 맹약을 하는 인구(人狗)는 까마득히 비천한 무리들이었다. 만일 태자의 궁전에 머물러 봉황이 날 듯이 살았다면 만년의 영화와 복록이 어찌 나물을 캐면서 배고픔을 달래는 것보다 낫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채 하루가 되기 전에 다시 구름 낀 산으로 돌아가 세상 사람들이 붕새가 나는 높은 하늘처럼 상안산(商顔山)을 바라보게 만들었으니, 어찌 훨훨 나는 듯 구애됨이 없는 쾌남아가 아니겠는가. 사람을 논의할 때 모두 후직(后稷)ㆍ설(卨)ㆍ이윤(伊尹)ㆍ부열(傅說) 같은 사람만 기준으로 삼는다면 만고에 어찌 완전한 사람이 있겠는가.
번역: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