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하룻밤을 즐긴 이튿날, (재수없이 끌려온) 그 남자의 목만 내놓은 채 땅에 묻어 죽이는 짓을 수도 없이 저지르고, 나이많은 태감(궁중의 하인)에게 자신의 대소변을 강제로 먹여 죽인 청나라의 절대권력자 서태후,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 조카(광서제)까지 가차없이 살해해버렸다는 오해(?)를 받는 그녀의 말로는 과연 어땠을까요?
청나라의 제11대 황제였던 광서제 역시 (자신의 백모였던) 서태후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거의 확실한 증거들이 한참 세월이 흐른 2008년에 드러났는데요.
광서제의 사망으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영화 제목) 부의가 등극하였는데, 그 일이 있은지 만 하루도 못되어 서태후가 사망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로부터 20년 후, 장개석 총통의 군인들이 서태후의 무덤을 침범하여 그녀의 옷을 찢고 치아를 뽑아내며 보석을 강탈해 갔습니다. 숨겨진 보물들을 찾느라 유해는 아무렇게나 방치되었고요. 그야말로 비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는데요.
서태후는 살아생전 매 끼니마다 100개 이상의 접시가 차려진 호사스러운 식사를 하면서도 함께 먹는 이들로 하여금 (황제만 빼고) 반드시 선 채로 식사하도록 했는데요.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모유를 먹이는 산모나 자신의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에게도 예외가 없었답니다.
하루 생활비로 약 9억 원을 썼으며, 호화로운 궁전(이화원)을 짓고 그곳에서 환갑 잔치를 벌이느라 청나라 전체 예산의 30%를 사용했다고 하지요. 이 때문에 당시까지만 해도 세계적으로 막강했던 청나라의 북양 함대가 (예산 부족 때문에) 훈련이 부족한 데다 탄약도 변변치 않아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서태후의 장례식에는 120만 냥(1조 2천억)이라는 거금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서태후가 한 연극 가수를 무대에서 끌어내리게 한 까닭, 중국에서 서태후 관련 드라마를 찍는데 지망자가 없어 일본 배우를 데려왔다는 이야기, 젊은 시절 사랑했던 한 환관의 ‘성기가 없는 시체’가 공개되자 서태후가 병이 들고 말았다는 이야기, 위안스카이(원세개)가 선물한 자동차를 끝내 타지 않은 까닭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