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협 경제부장 33조원 돈 풀기 준비 없이 강행 코로나19 핑계로 사실상 買票 역대 최대의 대선 예산 전주곡 文정부 확장재정 부작용 심각 한은 인플레와 금리인상 경고 촌극 접고 연착륙 대책 내놔야 슈퍼 추가경정예산이 또 편성됐다. 1일 임시국무회의에서 통과된 2차 추경안은 세출 증액 규모로 사상 최대인 33조 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 4년 회견에서 “적극적인 확장 재정”을 예고한 그대로다. 코로나19 사태는 정부 출범 초기부터 확고했던 확장재정 기조에 좋은 핑곗거리가 됐다. 후환은 더 두렵다. 대선(2022년 3월 9일) 열차가 이미 출발한 터라 “돈을 더 풀라”는 여당 압박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2차 추경으로 올해 예산(총지출)은 604조7000억 원을 기록했는데 3차 추경이 편성될 경우 또 신기록을 세운다. 누가 쓰고 누가 갚느냐, 부메랑으로 돌아올 고통에 대해 여당은 나 몰라라 태도로 일관할 게 뻔하다. 현금 살포를 무기로 집권 연장을 꾀하고 부담은 뒤로 미루려는 심산임이 분명하다. 소득 하위 80%와 80.0001%를 정확하게 가려낼 방법도, 정확한 신용카드 사용액을 계산할 시스템도 갖추지 못해 혼란이 예상되는데도 부랴부랴 돈 액수를 정한 의도도 의심스럽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좀처럼 반등할 기미가 없는 처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 때문에 기획재정부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잇단 고언에 보다 믿음이 간다. 적어도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 경제와 미래세대가 짊어질 부담을 걱정하는 발언에는 객관성과 중립성이 담겨 있다. “금리 인상이 지연됐을 때의 부작용이 커 미국보다 먼저 올릴 수 있다”(5월 27일)→ “확장적 위기대응 정책들을 금융·경제상황 개선에 맞춰 적절히 조정해 나가야 한다”(6월 11일)→ “기준금리를 한두 번 올린다고 해도 통화정책은 여전히 완화적”(6월 24일) 등으로 수위는 높아졌다. 다가올 충격파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배려다. 만연한 자산 거품이 붕괴할 경우 누구도 비켜 갈 수 없다는 우려에서다. 앞뒤 가리지 않는 정부의 재정정책이 한국경제의 파탄을 초래하지 않도록 통화 당국이 연착륙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자산 불평등 심화, 비정상적 부채 규모 확대,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 고조 속에서 이 총재가 밝혔듯 “질서 있는 정상화”를 통해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실제 통화정책을 바꿔야 하는 요건은 하나둘 쌓여가고 있다. 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차이를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갭은 마이너스에서 내년 상반기 중 플러스로 전환되는 궤도상에 있다. GDP 갭은 긴축으로 출구전략을 펴지 않고 과잉유동성을 마냥 방치했다가는 폭탄이 터진다는 신호등 역할을 하는 지표다. 이 총재도 “GDP 갭 해소 시기가 한층 빨라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국채는 10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예상보다 많이 걷힌 세수는 나랏빚을 갚는 데 우선 쓰도록 국가재정법 제90조에 규정돼 있는데 이번 추경에서 고작 2조 원 정도만 사용함으로써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데 그쳤다. 돈 풀기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인플레이션과 시장금리 상승 속도를 부추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재정 건전성 의무를 방기한 피해는 결국 취약계층인 서민층에 돌아간다. 한은의 ‘2021년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기업·정부 부채는 5086조 원으로 집계됐다. 빚에 허덕이는 청년에게 10만 원 저축 시 정부가 10만 원을 더 얹어주겠다니 촌극에 불과하다.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청년층에 생색조차 못 낼 정도다. 문재인 정부가 8개월여 뒤 차기 정권에 기초체력이 바닥난 정도를 넘어 병든 경제를 넘겨줄 생각이 아니라면 당장 거품을 빼는 작업에 들어가 현 위기상황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재정 당국이 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기재부는 집권세력이 누구냐에 따라 국채 위험을 놓고 다른 소리 하지 말고 솔직해져야 한다. “아직 재정을 투입할 여력” 운운은 거짓 속임수다. 금융 당국도 금융권 부실화를 철저히 막아야 한다. 재정·통화정책이 맞물려 가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고자 할 경우, 가랑이 찢어지는 피해자 역시 서민층이다. 당국은 대선 표(票)에 눈이 먼 포퓰리즘의 폐해에 공동 책임을 추궁당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돌이켜봐야 할 심각한 국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