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빈민화하면 역시 서울의 현상을 말한다. 6~7십년대의 우리들에게 회자되는
말이다. 이시대에 농촌에서 가난을 이겨 나가고져 모두가 서울행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로 상경을 하여 도시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나가면서 살아온 시대이기도 하다.
농촌에서 솥단지하나 이불하나 옷몇가지등을 챙겨 정들었던 부모님의 곁을 떠나
서울로 향하였다. 나같은 경우는 서울로 가서 대학을 다니고져 상경을 하였다.
막상 서울을 향하여 고향을 떠났으나 막상 가서 기거를 하며 삶의 터전을 향하여
살림을 풀고 내 잠자리를 할곳이 어디가 있을까? 나는 조카들이 많은 누나네 집에서
조카들과 누나들하고 함께 기거를 하면서 공부를 하였으며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서울의 고지대는 천막집과 루핑집으로 땅바닥에는 맨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있
었고, 한강변의 뚝방의 저 지대에 천막을 치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마포 산꼭대기, 봉천동 고지대, 신림도 고지대 ,시흥2동 산동네 상계동 철거민들의
집단의 이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현상이다. 동사무소에서 주는 밀가루 , 새마을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이 대부분이다.진짜 하루하루 연명을 하여가는것이 최선의
삶의 주류이다.
서울에 삘딍들이 즐비하는데, 이면에는 이러한 삶의 형태가 공존을 하고 있다. 특히
청계천의 피복상들의 노동자들의 삶이란 이루 말할수가 없다. 수도물도 공동으로 사용하고
화장실도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가난한 농촌을 떠나 왔으나 서울의 삶은 이러한 삶
이다.. 조선시대의 일제강점기의 농촌에서 소작을 할것도 없어 도시의 시장가에서 지게로
품팔이를 하며 살아가기 위한 그러한 모습과 거의 대동소이한 삶이다. 두만강을 건너서
북간도로 가는 사람들하고도 대동소이하다.
왜 ? 사회가 있는데 이렇게 부의 불평등을 낳고 부자와 빈자가 공존을 하는지 사회는
불공평하다. 조선사회에서는 '사대부와 농민 그리고 천민집단들 그리고 노예들의 삶이란
가난을 벗어날수가 없다.지주들은 수천석을 하여 산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가난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지. 관리들의 부페는 극치를 달리는 모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말할수가 없이
부정을 일삼고 부의 특정인들이 대다서 차지하여 불평등은 말할수가 없다.
한강이 범람을 하면 이한강변 저지대의 주민들을 대피명령을 내리고 학교로 이주를 시키고
홍수피해를 해결하기 위하여 서울시의 모든행정력은 총동원령을 내린다. 쓰레기의 문제도 고
지대에서는 큰 문제이다.
정치적으로는 군사정부는 긴급조치로 국회를 해산시키고 도로변에는 최루탄이 눈물을 나게
하고 대학교마다 휴교령을 내려 학교가 쉬게 되고 대학생들은 민주화를 외치고 길거리는
탱크로 다니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군사독재는 3선개헌 ,유신으로 치닫고 ,결국에는 10.26
사태가 나고 권력의 공백기간에 또다른 군사 정권이 들어서서 80년대의 암울한 광주항쟁의
유혈사태가 우리의 역사를 어둡게 하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첫댓글 궁핍했던 기대를 나열해주시니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으로서 감회가 서립니다.
사는 것이 공평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 애들이 힘들긴 해도 우리 때 보다 많이 나아진 삶을 사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또 더 좋아지겠죠. 희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선배님
그래도 누님이 계셨기에
기댈 언덕이 참 다행이셨네요.
무작정 상경한 분들도 많았고요
빈부의 차이가 너무 심했던
그 시절
지금은 그때 비하면
모든게 풍족하지만.
엄청난 사건.사고들로
가슴 아픈 사건들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이길 바랍니다.
루핑이란 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자본주의 사회의 명과 암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 말만 그럴싸하지 명암이 엇갈리는
자본주의 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웠던 시절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 민국을
이룰 수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몇번이나 글을 읽으며 그 안에 담긴 뜻을 헤아려 봅니다^^
이 글이 동구리 선배님의 글인 줄 지금 발견했네요.ㅎ
60년대의 도시빈민화
드라마에서 봤습니다.
마포산꼭데기 봉천동 신림동 상계동은
이제 대부분 재개발아파트로 변화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부익부빈익빈은 존재하겠지요
어두운 과거를 뚫고 지금은 살기좋은 대한민국으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