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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고린도전서 8:1~11:1은 “크리스천과 이방인”에 대한 내용입니다.1)
고린도전서 8장은 “우상 제물”에 대한 “자유와 책임”의 내용입니다.2) 파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신자의 태도에 대한 질문에 답변합니다.3)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 “그러나 우상에게 바쳤던 것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모두가 지식을 가지는 것을 우리가 아노라, 지식은 부풀어 오르지만(puffs up) 사랑은 세우노라(builds up). 알았기에 추정하면 반드시 알았어야 하는 것에 따라서 알지 못하였으나. 어떤 사람이 그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가 그에 의해 앎을 받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4~6절에 “그 우상에게 바친 것들의 먹는 것에 관하여 우상은 아무도 아닌 것과 한 분 외에 아무 하나님이 없는 것을 알았으니. 이는 신(god)들이라고 말함을 받는 자들이 하늘 안과 땅 위에 존재하나. 우리에게 하나의 하나님께서 그에서 그 모든 것들과 우리가 그 안으로고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그 모든 것들이고 우리도 그를 통하여라.”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 4~6절은 지식과 우상과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4)
우상은 실재하지 아니하는 아무것도 아님에 불과합니다(고전 8:4).5)
‘신(god)들’이라고 말해지는 자들이 하늘과 땅에 있습니다(고전 8:5).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하나의 하나님께서 그에서 그 모든 것과 우리가 그 안으로고 크리스트를 통하여 모든 것이고 우리도 그를 통하여서입니다(고전 8:6).
1. 파울은 지식과 하나님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고린도전서 8장 7~10절에 “그러나 모든 사람 안에 그 지식이 아니나, 어떤 사람들은 그 우상의 그 관습에, 우상에게 바친 것들과 같이 먹으며, 약한(being weak) 그들의 양심이 더럽혀지나(is defiled).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께 맡기지(commend) 못하고, 만일 먹지 아니한다면 부족하지 아니하고 먹는다면 풍성하지 아니하나. 너희의 이 권리가 약한 사람들에게 거침돌이 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지식을 가지는 우상의 전에서 드러눕는 너를 보았다면 그 양심이 우상에 바친 것을 먹기 안으로 세워지지 아니할 것이냐?”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우상의 관습에 마치 우상에게 바친 것들처럼 먹으며 약한 그들의 양심이 더럽혀집니다(고전 8:7).
파울은 “지식”과 “우상”에 대하여 말합니다.6)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께 맡길 수 없고 먹지 아니하면 부족하지 아니하고 먹으면 넘치지 아니합니다(고전 8:8).
8절은 하나님과 음식의 관계에 대하여 말합니다.7)
우리의 권리가 약자에 거침돌이 아니게 주의하여야 합니다(고전 8:9).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지만 약한 자에 대한 책임도 있습니다.8)
만일 어떤 사람이 지식을 가지는 우상의 전에서 드러눕는 나를 본다면 약자들의 양심이 우상에게 바친 것을 먹게 세워질 것입니다(고전 8:10).
파울은 7절처럼 10절에서도 “지식”과 “우상”에 대하여 말합니다.9)
예를 들면 술을 마신다거나 특정한 형태의 옷을 입거나 입지 않는 일, 때때로 도박의 성격을 지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은 게임을 하는 경우가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행위들에 속합니다. 나에게는 절제할 수 있어도 그것이 다른 믿는 형제들에게 양심을 더럽히고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면 그 행위는 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10)
2. 파울은 지식과 예수님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고린도전서 8장 11~13절에 “그 약한 자가 너의 지식에 멸망함이니. 그 형제 안으로 죄를 범하고 그 약한 양심을 때린 너희는 죄를 범하노라. 만일 음식이 나의 형제를 실족게 하면 나는 고기를 식사하지 아니하리니 나의 형제를 내가 실족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지식 때문에 약한 자가 멸망하여서는 안 됩니다(고전 8:11).11)
형제에게 죄를 범하고 약한 양심을 때리면 죄를 범합니다(고전 8:12).
누군가가 형제에게 죄를 범하면 크리스트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12)
파울은 음식이 그의 형제를 실족게 하면 고기를 식사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의 형제를 실족게 하지 않도록 하는 목적에서입니다(고전 8:13).
파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개인적 자유를 제한합니다. 파울은 그의 형제를 실족게 하면 고기를 먹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13)
3. 파울은 사도로서 가진 자신의 권리들을 언급합니다.
1) 파울은 자신이 사도임을 강조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1~2절에 “내가 자유로운 자며 내가 사도이지 않으냐, 예수를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주 안에 나의 행위가 너희이지 않으냐? 만일 다른 자들에게 내가 사도가 아니나 적어도 너희에게 나는 사도이니 이는 너희가 주 안에 나의 사도의 봉인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1~18은 파울의 개인적 자유와 책임에 대해서입니다.14)
파울은 그가 예수님을 보았음을 근거로 그의 사도직을 강조합니다(고전 9:1).15)
그는 자신이 사도라는 그의 논제를 고린도 교회를 통하여 확증합니다. 고린도 교회가 존재하는 사실이 그가 사도라는 도장을 찍은 증거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파울이 사도임을 확증하는 도장 같은 역할의 교회입니다.
2) 파울은 사도로서 가진 자신의 권리들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3~6절에 “나의 조사자들에게 나의 변호가 이것이니. 우리가 식사하고 마셨기에(eat and drink) 권리를 가지지 아니하느냐? 나머지 사도들처럼 여자를 데리고 다니기에 권리를 가지지 아니하느냐?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않을 권리를 가지지 아니하느냐?”고 하였습니다.
파울은 사도 직분의 권위를 깎으려는 사람들의 힐문을 파괴합니다. 그는 자신이 그의 사도의 권리를 사용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월급을 받아 식사하고 마실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정을 가지지 아니함으로 인해 생계를 단순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자급 전도를 힘썼습니다.16)
고린도전서 9장 7~10절에 “누가 그 자신의 삯들에 전쟁(戰爭)하느냐, 누가 포도원(vineyard)을 심고서(plants) 그것의 열매를 먹지 아니하냐, 혹은(or) 누가 양 떼를 돌본 이후에 양 떼의 젖(milk)에서 먹지 아니하냐? 사람을 따라 이것들을 이야기하지 않거나 율법이 이야기하지 아니하냐? ‘타작하는 소를 쇠망을 씌우지 말라’라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것이라. 혹은 완전히 우리 때문에 그가 말씀하셨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파울은 일군이 생활비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전도자인 자신이 보수를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17)
고린도전서 9장 11~12절에 “우리가 너희에게 영적인 것을 뿌렸으면 만일 우리가 너희의 육체의 것들(material things)을 거둔다면 크느냐? 다른 자들이 너희의 권리를 참가하면 더욱더 우리가 그러하지 않냐”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거짓 스승들이 물질을 탐하여 두루 돌아다닌 일이 있었기 때문에 파울은 이 점에 교훈을 주기 위해 자급 전도의 처세를 한 것입니다. 또 파울은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자급 전도의 처세를 하였습니다.18)
3) 파울은 자신의 권리들을 사용하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12절에 “권리에 사용하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참으니 그 크리스트의 복음에 어떠한 방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서라”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3~15절에 “신성한 일꾼들이 성전에서 난 것을 먹고 제단에 시중드는 자들이 제단에 함께 나누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주께서도 그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에게 그 복음에서 살게 명령하셨노라. 그러나 내가 이것들을 하나도 사용하지 아니하였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사역자들이 그 수고의 보수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고전 9:13).19) 파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그것을 안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20)
주께서도 전도자들에게 복음에서부터 살게 명령하셨노라(고전 9:14). 전도자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그것에 대한 사례비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파울은 주의 말씀의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마 10:10, 룩 10:7).21)
파울은 자신의 권리들을 사용하지 아니하였습니다(고전 9:15).22)
고린도전서 9장 15~18절에 “그러나 내가 하나도 사용하지 아니하고 내가 이것들을 이렇게 그것이 내 안에 되기 위해 기록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에게는 오히려 죽기가 나의 자랑을 헛되게 만들기보다 좋음이니. 이는 만일 내가 좋은 소식을 전파한다면 나에게 자랑이 있지 아니함이니 만일 내가 좋은 소식을 전파하지 아니하였다면 나에게 화가 있겠음이니. 자발적으로 성취하면 보상을 지니나, 억지로 하면 경영을 위탁받았노라. 무엇이 나의 보상이냐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내가 값없이 복음을 놓으며 그 복음 안에 나의 권리에 충분하게 사용하지 아니하였기 안으로니”라고 하였습니다.
파울은 자급 전도를 포기하기보다 죽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고전 9:15).23)
만일 파울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파울은 복음 사역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렘 20:9, 고전 9:16).24)
파울이 그 자신의 사명이 아닌 것을 행하였을 때 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받은 직분을 행하므로 상 받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가진다면 보수를 기대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25) 그는 그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아니하였음을 반복하여 말합니다.26)
4. 파울은 모든 자에게 그 자신을 종으로 삼았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19~22절에 “내가 모든 사람에 자신을 종으로 삼으니 그 더 많은 사람을 내가 얻었기(win) 위한 것이고. 내가 그 유대인들에게 유대인과 같이 되니 유대인들을 얻었기 위해서며, 또 내가 그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율법 아래 있는 자와 같이 되었으니 율법 아래 있지 않은 바로 그이니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기 위해서며. 또 율법이 없는 자들에게 율법이 없는 자와 같이 되었으며 크리스트의 합법적인 자이나 내가 율법이 없는 자들을 얻었기 위해서며. 내가 그 약한 자들에게 약한 자가 되니 그 약한 자들을 얻었기 위해서며,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사람이 되니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서나”라고 하였습니다.
9장 19~23절은 통일된 수사학적 단위를 이루고 있습니다.27)
파울은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모든 자에게 종이 되었습니다.28) 파울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 여러 모양이 되었습니다.29)
그가 그 약한 자들에게 약한 자가 되니 그 약한 자들을 얻기 위해서며 그가 모든 자에게 모든 자가 되니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고전 9:22).
5. 파울은 우리가 운동선수들과 같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3~27절에 “모든 것들을 그가 복음 때문에 행하나니 내가 그것의 함께 참가자(a fellow partaker)가 되기 위해서라. 모든 자가 달리지만 하나가 상을 받는다는 것을 너희가 알지 아니하느냐 너희가 붙잡았기 위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달려라(Run). 싸우는(compete) 모든 사람은 모든 것들을 억제하노라, 저 사람들은 썩어질 왕관을 받기 위해서나, 우리는 부패하지 않는 것을. 그러한 까닭으로 이런 방식으로 내가 불확실하게 아닌 것과 같이 달리며 이러한 방식으로 내가 공중을 때리지 아니하는 것처럼 권투경기를 하나. 내가 나의 몸을 학대하고(discipline) 예속시키나니, 다른 자들에게 선포한 내가 가치 없는 자가 되지 않았기 위해서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9장 23절은 복음의 참가자에 관한 내용입니다(고전 9:23). 파울은 복음을 위해 모든 것들을 행합니다.30)
모든 자가 달리나 하나가 상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것인가요 우리는 붙잡으려고 이러한 방식으로 달려야만 합니다(고전 9:24).
파울이 고린도에 거주하는 동안 경기 대회가 개최된 것으로 보이므로, 고린도전서 9:24~27의 경주는 이 경기 대회와 관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본문 9장 24절은 “경주자 비유”입니다.31) 파울은 그리스 풍속인 경주를 염두에 두고 신앙생활을 비유합니다.32)
올림픽 경기에 금메달을 따기 위해 많은 선수가 스타디움에 달리지만, 금메달을 따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입니다.
싸우는 모든 사람은 모든 것들을 억제하니 저들은 썩을 왕관을 우리는 안 부패하는 것을 위해서입니다(고전 9:25).
23~27절 단락의 핵심은 25절로 왕관을 상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33)
우리는 넓은 문을 통하여 들어가지 아니하기 위해 싸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투쟁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싸워 이겨야 합니다(룩 13:24).
돈에 대한 사랑과 우상숭배로 향하려는 넓은 문이 우리를 유혹할 때에 우리는 그와 같은 유혹에 맞서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마 7:13).
경주자라면 누구나 모든 일에 절제하는 법을 훈련받아야만 합니다.34) 선수들은 매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에너지를 투입하여야 합니다.35)
그런 까닭으로 이 방식으로 파울은 불확실하게 아닌 것과 같이 달리며 그는 공중을 때리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권투경기를 합니다(고전 9:26).
26절에는 24절의 경주자 비유가 다시 언급되며 권투 비유가 추가되었습니다.36)
달리는 자들에게 빠르기도 중요하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반대 방향을 향하여 달릴 때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달리는 방향이 불명확하면 안 됩니다. 목적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가 목표를 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도 목표를 정하고 밀어붙입니다. 저 사람들은 썩어질 화관을 받기 위해서나, 우리는 부패하지 않는 것을. 영원한 상을 받겠다는 확실한 목표와 방향을 정하고 달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목적을 붙잡기 위해 달려야 합니다.
사도 파울은 “내가 불확실하지 않은 것처럼 달리노라”라고 하였는데, 경기에서 달리는 방향을 불확실하게 잡는다면 절대 승리할 수 없습니다. 권투경기를 하는 사람이 허공을 때린다면 이길 수 없습니다(고전 9:26).
우리의 목적은 이 땅 위에서 섞어질 화관을 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부패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화관을 받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그러나 내가 나의 몸을 학대하고 예속시키니 다른 자들에 선포한 내가 가치 없는 자가 되지 아니하기 위해서라.”라고 하였습니다(고전 9:27).
파울이 그의 몸을 학대하고 예속시킨다고 말한 것의 뜻은, 삶과 행실을 철저하게 제어한다는 뜻입니다.37)
많은 사람이 이것을 통하여 성도의 견인이 옳지 아니하다고 말하지만, 이 구절은 성도의 견인을 부정할만한 증거 구절이 되지 못합니다.
구원받은 자는 영원히 구원에서 떨어지지 아니합니다.38) 고린도전서 9장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직무’에 관한 말씀입니다.39)
고린도전서 9장 27절의 번역이 바르지 않은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인데, 버린다고 번역된 헬라어는 “무가치한”으로 바꾸어서 번역하여야 합니다. “castaway”(쓸모가 없는), “disqualified”(자격을 빼앗긴)이라는 뜻인데 파울은 쓸모없고 자격을 빼앗기는 자가 되지 아니하기를 바란 것입니다. 무가치한 자로 판명되어 자격을 빼앗기지 아니하기를 바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은 개인의 구원을 다룬 구절이 아닙니다.40)
1) Kenneth E.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김귀탁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341.
2)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43.
3)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서울: 영음사, 1981), 11.
4)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46.
5)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46.
6)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47.
7)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47.
8)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47.
9)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47.
10) 크레이그 블롬버그 & 제니퍼 마클리, 『신약성경 석의방법』, 류호영 옮김 (서울: 도서출판 대서, 2012), 146.
11)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47.
12)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47.
13)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63.
14)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47.
15) 문병구, “사도의 생계비 포기와 그리스도인의 자유”, 『신약논단』 제18권 제4호 (2011): 1084. (1075-1101)
16)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129.
17)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129.
18)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131.
19)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132.
20) 문병구, “사도의 생계비 포기와 그리스도인의 자유”, 1092.
21) 문병구, “사도의 생계비 포기와 그리스도인의 자유”, 1092.
22)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47.
23)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133.
24) 문병구, “사도의 생계비 포기와 그리스도인의 자유”, 1094.
25)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134.
26)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76.
27) 서동수, “고린도전서 9:19-23 복음, 해석학, 선교, 문화에 대한 사도바울의 이해”, 『선교와 신학』 제30집 (2012): 206.
28)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135.
29) 서동수, “고린도전서 9:19-23; 복음, 해석학, 선교, 문화”, 206.
30)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83.
31)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83.
32)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138.
33)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83.
34)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90.
35)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94.
36)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383.
37) James D. G. Dunn, 『바울 신학』, 박문재 역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3), 115.
38)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140.
39)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4), 392.
40)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6』, 395.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생은 우리에게 행복과 고난을 안겨 주지만 우리는 그것을 선택해서 받아 들일만한 권리는 없습니다.
행복과 고난은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지만 그 두가지는 언제나 나란히 놓여 있답니다.
행복과 고난의 끝에서도 지금의 순간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며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 할줄 안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상쾌한 마음으로 미소 가득히 힘차게 출발 하시여 멋진 하루길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