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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고린도전서 10장 1~4절에 “너희가 알지 못하기에 바라지 아니함이니 우리의 모든 그 조상들이 그 구름 아래 있고 그 바다를 통해 통과하였고. 모든 사람이 그 모세 안으로 구름 안과 바다 안에 세례를 베풂을 받았고. 모두 같은 영적인 음식을 먹었으며. 모두 같은 영적인 음료를 마셨으니, 그들이 영적인 반석에서 마셨음이나 그 반석은 크리스트이셨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토플레이디(Augustus Toplady, 1740~1778) 목사님은 “만세 반석 열리니”라는 찬송가를 작시하였습니다.
18C 중반 영국에서 짧은 생애를 살다가 죽게 된 토플레이디 목사님은 어느 날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를 만나게 되었기에 피난할 장소를 찾다가 바위틈에 숨었습니다. 그때 기록한 시(詩)가 “만세 반석 열리니”입니다.
반석이신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신자들의 목마름을 채우시는 분이시며 피난할 반석인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 나를 위하여 쪼갬을(cleave) 받으셨습니다(찬송가 494장).
고린도전서 10장 5~11절에 “많은 자에 좋게 생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황량한 곳에서 그들이 멸망하였음이나. 저들도 욕구한 것에 따라서 우리가 나쁜 것들의 욕구하는 자들이지 않도록 우리의 자극이 되었으나. 그들의 어떤 사람들에 따라서 너희가 우상 숭배자들도 되지 않도록 하라 ‘백성이 먹고 마시기 위해 앉고 놀기 위해 일어났다’라고 기록되었으나. 그들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한 것에 따라서 우리가 음행하지도 아니하자. 그들이 시험하고 뱀에 멸망한 것에 따라서 그들처럼 시험하지 아니하자. 그들의 어떤 사람들이 불평한 것에 따라서 그들처럼 불평하지 아니하라, 그들은 그 파괴자(destroyer)에 의해서 멸망하였으나. 이것들이 본보기로 일어났으나 우리의 경고를 향하여 기록되었으니 우리 안으로 그 시대들의 그 끝이 이르렀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더 많은 사람 안에 그 하나님께서 좋게 생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황량한 곳에 그들이 멸망하였음입니다. 그들도 욕구한 것에 따라서 우리가 나쁜 것들을 욕구하는 자들이 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우상 숭배자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하지 못할 것이며(고전 6:9~10), 우리는 그들의 어떤 자들처럼 우상 숭배자들이 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번제와 화목제를 오르게 하고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놀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며 금송아지를 섬겼습니다.
우리는 크리스트교 안에 있을 수 있는 우상을 주의하여야 하겠습니다. 크리스트교 안에 있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크리스트교를 믿는다고 하나 그 실상을 보면 참 크리스트교가 아닙니다. 크리스트교를 믿는다고 하나 성경 말씀대로 믿지 아니하며 제멋대로 만들어낸 우상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크리스트교를 믿지 아니하고 자기 생각을 따라서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13절에 “섰기에 여기면 떨어졌지 않도록 보라. 사람의 아니라면 유혹이 너희를 취하지 아니하였으나 할 수 있는 바를 넘어 유혹되게 버려두지 않으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나 그가 그 유혹과 함께 또한 지탱할 수 있게 그 출구도 만드실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영적인 음식”은 “만나”를 말하고, “영적인 음료”는 크리스트의 예표인 반석에서 솟아난 물입니다(고전 10:3~4). 그들은 영적인 음식을 먹었고 영적인 음료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멸망하였습니다(고전 10:5). 음식 그 자체에는 멸망을 면하게 할 만한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의 만찬을 먹고 마신다고 멸망하지 아니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이 그와 같았던 것처럼 나쁜 것들을 욕구하고 우상 숭배자들이 되고 음행하고 크리스트를 시험하고 불평하면 그들과 같이 멸망합니다. 이것들은 본보기로 일어났고, 우리 안으로 경고를 향해 기록되었습니다. 섰다고 여기는 자는 떨어지지 않도록 보아야만 합니다(고전 10:11~12). 우리 앞에 유혹이 놓여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합니다.
성적인 “유혹”이 가장 보편적인 “유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1)
유혹이 있다고 넘어가면 안 되고 유혹에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유혹에서 그 자신을 지키는 방법의 하나가 친구에게 상담하는 것입니다.
믿을만한 친구한테 상담할 때, 친구가 분별력을 가지게 도와줍니다.2) 유혹으로 데리고 들어감을 받지 않기 위해 기도하여야 합니다(마 6:13).
1. 파울은 우상의 위험성을 말합니다(고전 10:14~22).
고린도전서 10장 14~15절에 “너희는 그 우상숭배로부터 달아나라. 총명한 자들에게처럼 말하니 내가 선언하는 바를 너희는 판단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에서 패배자들이 달아나듯이 우상숭배에서부터 달아나야 합니다. 멸망하지 아니하려고 달아나듯이 우상숭배에서부터 달아나야만 합니다. 유혹 앞에서 달아나듯이 우상숭배에서부터 달아나야 합니다(창 39:12). 위험 앞에서 달아나듯이 우상숭배에서부터 달아나야 합니다(출 4:3).
‘신(god)들’이라고 말해지는 자들이 하늘과 땅에 있습니다(고전 8:5).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으로 섬기는 우상들입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며 무신론자들은 ‘자아’라는 우상을 숭배합니다.
미련한 자는 자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라고 말합니다(시 14:1).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은 실상 다른 대상을 하나님으로 섬깁니다. 특별히 그들의 하나님은 부(富)의 신(神)인 맘몬(Mammon)입니다.
그들은 부패한 사람들이며 행위를 가증스럽게 행동하며 선(good)을 행하는 자가 없습니다(시 14:1).
그들은 돈 때문에 양심을 팔았으며 거짓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입니다. 해결하여야 할 두 가지 거짓은 좌파의 부정선거와 5·18 광주사태입니다. 좌파는 광주 “폭동”을 민주화운동으로 둔갑시켜 한국을 집어삼켰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22절에 “축복의 잔은 크리스트의 피의 참가며, 우리가 떼어 내는 바의 그 떡은 크리스트의 몸의 참가가 아니냐? 하나의 떡 많은 우리가 하나의 몸이니, 모두 하나의 떡에 함께 나눔이라.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들을 먹는 사람들이 제단의 참가자들이지 않으냐? 무엇을 내가 말하느냐, 우상에게 바친 것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그들이 제사하는 바들을 귀신들에게고 하나님께 제사하지 않으나 나는 너희를 그 귀신들의 참가하는 자들을 되기에 바라지 않노라. 너희가 주(主)의 잔과 귀신들의 잔을 마실 수 있지 않노라 너희가 주(主)의 식탁과 귀신들의 식탁의 참여할 수 있지 않노라. 우리가 주(主)를 질투하시게 만드느냐 우리가 그보다 더 강력하냐”라고 하였습니다.
제물을 먹는 자들은 곧 그 제단의 참가자들입니다(고전 10:18).
다른 누군가와 “무엇인가에 동참자”가 된다는 뜻입니다(마 23:30).3)
“참가”(코이노니아)는 “분배”, “함께함”, “참가”로 번역되며, “함께”(쉰)라는 개념이 그 속에 있습니다(마 25:27, 26:35, 27:38).
이 언급은 황야 유랑 동안 일어났던 여러 차례의 우상숭배를 포함하나 특히 금송아지 예배 에피소드를 가리키고 있음이 확실합니다.4)
아론은 금송아지를 위해 제단을 짓고 야훼께 축제를 불렀고(출 32:5), 번제가 오르고 그 백성이 먹기와 마시기 위해 거주하였습니다(출 32:6).
제물을 먹는 자들은 곧 그 제단의 참가자들입니다(고전 10:18). 그들은 우상의 제물들을 먹음으로써 그 우상의 제단에 함께한 것입니다.
그들은 악한 일들을 행함으로 그 참가자들이 되었습니다(왕하 17:11). 그 우상숭배는 그들을 그들이 숭배한 우상의 동참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 우상의 잔치는 앞에 16~17절에 언급된 주의 잔치와 대조됩니다.5)
신명기 32장 17절에 “그들이 그 악마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며 새로운 신(god)들이며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한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파울은 우상에게 바친 것과 우상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고전 10:19). 파울은 우상에게 제물을 바쳐서 제사하는 것에 대해 질문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0절에 “그들이 제사하는 바는 귀신들에게나, 나는 너희를 그 귀신들의 참가하는 자들을 되기에 바라지 않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앞에 18절에 제물을 먹는 자들은 “제단의 참가자들”인 것을 말하였고, 20절에 귀신들에 제사할 때에 “귀신들의 참가자들”인 것을 말합니다.
앞에 19절에 “우상에 바친 것”을 우상에 제사하는 의미로 말하였는데, 20절에 “그들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들에 제사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귀신들에게 제사하는 자는 그 귀신들의 참가자가 됩니다(고전 10:20). 그 귀신들과 “공통의”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게 된 것입니다. 귀신들에 제사하면 귀신들의 참가자가 된다는 것이 이 단락 중심입니다.
우리는 “크리스트의 참가 안에 부름을 받게 된” 자들입니다(고전 1:9). 파울은 이 편지에서 “참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찬에 참가하면 크리스트의 피와 그의 몸에 참가합니다(고전 10:16). 반대로 우상의 제물들을 먹는 자들은 우상에 참가하여서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주의 잔(cup)과 귀신들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없고 우리가 주의 식탁과 귀신들의 식탁에 참가가 불가능합니다(고전 10:21).
그 잔은 그의 피의 참가며 그 떡은 그의 몸의 참가입니다(고전 10:16), 많은 우리가 하나의 몸이니, 다 하나의 떡에 함께 나눕니다(고전 10:17).
우리가 주의 잔과 귀신들의 잔을 함께 마실 수 없고 우리가 주의 식탁과 귀신들의 식탁에 참가가 불가능합니다(고전 10:21).
고린도전서 10장 22절에 “우리가 주(主)를 질투하시게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22절은 14절의 “우상숭배로부터 달아나라”라는 명령과 대칭 병행되며 우상숭배로부터 달아나지 않으면 주(主)를 질투하시게 만듭니다.6)
신명기 32장 16절에 “그들이 그를 낯선 것들로 질투하게 하였고 혐오들로 분노하게 하였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신명기 32장 21절에 “그들이 신(神)이 아닌 것으로 질투하게 하였으며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질투하게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14절은 신당에서 지낸 제사 연회에 참가하는 것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16~18절은 성찬 참가의 원리를 제사 연회의 참가에 적용하여 말합니다. 성찬에 참가하는 것은 크리스트의 몸과 피에 참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상 제물에 참가하는 것은 우상에 참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파울은 제사 연회에 참가하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파울은 제물을 먹는 사람들은 그 제단에 참가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제물을 먹은 행위는 그 제단에 참가한 행위와 같다는 말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이 우상에 제사하는 것은 곧 귀신에 제사하는 것입니다.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에 불과하나 배후에는 귀신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상들에 절을 하면 배후에서는 귀신들이 절을 받는 것입니다. 제사상을 차려놓고 절을 하면 배후에서는 귀신들이 절을 받는 것입니다.
성찬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 그 음식이 크리스트의 몸의 참가인 것처럼 우상숭배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귀신들의 참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숭배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피하여야 합니다.
제사상을 차려놓은 곳에 보이지 않으나 귀신들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귀신들의 참가자가 되는 것입니다. 파울은 믿는 자가 귀신들의 참가자가 되기 바라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사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를 삼가야 하겠습니다.
조상 제사는 12세기 말 중국 송나라의 주희(주사)가 시작한 것입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서 국교를 불교로부터 성리학으로 바꾸었으며 왕에게 충성할 것을 주장하려니까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을 말하게 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효도 중의 효도라고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7)
그러나 부모님께서 살아 계시는 때에 효도하는 것이 참된 효도입니다. 죽은 후에는 제사상을 차릴지라도 제사 자리에 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사는 부모 생전 때 효도하지 못한 자손들의 자기 위안에 불과합니다.
이미 죽은 사람의 혼령은 저승에 가 있고 세상에 돌아올 수 없습니다. 저승은 낙원과 지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결정되면 변경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제사상을 차릴지라도 지옥에 있는 혼령이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최선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죽은 사람의 장소는 결코 바꿀 수 없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어디로 갈지를 선택할 기회가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믿고 죄 용서받고 지옥 안 가는 것이 제일 나은 선택입니다.
내가 먼저 예수 믿고 부모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 부모님을 전도하여 부모님이 지옥에 가지 아니하시고 천국에 가시게 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부모님이 영원히 고통당하는 지옥에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제사상을 크게 차려도 잡수실 수 없습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에 잘 대접하고 전도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돌아가신 후에 하는 것은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미 죽은 사람의 혼령은 제사상을 통하여 어떤 위안도 받을 수 없고, 제사상 배후에서 타락한 천사들이 귀신들이 되어 섬김을 받고 있습니다. 제사는 결국 귀신들에게 하는 것이고 귀신들의 참가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곧 귀신들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식탁과 귀신들의 식탁 양쪽 모두 참여할 수 있지 아니하니, 여자가 두 남자에게 사랑한다고 하면 남자가 질투하지 아니하겠습니까? 믿는 자가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주(主)를 질투하시게 만드는 것입니다.
2. 파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을 줍니다.
1) 모든 것이 가능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아니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3~24절에 “모든 것이 가능하나 유익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가능하나(are lawful) 모든 것이 세우지는 않으니. 아무도 자신의 것을 찾지 아니하나 다른 자의 것을.”이라고 하였습니다.
법적으로 가능한 일이라 해도 모두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고전 6:12). 모든 것들이 합법적이나 모든 것들이 유익하지 아니합니다(고전 10:23). 유익하지 아니한 일을 합법적이라고 굳이 행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가능하지만 행하기 거부하는 것을 양심 자유의 사항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라틴어로 “아디아포라”라고 부릅니다. 가능한 문제에 있어서 신자들은 자유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면 자유를 양보하는 것입니다. 행하기에 합법적인 일이라도 유익하지 아니한 일이 있는 것입니다.8)
유익하지 아니한 것들을 굳이 가능하다고 행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유익하지 아니하고 세울 수 없는 것들을 행하지 아니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자를 유익하게 하고 세우기를 힘써 추구하여야 하겠습니다.
2) 그러나 불분명한 것은 조사하지 말고 먹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5~30절에 “시장 안에 파는 것을 조사 없이 먹어라. 이는 그 땅이 주의 것이고 그것의 채우는 것도 그러함이라. 만일 그 믿지 아니하는 자 중 어떤 사람이 부르고 너희가 가기를 바라면, 모든 것을 그 양심 때문에 아무것도 조사하지 않는 너희는 먹을 것이나.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은 신(神)에게 제물로 바쳐진 것이라’라고 말하면 보고한 저 사람과 그 양심 때문에 너희는 그것을 먹지 않도록 할 것이나. 내가 그 자신의 양심을 이야기하지 아니하나 다른 자의 것을 그러함이니 무엇 때문에 나의 그 자유가 다른 양심에 의해서 판단함을 받을 것이냐? 내가 은혜에 함께 나누면, 무엇을 감사하기 때문에 모독을 받느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시장에서 팔리는 고기는 우상에 바쳤던 것인지 조사할 필요 없습니다. 그 고기는 상품일 뿐이며 물질은 하나님께서 좋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크리스천이 불신자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서 음식을 대접받으면, 그 음식이 우상에게 바친 것이었는지 조사하지 말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다만 음식일 뿐이며 그 안에 어떤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고전 10:27). 이것저것 조사하여서 초대한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감사함으로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은 신(神)에 제물로 바쳐진 것이라’라고 말하면 보고한 저 사람과 그 양심 때문에 우리는 먹지 아니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그 양심을 위하여 우리는 그것을 먹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23~24절에 “모든 것이 가능하나 유익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가능하나 모든 것이 세우지는 않으니. 아무도 자신의 것을 찾지 아니하나 다른 자의 것을.”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에게 가능하나 다른 사람들의 양심 때문에 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자유를 찾지 아니하고 다른 자의 양심을 찾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나의 자유가 다른 양심에 의해 판단함을 받을 것입니까? 내가 은혜에 함께 나누면, 무엇을 감사하기 때문에 모독함을 받습니까?
다른 사람의 비평을 무릅쓰고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9)
내가 먹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의 양심에 의하여 판단될 필요가 없으며 내가 감사하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모독함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음식이므로 감사하면서 먹는 행동은 좋을지라도 그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지 못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10)
3)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여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너희가 먹으면 마신다면 무엇을 행한다면 너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이 땅에 살도록 창조하신 목적입니다.
미식축구 선수인 팀 티보(Tim Tebow)는 터치다운을 하고서 기도하여 무릎 기도를 가리키는 신조어인 티보잉(tebowing)을 탄생시켰습니다.
티보는 자기 자신을 오직 주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경기 중 햇빛의 반사를 막기 위해 눈 밑에 검게 칠하는 것을 아이 블랙이라 하는데, 아이 블랙에 “John 3:16”을 적어 넣어서 그는 그 경기를 보는 1억 명의 사람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을 반사하여 우리의 빛이 빛나게 하여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좋은 행위들을 보고 하늘 안에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마 5:16).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시며(사 42:8, 출 14:16~18), 이집트의 군대를 바다에 빠뜨리신 것도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영화롭게 하는 자들을 영화롭게 하시며(삼상 2:30), 그분은 그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고자 하는 사람을 귀하게 높여 주실 것입니다. 그 영향력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2~33절에 “죄를 범하게 하지 않게 하라. 그들이 구원되기에 나 자신의 이익을 아니나 많은 사람의 것을 추구하는 나도 모든 것을 모든 사람에게 기쁘게 하기 위한 것에 따른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죄”라는 말의 뜻은 목적에서 빗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모든 것들을 만드신 왕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순종하기 싫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살고자 합니다. 스스로 자기 인생의 왕이 되어 모든 것을 자기 뜻에 따라 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빗나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창조 목적에서 빗나간 것이 바로 “죄”입니다.
믿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산 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잘못된 인생을 살았음을 마음 아파하고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순종하면서 살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악마는 이 세상의 모든 왕국의 영광을 추구하면서 살도록 유혹합니다. 그러한 영광을 추구하며 살지 않겠다는 결단이 회개하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회개가 있어야 진정한 “믿음”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믿기만 하면 된다는 가짜 복음은 회개 없는 교인들을 만들어냅니다.
그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슬퍼하고 “마음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죄의 길로부터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길로 유턴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며 살기로 마음먹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살던 삶에서 유턴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하셨습니까?
4) 파울을 본받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 “너희는 나의 본받는 자들이 되라, 그리고 나도 크리스트의 그러한 자인 것에 따라서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본받는 자(imitator)”라고 번역한 헬라어(미메테스)는 “모방하다”(imitate)라는 동사(미메오마이)에서부터 나왔으며 “본받는 자”, “모방자”(imitator), “추종자”(follower)를 의미합니다.
결론으로 “나의 본받는 자들이 돼라”라고 권면하였습니다(고전 4:16). 누군가를 본받고 모방하기 위해서는 본받을 본보기가 필요합니다. 그는 “모범”(example)이었고 “모델”이었고 “본보기”(pattern)였습니다.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였던 파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 권면이 “나도 크리스트의 본받는 자인 것에 따라서”라고 말합니다. 파울도 본받을 모델이 있었는데, 파울의 모델은 예수 크리스트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본 그 군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사셨습니다(마 9:8, 15:31). 탄생부터(룩 2:20) 죽음까지(룩 23:47)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주신 일을 땅에서 완성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요 17:4).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과 사명을 완성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가 죽는 방식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요 21:19). 베드로는 예수님을 전하다가 죽을 때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1) 스티븐 아터번․섀넌 에트리지, 『모든 여자의 들키고 싶지 않은 욕망』, 윤종석 옮김 (서울: 좋은 씨앗, 2005), 89.
2) 아터번․에트리지, 『모든 여자의 들키고 싶지 않은 욕망』, 89.
3) Gregory K. Beale, 『예배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 김재영·성기문 역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334.
4) Beale, 『예배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 330.
5) Beale, 『예배자인가, 우상숭배자인가?』, 332.
6) Kenneth E.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김귀탁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416.
7) Preachers 절기 설교, “제사와 효도”
8)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성경주석, (서울: 영음사, 1981), 151.
9)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53.
10) 박윤선, 『고린도전후서』, 153.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은 사랑을 나눌 줄 알고 베풀 줄 아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작은 것 이라도 아끼고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검소함 이라고 합니다.
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진실한 말 한마디로 믿음과 행복을 줄수 있는 마음 이라고 하네요.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불러온다구 했으니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부리지 말고 양보를 하면서 살아요.💖
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잠 16:13).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