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없는 주시
가장 기본적인 주시는
'대상 없는 주시'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특정한 장면이나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단지 넓은 범위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경이로워하는 것이다.
최근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숙소 근처
밀림이 우거진 산으로 운동 삼아
종종 등산을 가곤 했다.
그곳에는 다양한 형태의 열매를
매단 식물과 나무들이 가득했다.
산을 절반쯤 올라갔을 때 나는
열기와 습기, 높은 고도,더없이
다양한 식물과 나무와
열매들에 압도되어 지쳐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 나무로 만든
의자와 벤치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의자들에 앉아 지친 몸을
달래며 그저 풍경을
자각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이 열린 휴식과 순수 자각을
경험하기 위해 리우데자네이루의
언덕을 오를 필요까지는 없다
잔뜩 쌓인 설거지를 마친
뒤에도 그것을 경험할 수 있다.
설거지를 끝냈을 때 당신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의자에 앉는다.
몸은 지쳐 있지만 마음은 심호흡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해. 평화롭고
완전히 열려 있고 온전히 휴식한다
아이들이 다른 방에서 시끄럽게
장난치거나 혹은 당신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계속해서 변하는 화면들과 중간에
끼어드는 광고들을 지켜보면서.
하지만 어느 것도 당신의 심호흡과
휴식을 방해하지 못한다.
생각과 감정과 신체적인 느낌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질 수 있지만
당신은 심호흡을 하면서 휴식하고
단순히 현재의 순간에 열려 있으면서
그 모든 것들을 가볍고 부드럽게
주시한다. 설거지를 하거나
남미의 밀림을 기어오르는 일은 이미
과거이며 과거는 끝이 났다.
설거지를 또 하거나
밀림을 다시 오르는 일은 미래의
일이며 아직 오지 않았다.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는
다만 현재의 심호흡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대상 없는 주시 상태에서
마음을 휴식하는 방법이다.
마치 분량이 많고 힘든 일을
방금 끝낸 것처럼 다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긴장을 푸는 것이다.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과 신체적인
느낌이 무엇이든 그것을 저지할
필요도 없고 또한 뒤쫓을 필요도 없다
심호흡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
다만 편히 휴식하는 것이다.
생각,감정, 신체적인 느낌이 일어나면
그냥 그것들을 자각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고 마음을 환상과
기억과 망상들 사이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두는 것이
대상 없는 주시의 의미가 아니다.
어떤 것에 특정하게 고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자각은 여전히 존재하며.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자각하고 그것들에 깨어 있다
얼마 전 미국 콜로라도의 덴버
국제공항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다.
덴버 공항은 여러 개의 큰
터미널을 가진 대형복합건물이다.
머리 위의 트랙을 타고 수많은 셔틀
객차들이 각 터미널의 여러 장소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난 의자에 앉아서 객차들이 앞뒤로
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들이
내 자각 속을 통과하는 것을
단순히 지켜보는 일에 만족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각각의 객차들 뒤를
일일이 쫓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저것이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서 오는 거지? 출발지점에서
종착지점까지 얼마나 걸리지?'
나는 단지 객차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지켜보았을 뿐이다
이 대상 없는
주시 차원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실제로 생각과 감정과 몸의
감각들의 출몰에 전혀 영향
받지 않는 자연스런 투명함속에서
마음을 편히 쉬게 된다.
이 자연스런 투명함은 공간이
언제나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늘 존재한다.
어떤 의미에서 대상 없는 주시는
우리 앞에 있는
나뭇가지와 잎들을 자각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볼 수 있게 하는
공간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나뭇가지와 잎들이 공간
속에서 움직이고 흔들리듯이
생각과 감정과 기분들이 순수
자각 안에서 움직이고 흔들린다.
공간 속을 지나다니는 물체들로써
공간을 정의 내리지 않듯이
생각과 감정과 신체적인 느낌들을
가지고 순수 자각을
정의하거나 한정 지을 수는 없다.
순수 자각은 단순히 '있음' 그것이다
대상 없는 주시는 '공간(순수 자각)'
을 배경으로. 또는 '공간' 안에서
출현하는 생각과 감정과 신체적인
느낌 등을 단순히 관찰하면서
이 '있음'의 상태에 자리 잡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명상이
설거지를 마치고 의자에
앉는 것만큼 쉽다는 것을 발견한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좀 어렵게 받아들인다.
내가 그랬다.
아버지를 비롯한
나의 스승님들이 대상 없는
주시를 설명해 줄 때마다
나는 어리둥절하고
약간 화가 나기까지 했다.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혹은
많은 불교 경전들이 비유하듯이
'연못에 비친 달' 처럼 단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지.
마음이 몹시 불안할 때는 나의 생각과
감정과 신체적인 느낌들이 결코
'연못에 비친 달' 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무서울 만큼 요지부동의
실제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순수자각 상태로 우리를 안내
하는 또 다른 단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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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기초교리
대상 없는 주시
고구마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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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1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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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