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나의 스승(박민서 신부, ‘좋은생각’ 중에서)
수화로 미사집전 하시는 박민서 신부님
어릴 때부터 청각 장애인 부모님께 소리 없는 언어, 수화를 배우며 자란 정순오 신부님.
청각 장애인의 애환과 필요를 누구보다 잘 아는 분으로 오랜 시간 그들을 도우셨습니다.
무엇보다 청각 장애인이 고백 성사나 미사를 직접 드릴 수 있도록 한국에도 그들을 위한 신부가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고는 두 살 때 청력을 잃은 나를 사제의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당시, 한국에는 청각 장애인이 신부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어 미국 유학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10년 만에 겨우 공부를 마치고, 다시 혼신의 힘을 들여 2년여에 걸쳐 작성한 논문 심사를 앞둔 날이었습니다.
유학 생활의 마지막 관문인 석사 학위 논문 심사였죠. 가슴을 졸이며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결과는 불합격!
가슴이 찢어지고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쓰라린 아픔을 겪었습니다.
내 모든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었기에, 더 이상 할 것이 없다는 좌절감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러다 가톨릭 신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어 가정을 꾸릴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고민 끝에 새로운 삶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신부님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섭섭해 하거나 화내시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에 뜻밖의 답신이 왔습니다.
“네가 네 삶을 주관하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네 삶을 결정해 주거나 강요할 수 없다.
가톨릭 신부가 되든, 결혼을 하든 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청각 장애인이 오래전부터 네가 신부가 되길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을 꼭 기억해라.”
신부님의 답신은 내게 힘찬 용기를 주었습니다.
한순간, 시련을 이기지 못하고 서툰 결정을 한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각오로 논문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반년 만에 논문 심사를 통과하고, 유학 생활을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내겐 자상한 아버지이자 인생의 스승이신 정순오 신부님.
그의 격려와 충고가 없었다면 아마 가톨릭 신부로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겁니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희망을 전하는 사제의 길을 가도록, 그는 밝게 빛을 비춰 주는 등대 같은 분입니다.
아시아 가톨릭교회 사상 첫 농아(聾啞)사제가 될 박민서 신부(오른쪽)와 그를 사제의 길로 이끈 정순오 신부.
박 신부는 "농아 사제의 탄생은 장애인들에게 영광을 주는 일"이라며 "농아인들을 사랑하는 친구가 되겠다"고 밝혔다.
첫댓글 박민서신부님이라서가 아니라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준 신부님에게
기도와 힘찬 박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