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 우리말과 겨레 문화의 기원을 찾아서
김 병호 공학박사/ 문화 탐험가
우리말과 문화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만큼 독특해서 기원을 밝히는 작업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그 이유는 한반도에서 구석기 시대부터 살았던 토착민의 언어와 문화에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이동해 온 이주민들의 언어와 문화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어 한반도 이외의 특정 민족 집단의 것과 뚜렷한 친근성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민족의 한반도 자생설(自生說)을 고집한다면 우리말과 문화의 기원을 찾는 작업을 포기하는 결과를 자초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민족적 차원에서 우리말과 문화의 기원을 밝히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간 우리 학계는 우리말과 문화의 뿌리를 북방 시각으로 보아 왔다. 즉, 시베리아, 몽고, 중앙 아시아, 터키에 이르는 알타이어계와의 연결 작업을 시도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연구 결과를 접하면서 당황해 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이 우리와 유사한 몇몇 알타이어와 문화 자료를 우리 민족의 기원에 결부시켜 침소봉대해 놓은 허상이 무너지면서 우리는 허탈감마저 느낀다. 결과로 우리 민족의 한반도 자생설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이 최근 우리 학계의 실정이다.
글쓴이는 지금까지 우리 학계가 연구해 왔던 북방설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주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 보았다. 즉, 북방이 아니고 남방과 서방 쪽의 가능성이 바로 그것이다. 글쓴이는 지난 15년 동안 UN 산하 국제 식량 농업 기구(FAO)에서 근무한 기간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틈틈이 우리의 것과 같거나 유사한 말과 문화가 아직도 살아 숨쉬는 현장에 서 보았다. 결과로 적지 않은 자료들을 수집했다. 글쓴이는 어렵게 수집한 자료들을 우리말과 문화의 진정한 기원을 밝히는 문제에 결부해서 발표하고자 한다.
1. 우리말의 기원
⑴ 문법
문법적으로 우리말과 가장 유사한 말은 일본어, 니브흐어, 라후어, 드라비다어이다. 이 가운데 일본어, 니브흐어, 라후어는 70% 이상, 드라비다어는 40%, 그러나 알타이어는 15% 정도가 같을 뿐이다.
⑵ 음성
태국어, 라후어, 버마어가 우리말의 세계적 특징인 3중 대립 현상이 있는 등 우리말과 매우 유사하다.
⑶ 기본 어휘(Swadish Chart)
놀랍게도 우리말과 유사한 어휘는 드라비다어와 아리안어계의 말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드라비다어에서는 약 1,200개, 힌디어·우루두어·다리어·희랍어·영어 등의 아리안어계에서는 400개 이상의 유사 어휘가 발견되었다. 알타이어에서 발견되는 유사 어휘는 불확실한 음운 대응 방법을 사용해도 우리말과 유사한 어휘가 상대적으로 적다. 우리말과 유사 어휘가 많이 발견되는 알타이어계의 터키어 어휘는 그들이 주변의 아리안어계 국가에 용병으로 가서 차용해 온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말 어휘와 아리안·드라비다어 유사 어휘 비교의 예]
〈수사〉
한국어 아리안어 알타이어 다리어 희랍어 몽고어 터키어 하나 애 에나 니키 베르 둘(두) 두 두오 하여르 이키 셋(세) 세 트리아 오릅 웃취
* 우리말 ‘애’는 하나(1)의 뜻이 있음. 논 애벌매기 → 첫 매기, 애벌 빨래 → 첫 빨래 〈동작어〉 가요 → 자요(힌디어, 네팔어) 와요 → 와요(힌디어, 네팔어) 〈천체 기상어〉 라(太陽) → 라(중동, 남부 유럽, 이집트) 수리(太陽) → 수리(다리어, 우루두어, 힌디어) 해 또는 새 → 하(산스크리트어) 별 → 빌(드라비다어) 구름 → 쿠룬(다리어) 달 → 탈(다리어)
〈인칭어〉 나 → 나(드라비다어) 너 → 니(드라비다어) 어머니 → 엄마(드라비다어) 아버지 → 아뻐지(싱할리어)
〈장소어〉 골(邑, 村) → 골(다리어) …데 → …데(희랍어) 부리 또는 벌 → 푸라(힌디어), 부리(태국어), 풀(영어) 바다 → 바하르(다리어, 아랍어) 내(川) → 나하르(다리어, 아랍어)
〈곡식 및 음식어〉 보리 → 바어리(영어) 밀 → 밀(제분소; 영어) 쌀 → 살 또는 할(힌디어, 드라비다어) 벼 → 비아(힌디어, 드라비다어) 밥 → 밧(힌디어, 드라비다어)
〈긍정 및 부정〉 예 → 예스(영어 등 아리안어계) 않 → 안, 안티(영어 등 아리안어계)
〈고대어〉 어라가(백제의 왕) → 라자(힌디어, 우루두어, 다리어) 어륙(백제의 왕비) → 렉(다리어) * ‘어’는 경칭임. 어머니, 어버이 등
〈기타〉 불(火) → 풀(고대 영어), 퓔(희랍어) 아침(고대어 ‘아시’) 또는 새벽 → 아시(희랍어), 아룬(태국어), 아사(일본어), 사바흐(아랍어), 수바하(힌디어)
2. 우리 문화의 기원
우리 문화의 대부분은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의 것과 대단히 유사하다. 우리 문화의 고향은 이들 지역일 수밖에 없다.
⑴ 신앙 및 무속
-태양 숭배: 태양을 향해 절을 하고, 태양을 수레바퀴 문양으로 나타내는 등 인도의 것과 가장 유사하다.
-솟대 및 소도: 솟대에 새(鳥)를 올려놓거나, 소도를 신성 지역으로 하는 등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의 것과 유사하다.
-남성 성기 숭배: 인도,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한국으로 이어지는 이동 경로가 확인된다.
-무속: 우리의 무속은 북방의 엑스타시(탈혼)보다는 동남아의 포재션(빙의)에 더 가깝다.
-띠배: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지에서 오늘날에도 대대적으로 행하고 있다.
⑵ 탄생 설화
-천손 설화: 인도, 라오스, 태국 동북부 지역의 것과 일치한다.
-난생 설화: 베트남,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의 용의 알, 박, 오이 등의 설화와 유사하다.
* 알타이어족의 주된 탄생 설화는 이리(투르크족), 흰사슴(몽고) 등 동물 설화이다.
⑶ 농경 문화
쌀, 호미, 낫, 도리깨 등 남방의 것과 같다. 또한 가축으로는 돼지, 닭, 과하마 등 모두 남방 혹은 서방의 것이 대부분이다.
⑷ 음식 문화
김치(인도, 독일), 젓갈(태국, 라오스, 인도네시아), 장아찌(태국, 베트남), 묵(태국, 베트남), 막걸리(라오스, 베트남), 된장·고추장(태국) 등 우리의 주요한 음식은 대부분 동남아의 것과 유사하다.
⑸ 장사법
-지석묘(고인돌): 세계적으로 고인돌의 분포를 보면 우리 나라로부터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아프가니스탄, 요르단, 독일, 프랑스 등 모두 남방 또는 서방의 선상에 있다.
-옹관묘: 베트남, 라오스, 태국 등지에서 무수히 많은 옹관묘가 발견된다. 중국의 섬서성 부근에도 옹관묘가 출토된다.
-풍장: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것과 유사하다.
-적석묘: 북방에서 발견되는 적석묘를 만든 사람들인 스키타이족들은 알타이어족이 아닌 아리안어족이었다.
-석관묘: 북방, 남방, 서방 각처에서 발견된다.
⑹ 음악과 춤
우리 음악의 특징인 무장단, 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과 3박자의 형식이 모두 태국, 인도에서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음악적인 특징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더욱 뚜렷하다. 특히 와공후, 수공후, 생황, 거문고, 장고 등 우리 나라 전통 악기가 동남아 및 인도에서 많이 발견된다. 춤은 인도의 것과 가장 비슷하다. 특히 사자 탈춤(베트남, 라오스)이 전래된 장소는 동남아시아임이 확실해 보인다.
⑺ 놀이 문화
비석치기(동남아 일대), 자치기(베트남, 라오스), 꼬누(베트남), 구슬치기(캄보디아), 와양(인도네시아), 닭싸움(동남아 일대), 소싸움(중국 서남부, 인도네시아), 대젓갈 놀이(베트남) 등 우리 놀이 문화의 대부분이 동남아의 것과 같다.
⑻ 기타
애기 업기(태국, 미얀마), 빨래 방망이질(미얀마, 인도), 머리에 물건 이기(인도네시아, 인도), 성황당(오끼나와, 인도) 등 우리 민족 고유의 풍속 대부분이 남방의 것과 일치한다. 또《삼국 유사》에 나오는 김 수로 왕비 허 황후(인도), 신라 경문왕의 당나귀 귀(그리스), 나무꾼과 선녀(인도네시아)의 전설 등도 우리 민족의 남방과 서방의 관련설을 뒷받침해 준다.
3. 면역 유전자 및 체형
⑴ 면역 유전자(HLA)
우리 민족의 특징적 조직적 합성 항원 HLA-B-59는 인도의 수라스트란인, 미국 서북부의 백인 혼혈족 등 아리안어족의 것과 같다.
⑵ 체형
우리 민족이 아시아인 중 키가 크고, 콧날이 오똑하고, 얼굴뼈가 수직으로 되어 있고, 신 구석기 시대 만달인, 승리산인 등의 머리 형태가 장두형(長頭形) 등 신체적으로 아리안어족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낸다.
4. 결론
우리말과 문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오늘날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말과 문화의 기층이 동남아, 서남아 및 중동 지방과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몇 개의 어휘, 풍속과 신체적으로 몽골 반점 등의 북방적 요소도 부인할 수 없다. 이 점은 우리 민족의 핵을 이룬 일단의 집단이 소아시아로부터 인도 대륙을 거쳐 한반도에 정착한 다음 끊임없이 한반도로 이주해 온 중국의 한족과 북방의 알타이어족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기원 전 3세기 경 춘추 전국 시대의 한족의 대량 유입, 그리고 고려 말 장기간의 몽고 침입에 의한 인종과 문화의 동화 현상은 비록 들추고 싶지 않은 민족적 치부라 할지라도 역사를 바로 인식한다는 측면에서 심도 있게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5월 26일 한글 회관에서 열린 한글 학회 특별 발표회에서 발표된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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