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의 예수
1976년 가을 어느 토요일 오후. 종로5가 기독교 회관에 환등기 필름을 대여 받으러 갔다가
(나는 그 때 고2였는데 교회 초등부와 중등부 교사였다.) 우연히 연동교회 앞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 손에 이끌려 교회 강당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은 200명 쯤 가득 들어차 있는데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고 조용한 것이 이상했었다. 친구에게 눈짓으로 물어보니 입술에 손가락
하나를 가져다 대며 눈을 껌벅이는 것이었다. 잠시 후 김형태 목사님이 나와서 인사를 하시는데,
그 목소리가 많이 떨리고 비장감마저 느끼게 했다. ‘우리가 빨리 배우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해서 우리들 스스로에게 위안이 되고, 어깨에 두른 손들이 따뜻해지고 힘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취지의 얘기가 끝나고 우리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한 곡 배웠다.
갱지에 가리방 긁어 등사한 악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암울하고 어수선했다. 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된 이후 모든 집회는
금지되었고 이마져 어기고 모여 반정부 활동을 계획, 모의하는 사람들을 손쉽게 체포, 격리,
처벌하기 위해서 ‘긴급조치’들이 마구 발동되던 시기였다. 그 긴급조치란 것은, 쉽게 말해서
박통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실행되던 헌법 위에 존재하는 대통령령이었다.
‘김대중은 오늘부터 집 밖의 외부 출입을 금한다.’하면 그냥 그렇게 되던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74년 8.15기념식장에서 육여사가 저격되었고 ‘74년에 탑시다. 서울 지하철!’이라 써 붙이고
종로통을 온통 뒤집어 공사하던 지하철 1호선 개통식이 또한 그날 있었다. 8.15 광복절
기념식장이 문세광의 총소리로 난장판이 된 후에도, 박통은 유유히 지하철 개통식장에 나타나
축사를 했었고 나는 어렸지만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해 민청학련 사건의
후속으로 인혁당 사건이 터졌다.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75년 4월 9일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바로 다음날 도예종을 비롯한 여덟 명의 처형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까불면 죽는다!’식의 본보기라는 것을. 그들은 분명 아무 죄 없다는 것을.
일요일. 방학동 큰집에 다녀오는 길. 삼선교 쯤에서 버스가 갑자기 서더니 몽둥이를 든 검은
옷 몇이 올라타서 다짜고짜 버스 앞 쪽의 청년 둘을 개 패듯 패고는 끌고 내렸다. 그 들
옆구리에는 ‘김대중 선생 단식 며칠째...’라는 머리기사의 신민당보가 끼워져 있었다. 인쇄물도
아니고 등사한 당보가. 원주의 지학순 주교가 김지하 김민기 들과 어울리다가 잡혀가고,
양희은의 아침이슬은 태양이 왜 묘지 위로 떠오르느냐고 방송금지 되었고, 한일 수교 반대로
데모하던 때부터 신촌 일대에 절어있던 최루탄 냄새가 몇 년째 가시니 그 분위기가 오히려
괴괴하고 기묘하여 더욱 허탈한 것이었다. 해직기자들의 관철동 동아투위 나무간판은
서러워 울고 나는 그 간판 한 번 쳐다보고는 무서워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골목을 빠져 나오곤 했다. 학교 선생님들, 오산고 교지를 인쇄하던 서대문의
인쇄소 사람들, 주변 사람들의 말없는 눈짓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린 알게 되었고
그 서러움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비처럼 전염되었다.
그 날. 강당 문 걸어 잠그고 배워 부르던 금관의 예수는 참 많이도 서러웠다.
김지하는 희곡을 쓰고 김민기는 개사하고 노래를 지어 지학순 주교와 함께 시대극으로
공연했는데 그 후 이 곡은 방송이 금지되었지만 또한 스스로 생명을 얻어 사람들의 가슴에
말 못하는 서러움 대신으로 살아남아 터지고 찢기는 노래가 되었다. 기타로 Am 코드를
디리링~ 퉁기면 머리와 입에서 동시에 ‘얼어부튼 저 하늘~ 얼어부튼 저 벌판~ 태양도 비츠을
이러 저 깜깜한 저 가나아네거리~’ ..................................................................................
어찌 그리도 시대상과 맞아 떨어지던지. 그 가사, 그 음울한 곡조,....
우울하게 시작해서 점점 감정이 복받쳐 오르고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반복하는 후렴이
절정에 이르면 감은 눈에 한 방울 눈물이 맺히고 ‘우리와 함께 하아소오서~’로 노래가 끝나면
가슴이 그래도 얼마간 시원해졌었다.
*이미지-이찬범 그림. 네이버 펌
금관의 예수 -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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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금관의 예수 오늘 꼭 들어보고 싶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