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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건너는 산행
장호원읍사무소 버스정류장-무량사-백족산(△402.3)-어석리-월포2교(청미천 건넘)-도투미산(160.2)팔성단맥 시작-x264.5-임오산(△339.3)-노란터고개(2차선도로)-x285.4-느진고개-함지봉(312.2)-된고개-조족봉(354.9)-팔성산(381.8)-관말고개(318번도로)-x172.6-회일고개(2차선 도로)-△156.2-마날봉(226.8)-x215.7-x173.6-軍部隊-우등산(262.8)-진골고개-진골버스정류장
거리 : 21.93km
소재지 :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율면 충북 음성군 생극면 금왕읍
도엽명 : 장호원
한남금북정맥의 마루금이 낮은 능선으로 음성군 금왕읍 쌍봉리 일대 제수리방죽 동쪽 해발 약150m 삼포와 초원지대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능선에 바로 우등산이 솟아있고 진행하는 이 능선은 도투미산 서쪽아래 충북과 경기도의 경계지점 옥천이 청미천으로 합수하는 곳까지 흐르는 능선을 팔성단맥으로 부르면 되겠다
백족산은 이천시 설성면과 장호원읍 경계를 이룬 독조지맥 보째고개 인근 x214.6m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능선이 설성산(△290.7) 봉미산(175.2) 돌팍재를 지나며 솟구친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이 능선도 청미천으로 그 맥을 다한다
백족산 등산로는 아주 좋고 정상에서 어석리로 내려서는 등산로도 그런대로 괜찮다
어석리 미륵당마을을 지나며 월포2교를 통해서 청미천을 건너고 둑방을 따라 남동쪽으로 향하면 2차선 도로를 만나며 청미천 흥곡양수장이 보이는 곳에서 도투미산을 오르는데 등산로는 없고 잡목능선이다
도투미산 이후 방향만 잡으며 내리고 오르다가 해발 약150m부터 약230m까지 아주 가파른 오름이다
임오산 정상 이정표가 있지만 마루금은 길이 없고 노란터고개까지 가파른 내림이며 노란터고개 이후 묘역 길로 오르다가 해발 200m 지점부터 x285.4m까지 가파른 오름이고 x285.4m를 오르면 팔성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이정표들이다
팔성산 분기점 오름 초반 잠시 가파르지만 등산로가 뚜렷하니 편하다
마날봉 직전에도 등산로가 뚜렷하지만 x173.6m를 지난 국방부 말뚝이 나타나는 x165.1m 분기점 이후 능선에는 부대 철망이 나타나면서 수시로 비켜나라는 방송이 들리고 우측사면으로 돌아가면 다른 쪽에서 우등산 오름의 일반 등산로를 만나지만 빙 돌아가는 형태다
장호원 시내에서 걸어서도 백족산을 갈수 있고 시간을 줄이려면 택시를 이용해도 큰 부담은 없다
하산지점 생극면 소재지가 가까우니 3대가 운행하는 생극택시를 호출하면 되겠고 생극터미널에서 동서울행 버스가 있지만 시간확인 필요하고 생극에서 가까운 장호원터미널로 이동하면 21시대 동서울터미널행 마지막 버스가 있고 그나마 어려우면 여주로 이동 후 경강선 전철을 이용해도 된다.
◁산행후기▷
2023년 2월 5일 (일) 맑으나 미세먼지 심함
홀로산행
오래 전 금을 그어놓은 낮은 능선 겨울철에 가기로 한다
동서울터미널 장호원행 첫 버스가 07시20분이고 1시간30분이 소요되니 06시30분 출발 죽산 경유 진천행 버스로 1시간 소요하며 죽산터미널에 하차해서 안성터미널에서 20분 간격으로 여주로 가는 37번 버스로 장호원읍 외곽 읍사무소 버스정류장에 하차하니 서울보다 기온이 훨씬 내려가 있어 가벼운 차림으로 나섰더니 추위를 느낀다
남서쪽 백족산을 바라보며 아파트들이 있는 지역을 지나 논밭 복숭아과수원 사이의 도로를 따라 진암3리 마을회관을 지나 3번국도 아래 암거를 통과하면 곧 무량사가 나타나면서 일주문 우측 옆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등산로 다
잠시 무령사를 둘러보고 계단을 올라서서 8시 방향의 능선아래 반질거리는 등산로가 일대 주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 장호원읍사무소 정류장에서 남쪽 아파트들 사이의 길을 따른다
▽ 곧 남서쪽 저 편 백족산 정상(좌측) 우측 x331.0m를 보며 농로 사이 도로를 따른다
▽ 진암3리 마을회관을 지나면 3번국도 아래를 통과한다
▽ 해발 약130m 1980년대 세워진 무량사를 잠시 둘러본다
▽ 낮은 능선에 오르면 백족산 우측 x331.0m 아래도 복숭아과수원이다
▽ 돌아본 장호원 시가지 오늘 미세먼지가 심해서 조망이 없다
▽ 해발 약165m 지점
▽ 해발200m 산허리를 가르는 임도를 만나면 초반 계곡을 끼고 오르는 등산로며 무량사 경내로 바로 오를 수 있고 무량사0.35km↔정상0.85km다
▽ 잠시 가파른 오름
▽ 좌측 백족산 정상과 우측 x331.0m 사이 주능선에 올라서서 좌측(남)으로 오르는데 직진은 어석리게곡
▽ 헬기장 한쪽 정자와 체육시설 백족산 정상「432 1976건설부」삼각점과 칭미봉 정상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백족산(百足山)은 현 남쪽 15리 지점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현재 한자 표기는 '흰백(白)자를 쓰는데 조선시대 지리지나 지도에서는 '일백백(百)자가 함께 나타난다
그래서인지 산의 이름이 지네의 다리 수만큼이나 많은 작은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가졌다고 해서 그렇게 불렸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산 정상에는 100개의 발을 가진 지네가 살았다는 지네굴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백족산에 석남사(石南寺)와 백족사(百足寺)라는 사찰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는데 초기에는 '일백 백자의 백족산으로 불리다 후에 한자 표기가 달라진 것으로 짐작된다
정상아래 헬기장으로 돌아 나와서「어석헬기장0.70km」를 알리는 서쪽 능선으로 들어서서 내려서려면 우측 골자기 너머 x331.0m가 보이고 등산로는 오를 때와 달리 많이 이용하지 않은 듯싶다
서서히 북서쪽으로 휘어지면서 정상출발 11분후 이정표가 나타나고 곧 헬기장이다
▽ 정상0.7km↔어석2리1km 좌측 구절터 우측 어석계곡0.5km를 알리는데 어석2리 쪽으로 간다
▽ 이정표에서 금방 정상 헬기장 이정표의 0.7km 헬기장이다
▽ 헬기장에서 금방 내려서면 전면 시야가 터지면서 남서쪽 저 편 임오산이 미세먼지로 흐릿하고 앞의 작은 봉우리가 도투미산이다
▽ 북서쪽 능선의 날 등만 고집하다보니 흐릿해지면서 嘉義大夫 慶尙兵馬節度使 宣武功臣 陜川李公 오래된 석물의 무덤을 지나면 넓은 길을 만난다
▽ 미륵암이 보이지만 바로 내려서려니 그물망으로 막아놓아서 우측으로 돌아가는 시멘트 길로 내려서려니 옹기들이 설치되어 있다
▽ 어석2리 마을회관을 지나며 청미천으로 향한다
▽ 농로를 따라 청미천을 건널 수 있는 월포2교를 건너는데 저 앞 임오산이다
▽ 청둥오리들이 노니는 청미천
▽ 남동쪽 제방 길을 걸으며 도투미산을 본다
▽ 청미천 건너 백족산을 본다
청미천은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遠三面)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며 안성시 일죽면(一竹面)을 지나 이천시에서는 장호원읍과 음성군을 경계 지으며 경기 · 강원 · 충북 3도가 접하는 여주군 점동면(占東面) 장안리 · 도리에서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세종실록」에 "거가(車駕)가 죽산현 천민천(天民川) 가에 머물렀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그 발원지에 대해서는「신증동국여지승람」 죽산현 편에 "천민천(天民川)은 현 동쪽 10리에 있는데 건지산(巾之山)과 정배산(鼎陪山)에서 발원하여 여주의 여강(驪江)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명칭을 보면 이후「동국여지지」「해동지도」「대동지지」 등에서 계속 천민천으로 기록되다가「죽산부읍지」에 "청미천(淸美川)은 양지와의 경계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여강에 들어간다"고 하여 그 명칭이 바뀌고 있다
그러나「여지도」「광여도」「1872년 지방지도」「죽산지도」 등에서는 천민천(川民川)으로「죽산군읍지」에는 청미천(淸渼川)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해동지도」「여주목지도」에는 천민대천(天民大川)으로「1872년 지방지도」「여주목지도」에는 청민천(淸泯川)으로도 표기되어 있다
「택리지」 복거총론 산수편에서도 "경기도에서는 용인의 어비천(魚肥川)과 음죽의 청미천(淸美川) 일대의 땅이 삼남과 같이 비옥하고 기름져서 살만한 곳이다"라고 하였다
▽ 도로 우측 절개된 저 능선이 도투미산으로 연결되지만 생략하고
▽ 좌측 흥곡양수장이 자리한 곳 도로 우측 민가 한 채가 있는 곳(해발70m) 저 뒤가 도투미산이다
▽「임오산로482」민가를 우측으로 끼고 서쪽으로 시멘트 길로 잠시 오르다가 좌측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 시멘트 길을 버리고 잡목능선 8분여 치고 오르니 峰따먹기 산꾼들의 표지기가 걸려있는 도투미산 정상이다
▽ 정상에서 몇 걸음 물러난 뒤 서쪽으로 내려서는 능선 잡목과 쓰러진 나무들이다
▽ 우측아래 농장이 보이는 곳에서 서쪽에서 8시 방향 내림이다
▽ 완전히 내려선 곳에서 해발 약135m로 오르려면 우측사면 일가의 묘역이다
▽ 올라선 약135m에서 남쪽으로 부드러운 내림
▽ 내려선 우측사면 문패 없는 무덤이고 잠시 후 완만한 오름 시작이다
▽ 해발 150m부터 x264.5m를 향한 아주 가파른 오름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박박 기면서 오름이다
▽ 아주 가파름 표고차 85m를 오르니 완만한 오름 이후 올라선 x264.5m 정상
▽ x264.5m에서 몇 걸음 진행하면 오래된 화재지역이고 경기도 충북 도계를 만나면서 남쪽에서 서쪽으로 틀어 임오산으로 향하는데 이전보다 뚜렷한 족적이다
▽ 서쪽으로 틀어 내려서는 곳 석주의 慶州金公 延安李氏 祔左 문패다
▽ 다 내려선 후 임오산 정상을 향한 오름 시작
▽ 묻혀서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삼각점의 임오산 정상 북서쪽 월포리1.10km 지나온 방향 총곡리1.53km 표시다
임오산 정상에서 가야할 마루금은 이정표가 가르키는 쪽이 아닌 8시 방향으로 급격하게 내려서는 초반 납작 폐 무덤이고 출발 4분후 봉분이 뚜렷한 무덤이 보이더니 2분후 남쪽능선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살짝 더 틀어 내려서다가 역시 2분후 진행방향 뚜렷한 능선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간다
임오산의 모양새가 까마귀가 송장을 파먹는 형상이라 하여 '까마귀 오(烏)자를 써서 임오산(林烏山)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고 또 산중에 임오탁시형(林烏琢尸形)의 명당처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임오산(林梧山)이라는 다른 한자 표기도 있는데 전해지는 이야기로 자다보니 어느새 이곳에 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임오산을 중심으로 월포리와 총곡리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고당리까지 산세가 펼쳐져 있는데 고당리에는 이 마을에서 3~4대까지 오래 살며 재산을 모으면 모아 둔 재산을 모두 잃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풍수상 행주형(行舟形)의 형국과 관련된 것이다
즉, 임오산 자락에 매어 있는 고당리는 청미천을 따라 막 떠나가려 하는 배의 형국이기 때문에 배에 짐을 많이 실으면 가라앉는다는 풍수적 소응이 구전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당리에서는 임오산 옹달샘에서 산신제를 지내기도 한다고 한다
조선 시대 충주 관련 문헌이나 고지도에서 임오산에 관한 기록이 거의 없고 다만「1872년지방지도」(음죽)(지금의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과 율면 일대)에 송오산(宋五山) 표기가 있는데 지금의 임오산을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도에 송오산 서쪽으로 팔성산(생극면 팔성리 소재)이 그리고 북쪽으로 백족산이 표기되어 있다
한편「여지도서」(충주)에 '임오치(林烏峙)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지금의 감곡면 문촌리에 있는 고개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지형도」에는 생극면 북서쪽에 임오산이 나타나고 산의 남쪽사면에 임오리가 있다
▽ 임오산 정상에서 노란터고개까지 표고차 220m를 줄이며 초반 가파른 내림이다
▽ 내림에는 납작 무덤도 보이며 잠시 후 좌측(남) 능선 분기점에서 우측능선으로 내려간다
▽ 노란터고개 직전 우측으로 이천 실크밸리cc 다
▽ 해발 125m 노란터재에서 다시 급격하게 가파르게 올라갈 x285.4m를 본다
▽ 왕복 2차선 郡道의 노란터재 좌측 건물을 끼고 무덤 길로 오른다
▽ 노란터재에서 오르며 安東金氏 묘역에서 돌아본 임오산
▽ x285.4m를 향한 표고차 120m 아주 가파른 오름에서 내려 보고 올려본다
▽ 힘겹게 올라선 x285.4m에서 남쪽 평탄한 참나무능선이다
▽ 남쪽에서 남서쪽으로 틀어 내려선 느진고개 국토지리정보원 발행에는 된고개로 되어있고 좌측 품실마을 우측 도달미마을로 흐릿한 길이 보인다
▽ 느진고개에서 10분여 소요하며 올라선 의자의 함지봉에는 오성1리(장성골)과 좌측 임오산을 알리는 이정목 마루금을 따라 온 곳이 임오산인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조족봉을 알리는 쪽으로 가는데 좌측사면 문패 없는 무덤 2기다
▽ 우측 장성골 능선 분기봉에서 남쪽으로 틀어 4분후 내려선 된고개 함지봉↔조족봉 좌측 임곡리 우측 은말 표시다
▽ 된고개에서 오른 서쪽 x207.7m 분기점에는 된고개↔조족봉 우측 부레미마을(산성1리) 갈림길 이정목과 의자다
노린터고개는 임곡리에서 이천시 율면 오성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도로 다
된고개는 생극면 임곡리에서 이천시 율면 석산리로 넘어가는 옛 고개다
▽ 의자의 분기점에서 6시 방향에서 5시 방향으로 바뀌며 완만한 오름이다
▽ 우측 산성2리(산골) 갈림길 진행방향 장군봉을 알리는 조족봉 정상
▽ 조족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서다가 7시 방향으로 틀었다가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곳 눈길을 끄는 나무와 곧 조족봉↔장군봉 우측 칠성사 갈림길 안부에도 의자다
▽ 잡목과 자리공들의 약295m 서쪽 卍칠성사 x181.4m 능선 분기봉에서 좌측으로 몇 걸음 휘었다가 다시 남쪽이다
▽ 오르다가 돌아본 나뭇가지 사이 조족봉
▽ 올라선 약365m 분기봉에는 조족봉↔돌원 산성1리 표시고 좌측(동)으로 비켜난 팔성산 정상을 다녀온다
▽ 동쪽으로 살짝 내려섰다가 오른 팔성산 정상「309복구 76.8건설부」
▽ 팔성산 정상까지 왕복 약0.34km 분기점에서 서쪽으로 내려선다
▽ 생극면 율면 금왕읍 三面 분기점에서 진행방향 능선도 뚜렷한 족적이지만 남쪽으로 틀어 내려간다
三面 분기점에서 남쪽으로 6~7분여 내려서면 문패 없는 잘 조성된 무덤들이고 잠시 더 내려서다가 8시 방향으로 휘며 내려서야 하는 곳 좌측으로 많은 무덤들이 보이면서 관말마을로 내려서는 큰 길이 지도에 표기되어 있어 마루금을 버리고 좌측 작은 계곡을 건너 좋은 길로 내려서다보니 소나무조림지와 마지막 민가를 지나며 넓고 좋은 관말마을을 지나며 마루금의 도로로 접근한다
팔성산은 산 정상 부근에 테뫼식 토성 터가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주민들이 성을 쌓고 왜군과 8번 싸워 모두 이겼다는 얘기가 전해지며 그래서 산 이름도 원래는 '팔승산(八勝山)이었다가 나중에 '팔성산(八星山)으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여지도서」(음죽지도)를 보면 무극역(無極驛) 북쪽에 팔성산(八聖山) 표시가 있으며 무극역은 조령에서 한성으로 가는 대로가 지나가던 곳이다
현재 지방도 318번이 그 길에 해당하며 무극역은 현재 생극면 관성리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팔성산 남쪽에는 칠성산(七星山) 표시도 함께 있는데 지금의 금왕읍 정생리에 있는 칠성산이다
「1872년 지방지도」(음죽)에는 八星山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에는 팔성산 주위로 장성동(지금의 이천시 율면 석산리 장성골)과 북두리(지금의 이천시 율면 북두리) 등의 지명이 표시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생극면의 고적명에 팔성산(八星山)이 있는데 한글 지명으로 팔승산'이라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는 팔성산과 그 북쪽의 황현(黃峴) 그 남쪽의 이현(梨峴)이 표시되어 있고 이현 표시 옆에 일본어 가타카나 'ベナムコケ(배나무 고개)가 적혀 있다
▽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비켜난 곳으로 진행하며 멀리 빙 돌아갈 우등산을 본다
▽ 관말마을 잘 지어진 집들 우측이 마루금이다
▽「일생로 355번 길」표시의 왕복2차선 도로 편의상 관말고개
▽ 길 없는 능선으로 올라서면 약170m에서 우측으로 틀어가고
▽ 위 분기점에서 2분후 올라선 서쪽능선 분기점에서 이번에는 좌측으로 틀어 x172.6m로 향한다
▽ 좌측으로 틀어 몇 걸음 내려선 후 저 위 x172.6m로 오르고 올라선 정상에서 다시 우측으로 틀어 내려간다
▽ 사면의 무덤 저 편 남동쪽 장자봉(194.3)이겠다
▽ x172.6m에서 회일고개로 내려서려면 金寧金氏 묘역에서 올라갈 마날봉 좌측 x215.7m를 본다
▽ 내려선 편의상 회일고개「생삼로469번 길」표시다
내려선 도로 회일고개에서 바로 능선으로 오르려니 밭들로 인해서 그물망을 막아놓아서 살짝 돌아 능선으로 올라서니 일대 연두색 펜스들이 어지럽고 묻혀서 찾을 수 없는「장호원454」안내판의 △156.2m다
흐릿한 족적을 보며 마날봉을 향한 부드러운 오름이고 올라선 마날봉 정상 의자가 있고 남쪽으로 틀어 내려서려니 목책들이다
▽ △156.2m
▽ 삼각점을 뒤로하고 잠시 후 마날봉 정상을 향한 부드러운 오름이다
▽ 마날봉 정상
▽ 마날봉 정상에서 북쪽 호산리 벌판
▽ 다시 제도권(?) 시설을 누린다
▽ 다시 남동쪽으로 틀어 내려선 후 살짝 올라선 x215.7m
▽ x215.7m에서 잠시 내려서면 부러진 오래된 전신주다
▽ 부러진 전신주에서 금방 살짝 오른 분기점에서 완전 동쪽이다
▽ 좌측아래 임도가 있는 마날봉정상0.79km← 우측 마날봉 등산로입구0.57km 표시 잘록이에서 북동쪽 매재봉(212.0)을 당겨본다
▽ 잘록이에서 금방 좌측사면 밭이 보이면서 멀리 지나온 팔성산이다
▽ 이런 시설도 지나며 오름이다
마날봉 밑에 있는 마을로 산의 이름을 따서 마날미(마날뫼)가 되었다
마을 북쪽에 마날봉이라는 산이 있으며 관성저수지가 축조되어 있다
골짜기로는 천지참나무골 가작골 잠다리골이 있고 고개로는 장고개 무술고개 관말고개 화우리고개가 있다
마날미에서 북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양달말이 있고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음달말이 있다
양달말과 음달말 사이에는 집이 두 채밖에 없어 외딴터라고 부르고 음달말 오른쪽에 있는 들을 안민산이라 하며 외딴터와 양달말 사이에 있는 들을 대림거터라고 한다
노란색 국방부 말뚝이 처음 보이는「생극-2-나」표시의 동쪽 x175.3m 능선 분기점 이후 마루금의 날 등을 차지한 부대철망을 끼고 진행하려면 여느 능선을 진행하면서도 겪어보지 못했던 관측장비로 인해서 발견된 내게 계속 하산하라는 경고방송이 나오더니 나중에는 철망 안 부대에서 군인들이 나타나니 할 수없이 보이지 않는 우측사면으로 진행하려니 날 등보다 힘이 든다
▽ 동쪽 x175.3m 능선 분기점에는 생극-2-나 표시와 노란색 국방부 말뚝이며 동쪽에서 남쪽으로 틀어가는 편안한 능선이다
▽ x175.3m 능선 분기점에서 남쪽으로 틀어 2분도 되지 않아 구덩이와 국방부 말뚝의 x173.6m 능선의 좌측아래 軍部隊 건물이 보인다
▽ x173.6m 이후 능선의 날 등을 차지한 부대 철조망을 끼고 진행하는데 ccTV로 관측되니 수시로 비켜나라는 방송이다
▽ 서쪽아래「보습고지」나 사계저수지 소로가 보이는 지점 그동안 사면으로 진행했는데 다시 관측되니 방송도 나오고 군인들도 출동한다
▽ 뒤돌아 마날봉을 본다
▽ 사계저수지 쪽 능선 분기점 그 쪽 어디서인가 올라오는 우등산 등산로 넓은 길을 만나고
▽ 능선 날 등의 우측사면으로 이어지던 넓은 길을 따르지만 어느 순간 우측 저 아래로 멀어진다
▽ 우등산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 우측 저 아래로 돌아오던 등산로를 다시 만나서 오르는데 우등산 정상아래서 군부대 철망이 끝나는 모양이다
▽ 막판 우등산 정상 오름 직전 쓰러진 석주의 폐 무덤과 나무가 자라나고 상석이 묻힌 폐 무덤이다
▽ 우등산 유래 안내판이 있는 우등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내려선다면 한남금북정맥에서 이 단맥의 능선이 분기하는 곳에서 보이는 우등산 정상 (옛 한남금북정맥 사진)
우등산은 충청북도 음성군의 금왕읍 각회리와 생극면 관성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며 황새 서식지로 유명했던 관성리의 무술(無愁) 뒤쪽에 있는 산이다
원래는 '무등산(無等山)이었으나 '우등산(禹登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옛날 조선 시대 우등산에 올라서 보면 앞쪽으로 넓은 들이 있어 수도로 정할까 했는데 수맥이 좋지 않아 등급을 받지 못해 무등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옛 문헌이나 고지도에서 우등산에 대한 기록을 쉽게 찾을 수 없고 우등산이 넓은 들 가운데 있는 비교적 낮은 구릉성 산이고 또 당시 충주 관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이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다만「조선지지자료」에는 금왕면 각회리 쌍봉리 구계리 등 세 고을의 산악명에 모두 우등산이 기록되어 있다
▽ 우등산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서는 곳 폐 무덤이고 일대 군부대로 인한 이장 공고판이 붙은 무덤들이 많다
▽ 남동쪽으로 급격하게 내려선다
▽ 해발 150m 丹陽禹氏 묘역에서 가파름은 끝난다
▽ 5시 방향에서 1시 방향으로 휘어갈 때 농장 민가 뒤 숲이 x205.1m다
▽ 농장의 그물망을 끼고 진행하다가 내려선 편의상 진골고개 사진 저 위 고개 남쪽으로 시멘트 길을 내려서면 쌍봉리 관매리 사이 한남금북정맥을 만난다
▽ 우등산 정상에서 15분후 서쪽 △226.9m 아래 진골마을을 보며 시멘트 길을 내려간다
▽ 진골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버스 정보를 보지만 도착정보는 없다
▽ 금정저수지 방향으로 향하다가 직전 호출한 생극택시를 만나서 산행을 마친다
이후 호출한 택시로 편의점에서 표를 파는 생극터미널에 도착하지만 코로나 이후 줄어든 대중교통편 때문에 동서울T행 버스는 없으니 20분 후 감곡경유 장호원행 버스를 기다리며 반병의 소주를 마시고 장호원 외곽 무인터미널에서 동서울로 오는 버스로 일찍 귀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