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이 말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 속 이병헌의 대사로, 김재규가 10ㆍ26 사건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했다고 비공개 수사 기록을 통해 공개된 말이다. 2020년 1월 설 시즌에 개봉한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관객 400만을 넘기며 연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의 실체와 10.26 사건에 대해 집필한 동명의 논픽션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는 1970년대 말 미국 하원에서 열린 한 청문회부터 중앙정보부장의 대통령 암살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40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스릴러 형식으로 보여준다.
정치 영화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남산의 부장들` 영화에 앞서 생각나는 작품이 있을 것이다. 가수 심수봉의 노래 제목과 동명의 영화로 임상수 감독의 2005년작. `그때 그사람들`이다. 영화 `그때 그사람들`은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의 시점과 형식, 전개 방식에서 다르게 묘사 되었다.
`그때 그사람들` 영화는 시대 분위기 상 제작 단계에서부터 개봉 전까지 극비리에 제작 되었다. 우려 속에 영화가 개봉하자 보수 단체의 격렬한 항의와 아들 박지만씨가 상영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기 하였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며 영화는 초반 부마항쟁 장면과 엔딩의 장례식 자료화면 부분을 검은 화면으로 대체하며 상영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같은 소재를 바탕으로 15년이 흘러 개봉한 `남산의 부장들`은 `그때 그 사람들`에서 보여준 논란을 의식해서 인지 실존 인물들의 실명을 피하며 픽션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민호 감독도 인터뷰에서 "거리감을 유지하며 끝까지 처음으로 찍어냈던 게 어려웠다. 많은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며 민감한 소재에 따른 연출의 어려움을 토로 하였다.
15년 전과 비교해 지금은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음을 영화 흥행과 외적 분위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동 시대에 그 어느 예술 매체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는 매체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그것은 영화가 가지는 예술적이며 대중 친화적인 막강한 전달력때문이다. 대중들의 정치적 관심도가 높은 최근의 분위기를 반영 하듯 정치 소재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들이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이에 정치권들과 역대 대통령들은 정치ㆍ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는 영화들을 관람하면서 이런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며 자신의 정치적 신념ㆍ철학을 드러내거나 은연중에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공식적 영화 관람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권택 감독의 1993년 영화 `서편제`가 시작이었다. 그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왕의 남자` `맨발의 기봉이`, `괴물` `길`, `밀양`, `화려한 휴가` 등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이, 자주 영화를 관람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워낭소리` 등 관람하며 성공신화를 강조하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명량`, `국제시장`과 `인천상륙작전` 등을 관람하며 창조 경제와 애국심에 대한 관심을 표현 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변호인` `노무현입니다`와 `택시운전사` 등을 관람하며 인권에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반대로 하면 현 시점 우리가 보는 역사는 결국 승자의 입맛에 맞게 얼마든지 왜곡 축소 될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 두 영화의 배경이 되는 10.26은 그 후 신군부에 의해 기록되어 역사로 남아 있다.
그 당시 현장에 있었던 안동일 변호사는 "만약 그때 1980년 민주화의 봄이 왔었더라면 김재규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신 군부가 민주화의 봄을 말살 했기에 김재규에 대한 평가도 땅속에 묻어진 겁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서는 안돼요." 라며 그 당시의 심정을 토로했다. 이제는 과거에서 배워 미래의 시행착오를 줄여야한다. 지금의 가치관이, 지금의 판단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인지하고 상생할 방법을 모색하는 성숙한 정치 문화가 되길 바라며, 영화 속 이병헌의 대사가 영화 속에서만 남아있길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