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커우뎬 동굴의 ‘카니발리즘(식인) 논란’은 앙리 브뢰유(1877~1961)라는 프랑스 고고학자가 1929년 처음 제기했다. 몸체 뼈는 별로 없는데 두개골 뼈만 많다는 것이 근거였다. 브뢰유는 ‘힘센 고인류가 사람을 잡아먹고 그 트로피로 두개골을 남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프랑스 고고학자 불(Boule)은 ‘석기를 만들 줄 아는 진화한 고인류가 작은 두개골을 가진 원시적 베이징원인들을 잡아먹었다’라고도 했다. 두개골의 정수리뼈만 발견되는 것은 뇌수를 식인 인류들이 먹었기 때문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여기에 고인류 화석 중 불에 탄 뼛조각들이 발견되자 ‘불에 구워 먹었을 것’이라는 등 ‘저우커우뎬 동굴은 식인종 소굴’이란 생각이 널리 퍼졌다.
고인류학에서 이러한 주장이 한번 제기되면 이를 검증하는 데는 훨씬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이 검증 기간 ‘검은 신화’는 꾸준히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실제로 스페인의 아타푸에르카 유적이나 크로아티아의 크라피나 유적 등 세계 유수의 고인류 화석 유적을 둘러싸고 ‘식인 풍습’ 주장이 여전하다. 아직도 ‘원시시대=야만적일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고인류학 학문에 있어서 설명의 편의성 때문은 아닐까?
‘식인 풍습’ 주장에 의구심이 제기된 것은 뜻밖에도 하이에나 덕분이었다. 1939년 오스트리아 빈 동물원의 하이에나가 소뼈에 남긴 이빨 흔적이 저우커우뎬 동굴 화석에 남은 흔적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 보고되면서다. 바이덴라이히는 일부 뼈에 대해서는 이런 주장(하이에나에 의한 훼손)을 받아들였지만, ‘정수리뼈만 남은 두개골이나 세로로 쪼개진 다리뼈는 설명할 수가 없다’며 식인 풍습을 여전히 인정했다. 하지만 신고고학자 루이스 빈포드(1931~2011ㆍ미국)는 접시같이 남겨진 두개골 뼈 역시 하이에나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식인 행위를 일축했다.
구석기시대의 동굴은 사람만 사용했던 것이 아니라, 하이에나, 곰 등 맹수류가 시간을 두고 교대로 살기도 한다. 그래서 증거들을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엉뚱한 오류를 범한다. 실제로 불을 사용한 증거로 주장된 재(灰)층의 경우, ‘동굴의 바깥에서 안으로 빨려 들어간 먼지층’으로 판명됐다. 그러고 보면, 저우커우뎬 동굴 유적은 각종 고인류학 학설의 ‘반전의 반전’을 낳은 현장이기도 하다.
이렇듯 지난 100여 년 동안 베이징원인과 관련된 초기 학설들이 하나둘씩 무너졌다. 다만, 예전에 폐기됐던 ‘베이징원인은 몽골로이드(아시아인)의 조상’이라는 주장은 오늘날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절멸종으로 생각했던 호모에렉투스(베이징원인) 역시 다른 인류종, 즉 데니소바인이나 호모사피엔스 등 인류종과 짝짓기를 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절멸종인 데니소바인ㆍ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현대인에게 남아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러므로 50만 년이라는 저우커우뎬 유적의 시간 범위 내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또 데니소바인이 오늘날 동북아 지역에서 출현해 확산했다면, 분명 베이징원인으로 분류된 고인류 화석 중에 데니소바인 화석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