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박영덕
도전의 문
달력에 빨간 글씨로 표시되어 있는 기념일이나 명절도 아니다. 그렇다고 천재지변에 준비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온통 나라 안을 들끓게 하는 날이 있다.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 늦추어지는가 하면 관공서의 업무 시간도 공식적으로 한 시간쯤 늦추어지는 날, 해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두드리는 문, 바로 대학 입시가 있는 날이 그날이다.
최초 핏덩이 어머니 자궁 문을 열고 나와 두드려야 하는 많은 문들 중에서 힘들기로 치면 수위를 다툴 만한 문이 대학의 문이다. 그래서인지 금년도 수험생인 내 조카는 대학문을 지옥문이라 부르더니 책상머리에 붙여 둔 자기 학습 계획서에다 ‘지옥문 통과 열쇠’ 라고 적어 놓았다. 긴장감과 절박감이 오죽하면 그랬을까마는 젊은 한때 어떤 목표를 향해 최선의 정진을 해보는 것도 멋진 일이지 않겠는가.
회한의 문
내 아버진 환갑이 되던 해에 새로 성주를 하셨는데 스래브 양옥에다 굳이 나무문을 고집하셨다. 대목(大木)으로 소문난 금골 당숙을 외지까지 보내어 춘양목을 구허려 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가 못해서 적송을 구해다 썼는데 그때의 어버지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적송을 살라치면 너무 노랗거나 너무 붉지 않은 것을 택하게나. 노란빛을 띠는 것은 약하여 무르고, 붉은 빛깔에 가까운 것은 강하여 손질하기가 어려우이.”
나무와 더불어 늙어 가시는 당숙이시니 나무 보는 데는 내 아버지보다 한 수 위일 터이니 춘양목을 구하지 못한 서운함을 아버진 그리 표현하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하여 당신 고향 제일의 부를 누렸던 아버지는 그것을 지켜내디 못한 아쉬움 속에서 말년을 보내셨는데 흘러가버린 당신의 부귀를 그 문에나마 간직해 두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교감의 문
연전, 민속촌을 방문했을 때였다. 회색빛 공해에 잔뜩 찌든 우리 일행은 고풍의 옷을 입고도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주는 그 곳의 건물들을 보고 한결같이 찬사를 보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별당 뒤켠에 나 있는 작은 창 하나였다. 서민들의 집에도 그만한 크기의 창이 있었으나 그것은 대게 방문과 나란히 있었고, 양반가에선 별당 뒤뜰의 경관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완자무늬의 창살이 더 운치로운 창 하나를 내어 두고 있는 것이었다. 공기나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벽에다 낸 시설을 창이라고는 하나 문밖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던 양반가 아녀자들에겐 자녀와의 교감을 이를 수 있는 소중한 통로가 아니었을까.
기러기 나는 가을 밤, 소슬바람에 떨어지는 한 잎 낙화라도 창호지에 어릴때면 규방 아씨의 가슴 설렘 또한 그 곳에 머물렀을 것이고 가난한 선비가 글을 읽기 위해 월광을 구하던 곳도 바로 드 창문이었으리라.
조락과 황혼의 계절. 어느새 시린 무릎이 웬만큼 살아 버린 세월을 얘기한다. 오늘의 낯빛이 프르다 해서 내일 또한 푸르리라 뉘라서 장담하리요. 한 번 넘으면 영생한다는 불로문(不老門) 을 찾아서 경복궁 애연정(愛連亭)에라도 달려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