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나와서
광복절이 지난 팔월 셋째 토요일을 맞았다. 엊그제 말복이 지나자 올여름 연일 지속된 열대야를 벗어나게 되어 다행이다. 칠석을 앞두고 소나기가 두어 차례 내려 뜨겁게 달구어진 대지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나는 인적 없는 호젓한 계곡과 숲을 찾아 길을 나섰다. 배낭에 생수를 챙겨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로 마산역으로 나갔다. 광장으로 오르는 길목 노점이 펼쳐져 있었다.
보름 전 아침 마산역 광장 보도를 지날 때는 폭염으로 노점이 형성되지 않았더랬다. 더위가 조금 누그러지자 채소와 잡화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폭염을 견뎌낸 호박잎과 부추가 눈길을 끌었다. 누군가 어느 개울에서 수고했을 다슬기도 보였다. 역 광장 모퉁이 농어촌버스 출발지는 구산이나 삼진으로 떠나는 녹색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번개시장 들머리서 김밥을 두 줄 마련했다.
서북산 임도를 한나절 내내 걷기는 아직 더위가 신경 쓰였다. 나는 반나절 코스로 의림사로 가는 74번 버스를 점찍었다. 근래 구산이나 진동으로 운행하는 농어촌버스 기사 가운데는 여성분도 있었다. 조금 전 서북동으로 출발한 버스 기사도 여성이더니만 내가 탄 의림사 가는 버스를 운전하는 분도 중년 여성이었다. 같은 공영버스라도 농어촌으로 다니는 버스가 더 힘들지 싶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었다. 동전터널을 지나 태봉병원을 거쳐 진동 환승장에 들렸다. 진북 면소재지를 지나 골짜기로 드니 차장 밖 논에는 벼이삭이 패고 있었다. 요양병원과 전원마을을 지나 의림사 일주문 바깥에 닿았다. 차피안교를 건너 의림사 절간 바깥 해우소에서 수리봉으로 올랐다. 여름에 수리봉으로 오르는 산행객은 없어 등산로가 묵혀져 있다시피 했다.
거미줄을 걷어가면서 등산로를 헤쳐 나갔다. 숲속으로 드니 일전 내린 소나기로 삭은 가랑잎과 검불이 휩쓸려간 흔적이 보였다. 서북동 골짜기 금산마을이 바라다 보이는 고갯마루로 올랐다. 겨울이나 봄이면 영학동 마을과 논밭들이 드러났을 텐데 무성한 활엽수림 나뭇가지에 시야는 가려졌다. 수리봉 가는 길은 암반 능선 구간이 있어 고소공포를 느끼는 나에겐 힘 든 코스였다.
의림사 절간으로 들면서 수리봉까지 오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산허리 어디쯤서 숲으로 들어 삼림욕을 할 생각이었다. 기온이 제법 떨어져 숲속에 드니 서늘한 기운이 더 느껴졌다. 등산로를 벗어나 의림사 뒤편 산자락을 쉬엄쉬엄 누볐다. 산비탈은 높이 자란 활엽수들로 부엽토가 쌓여 발을 디뎌 걷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제피열매를 몇 줌 따고 영지버섯도 몇 조각 찾았다.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는 산비탈을 느긋하게 내려섰다. 저 아래 어디쯤 의림사 절간이 있을 거라 헤아려졌다. 숲속을 천천히 발을 내딛고 내려서니 절간 바깥 전원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와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을 일은 없지 싶었다. 법당이 위치한 산기슭을 겨냥해 비탈을 내려서면서 영지버섯을 몇 개 찾아냈다. 제피나무를 만나 아직 덜 익었지만 열매를 몇 줌 따 모았다.
비탈진 숲을 내려서니 절간 뒤 인곡저수지 둑 아래였다. 점심때가 일렀지만 개울바닥 너럭바위에서 김밥을 먹고 절간으로 드니 법당에선 재를 올리는 비구의 독경소리가 낭랑에게 울려퍼졌다. 삼층석탑이 선 염불당 앞에는 남국이 원산지일 파초가 널따란 잎사귀를 펼쳐 자랐다. 나는 법당 뜰에서 손을 모으고 돌계단을 내려섰다. 아까 건너왔던 차피안교를 건너니 바로 거기 속세였다.
산문 바깥 당간지주와 부도 탑을 지나 요양병원 앞에서 시내로 가는 녹색버스를 탔다. 시내에 닿으니 여름 해가 아직 중천에 있었던지라 북면 지인 농장으로 향했다. 동정동에서 곡차를 마련 오랜만에 지인 농장을 찾아갔다. 더위가 한풀 꺾인 등나무 그늘 농막이었다. 지인과 곡차를 들면서 안부를 나누고 몇 가지 채소를 챙겼다. 고구마 잎줄기. 노각오이, 늙은 호박, 부추, 풋고추 등등… 18.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