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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방'서 '일제감점기'로 둔갑했다
신앙인에서 종교인으로,
왜놈들 때문에 ‘씨팔놈’ 욕 생겨나
소산 칼럼니스트 [칼럼=플러스코리아]소산 시사칼럼]
1910년 침략하여
이 나라와 민족을 식민지하로 만들어 지배했었던 일본제국주의.
이를 두고 매국노 리완용 일당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고,
리희승은 ‘한국이 일본국과 합했다’고 말했고,
심재기는 ‘한국이 일본국을 흡수했다’고 말했다.
죠동걸과 죠광은 ‘ 한국과 일본국이 합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UN이 강제로 합하도록 만들었다’로 되는 ‘한일강제합방’이라고 말했다.
▲ 일본 의사가 생체실험을 위해 손을 묶은 채 배를 갈라 내장을 만지고 있다.
(1936)/ 자료사진 © 소산
앞으로 [한일합방] 또는 [일제감점기] 라 부르지 말고,
[실국(失國)시대] 또는 [식민(植民)지배시기] 로 용어를 확립하자.
✈식민(植民) : 지배를 위해 자국의 국민을 심어놓는다.
‘일제강점기’가 아니다.
강점이라는 것은 임시로 점거 또는 점령하고 있다가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일제가 일정기간 강제나 임시로 점령한 것이 아니라,
침략하여 수백만명을 학살하고 지배를 했던 것이다.
친일파세력은
‘식민지배하, 실국시대’라고 하지 않고
왜 ‘한일합방’ 또는 ‘일제강점기’라고 말하고 떠들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일제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했던 우리 선조들은
한일합방이라던지,
일제강점기라든지,
즉 일본을 들어나지 않도록 용어부터 조심해서 사용했었다.
이 시기에 우리 조상들은
바로 ‘왜놈시대‘, ’식민지배하’로 용어를 쓰며 일제를 높이지 않았다.
우리 역사문화전통을 말살하고,
지하자원과 곡식의 낱알까지 세어 수탈해간
철천지원수였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광복 후 반민족행위자인 친일파 족속들은
‘한일합방’이라며,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확실히 정립해주기 위해
남한의 교과서에까지 넣어
1980년대까지 세뇌교육을 시켰던 부끄러운 나라였다.
실국시대요, 경술국치라고 떳떳이 말해야 한다. 부끄럽지만,
그때 미국과 열강들의 동의로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했다고.
이를 뼈아프게 간직하며,
숨기려 들지 말고,
당당히 말하고 되새기며,
다시는 그러한 치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용어를 정확히 정립해야만 한다.
민족역사운동가에 의해
한국이 일본을 원해서 일본과 합쳤다의 의미인
‘한일합방’이 80연대 교과서와 사회 저변에서 사라지자,
슬그머니 ‘일제강점기’라는 용어를 퍼트리며
다시 또 일제식민지배를 청산하지 못하도록
민족정기를 흐려 놓고 있다.
1945년 광복 후,
[한일합방] 이란 용어를 사용하다가
민족세력에 의해 용어사용을 못하게 되자,
80년대 후반부터 '일제강점기‘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선조들의 삶의 흔적을 한반도로 축소하여 지은
<대국사관>이란 잡서를 지은 민족반역자이자 친일파인
이병도의 후학도인 C모라는 자가 퍼트렸다고 한다.
우리는
‘실국시대(失國時代),
식민지배하’라고 말을 사용해야만
우리민족의 주체가 살아난다.
주체가 살아나야만 머리속에 나라가 굳세게 박히게 된다.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정신대와 위안부로 끌려가고,
남자들은 탄광이나 전쟁 등에 징용으로 강제로 끌려간
부끄럽고 치욕을 당하며 살아야 했던
일제에 의한 식민지배를 받았던 시기.
자본주의화 되니까 돈을 쳐 먹고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는
민족반역자들이 들끓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동안 이들의 말에 현혹되어
자신도 모르게 일제감정기라고 말을 했다고 본다.
필자도 일제강정기란 용어를 잘 모르고 사용했었다.
필자부터 철저히 반성한다.
이후로는 한일합방이니, 일제강점기니 하는 용어는 사용하지 말자.
부끄럽지만 식민지배를 당했다는 것을
마음속에 품고,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으려면,
왜놈들에 당한 식민지배의 잔재를 청산해야만 한다.
다시 세례를 받는 목사들. 자료사진 © 소산
더구나 서양종교를 강합적으로 믿으라면서
우리 민속 신앙은 이들 서양종교인과 더불어
우상숭배 또는 미신으로 철저하게 치부하고 농락했던
왜놈들과 서양교를 믿는 종교인들.
그런데 왜놈들은
미신이라고 치부한
민속신앙을 믿는 일본인이 몆년전까지 96% 정도라는 데,
그렇게 좋다며 믿으라는 서양종교를
당시 왜놈들과 현재의 일본인들은 왜 믿지 않고 있을까?
서양종교 목회자들이
신사참배하고 강물과 바닷물로 몸을 씻고
일왕에게 왜 절을 했을까?
물론 당시로는 친일부역 목회자들이 대다수로
이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활동하던
독립투사들을 밀고했던 종교를 가장한 위정자들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신도들은 왜 그랬을까?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우리 민족은 삼신일체사상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신과 내가 하나가 되는 신일합치사상으로서
평화와 사랑을 노래한 민족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헐뜯거나 빼앗지 않고 침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믿지 않고 직접적으로 참 신앙생활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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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종교국가들이
침략해 노략질하고 강탈해 부강했던 역사를 두고,
자기들이 믿는 교가 그런 잘사는 국가였다면서
자기 종교를 믿어야만 잘 먹고 잘 살다고 떠들고 있다.
이 얼마나 천벌을 받을 일인가.
종교를 알려면 '프로이드 학설' 중에서 '
범성욕론' 빼고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아니면 손쉽게 최면술과 관련된 서적만 읽어 보아도
종교라는 게 얼마나 허구이고
우스꽝스운 것인지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신사참배, 우상숭배, 황거요배, 신도예배
신사참배(神社參拜): 곳곳에 일본 고유종교의 신사를 세우고 절시킴.
우상숭배(偶像崇拜),
황거요배(皇居遙拜): 식민지에서도 일본천황이 사는 곳을향해 절시킴.
신도예배(神道禮拜):
일본에서 발생하여 유교·불교 등 외래 종교·사상과 대립하거나 또는
그 영향을 받으면서 발전하여 일본인들의 정신생활의 기반이 되어온 민족신앙을 말한다.
나아가서 그 민족신앙을 근저로 한 국민도덕·윤리·풍속까지를 포함하여 말하기도 한다.
〈역경 易經〉·〈후한서 後漢書〉를 보면
신도라는 말이 고대 중국에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둘 다 일본에서의 어의와는 전혀 달라
'신도'란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사용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신도라는 말이 쓰인 가장 오래된 기록은
〈니혼쇼키 日本書紀〉의 요메이 천황[用明天皇]조의 '천황신불법 존신도'(天皇信佛法尊神道)와
고토쿠 천황[孝德天皇]조의 '존불교 경신도'(尊佛敎輕神道)이다.
여기서 신도는 당시 대륙에서 전래된 불교에 대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해온 신앙을 가리킨다.
당시에는 신도 외에 본교(本敎)·신습(神習)·신교(神敎)·대도(大道) 같은 말도 쓰였으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점차 신도라는 말만 남게 되었다.
신도의 개념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특정한 교학적 전통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모든 생활의 중심적 행사로서 제사의 장에서 발생한 것이며,
따라서 광범한 정신현상·사회현상에 관련되어 있어
신앙·종교의 범위에서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도란 가설적으로 말하면
조상의 유풍을 따라 가미[神:신앙의 대상]를 받들어 모시는
국민 신앙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을 기초로 하여 전개되는 문화현상을 포함해서 말할 수도 있다.
▲ 1943년 일본 나라(奈良)신궁 참배 후 한국 목회자들. 자료사진. © 소산
한국교회는
1938년 말부터 1945년 여름까지 우상숭배하고
미신에게 절을 했다.
즉, '신사참배, 우상숭배, 황거요배, 신도예배' 했던 것이다.
교회 대표자들과 총회원과 노회원들이
열을 지어 신사(神社)에 가서
신도교의 예배 대상인 일본 신(神)을 참배했다.
'가미나다'라고 하는 이동식 신사를
교회당 안 동편에 두고 신도들은 그것을 향해 예배했다.
제1부 예배로 신도예배를 드렸고,
제2부 예배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했다.
일본의 신을 향하여 기도, 소원간구를 드렸으며,
그 예배는 찬양-손뼉, 예물 바치기,
황국신민서사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들 목회자와 교회신도들은
그것이 명백한 우상숭배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사참배가 제1계명과 제2계명에 저촉되는
이교 제례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들이 그러한 행위를 한 것은
위에 밝힌대로 종교의 허울성을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필자가 찾아 낸 왜놈들에게
지배를 받았던 시대의 종교인 현황을 봐도 알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 불교를 믿는 신도 수가 있다.
그런데 왜놈들에게 식민지배를 당했던 그 시기에
불교를 믿는 신도 수가 고작 16만여명
(참조:1931년 월간지 '혜성'의 종교전선종횡기[김병순 기자]에 따르면,
당시 서양종교(개신교와 천주교의 총칭)를 믿는 사람은 28만 여명,
동양종교(불교와 유교등 총칭)를 믿는 사람들은 16만여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밖에 되질 않았다.
이것은 앞서 논거한 우리 민족의 특징 때문이다.
그런데 180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동학사상(후에 천도교)이 있었는데,
이를 믿는 수가 놀랍게도 자그만치 670만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여기선 오랬동안
이 땅과 우리 민족과 함께 했던 불교와 유교를 말하고자 함이다.
왜 그런 종교를 믿지 않았고
실국시대에도 16만명밖에 믿지 않았을까?
바로 직접으로 하느님을 모시는 '참신앙인'이었기 때문에
종교를 믿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라 잃은 설움으로
핍박받고,강간당하고, 전쟁 등에 끌려가 자식들이 죽고 하니까,
또 ‘품앗이’란 풍습을 서양종교쟁이들은 적절히 이용하며
끼리끼리 뭉쳐 자기들만 배때지를 불리자,
굶고 배고품에 어쩔 수 없이
서양종교와 동양종교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한다.
왜놈들에게 식민지배를 받아야 하는
참담한 심정에서 마지못해
‘신앙인’에서 ‘종교인’이 되었다는
서글픈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놈들 때문에 ‘씨 팔놈’ 생겨나
왜놈시대에 오직했으면
‘씨 팔놈‘ 이란 쌍욕이 왜 생겨났을까?
’씨팔놈‘은 지금까지도 우리 주위에서 간간히 듣는
‘씨팔, 씨펄, 씨벌’로 남한 곳곳에 파생되어 있다.
우리가 듣기엔 더러운 욕임에는 틀림이 없다.
비속어로 말하고 듣는 이 욕이 일부에선 욕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십할 놈’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2세를 생산하기 위해 성관계를 가지는데,
성관계도 못 가지는 자, 즉 ‘십도 못할 놈’이라고 해야
욕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식민지배를 받았던 것을 청산하지 못한 죄로
우리는 우리스스로를 비하하고 욕보이는 행태가 지속되고 있으며,
청산하지 못한 그 죄로
친일잔재세력과 후손들이 활개를 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면 왜 씨팔놈이 나오게 되었는지 알아보자.
농사를 지었던 선조들은
다음 해 농사지을 ’씨(씨종자)‘는
나라에서나 어느 누구도 절대로 손대지 않았으며,
가족이 굶주리며 배고프다고 아우성쳐도,
이 씨종자는 절대로 건들지 않았던 조상들이었다.
그러나 왜놈들은 이것마저도 수탈해 갔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악행까지 일삼는 왜놈들을 향해
“씨도 팔놈들(종자들)”이라는 뜻으로 쌍욕을 퍼부었던 것이다.
여기서 ‘씨도 팔 놈들’이란,
남자에겐 여자를 파는 것이고,
가족에겐 자식새끼들도 팔 놈들인 것이다.
앞으로 40여일 후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선출된다.
선출된 대통령은 이명박처럼 일개 종교행사에서
국민과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수치스럽게도 무릎을 꿇었던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계적인 웃음거리는 사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 종교의 원천인 유럽을 가보라.
이명박이 무릎 꿇었던 그런 종교가
껍데기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보고 확인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세뇌 운운하지 말고,
종교의 세뇌라는 속박에서 탈피하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
다음에는 나라 잃은 시대에 왜놈들에 의해 만들어 낸 속담,
실예로 ‘조선인은 북어처럼 두들겨 패야 맛이 난다
(광복 후에는, 마누라는 두들겨 패야 맛인 난다로 둔갑)' 등을 만들고,
전해 내려오는 속담을 왜곡해서
민족 말살과 비하하고 폄훼를 한 용어들을 알릴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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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손이 불끈쥐어지네요.
참 한일합방이 없어졌죠? 교과서에서~
그런데 교묘하게 강점기라고 퍼트리다니, 헐~~~
알려야 되겠네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ㅂㅈ에 묻은 밥알도 뺏어먹을놈이 오사카쥐새끼죠
이런 종류의 글을 옮겼다가 한동안 맘고생 많이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