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성태 작가의 문학강좌를 듣고 있는데 이 작가가 69년생이죠. 나이란 걸 따지고 싶지 않지만 굳이 나이를 따져서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노?'하는 자학증을 불러일으켜야 속이 시원해지는 체질 탓도 있고 '나도 당신만큼 할 수 있다'는 경쟁심이나 자존심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에 이순원 작가를 뜻하지 않게 만나 술자리에 동석했는데 이분이 40대죠. 그럼에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면서 사석에서는 거침없고 털털한 면모를 보여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기성 작가에게는 '추종자'들이 있습니다. 이순원 작가를 따르는 추종자들, 전성태 작가를 따르는 추종자들, 김영하/박민규/성석제/김훈 등을 따르는 추종자들... 하다못해 옛날에 죽은 이상을 따르는 추종자들...말할 수 없이 많죠. 비교는 할 수 없지만 맑스를 따르는 맑스주의자나 바쿠닌을 따르는 바쿠닌주의자처럼 말이죠.
하지만 '추종자'라고 해서 자신만의 세계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군요. 다만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자주 읽고 그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고 그 사람의 인간성과 작품세계를 높이 사고 하는 것이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작가지망생'과 '기성 작가'의 불평등은 작가와 추종자 사이의 관계로, 이 관계는 스타와 팬과의 관계와 비슷하죠. 물론 스타가 되려는 '팬'과 '팬'에서 이미 '스타'로 발돋움한 관계란 게 좀 틀리긴 하지만 말입니다.
자신이 존경하지 않는 작가나 사람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이기도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그 밖의 다른 호칭을 생각하기에도 난감하죠. 그렇지만 돌아오는 호칭은 '씨'일 뿐입니다.
결국은 검증받은 '상품'과 검증받지 못한 '상품'의 차이란 게 이런 차이를 낳지만, '선생님, 선생님'하며 한곳으로 쏠리는 관심과 가끔 하사해 내려오는 관심에 기분이 들떠는 이런 관계가 못마땅해 저는 가급적 작가와 만나는 자리에 나가지 않습니다.
작가지망생이라도 거만해질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자신감의 표현이든 자만심의 표현이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든 말입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자신의 실력이자 집요한 추구겠죠.
저는 68년생이니 2004-1968=36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그래서 어디서 물으면 36이라고 할 때도 있고 (만으로), 호적에 69년생으로 되어 있어 35이라고 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마흔을 불과 몇년 앞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원경님과 반농담으로 '6개월 안에 등단 못하면 동해 절벽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 정도의 절박감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등단 작가 중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작가들을 대하며 느끼는 짜증, 그렇게 나이 먹도록 뭣하고 있냐는 주위의 압박, 그냥 돈버는 일에 집중해서 결혼이나 하라는 사회적 중압,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문단이나 작품상 등에 얽힌 좋지 못한 이야기, 문단의 권력 쟁투, 인기가 시들어가는 소설계 상황,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은 욕망, 그럼에도 소설에서 기반을 닦아놓고 싶은 현실적 갈망, 자만심은 하늘을 찌를 듯하지만 정작 기대에 못미치는 자신의 작품, 문학 강좌를 기웃거려봤자 더 이상 특별히 배울 게 없다는 생각, 차라리 소수 정예의 상호 비평 모임이 효율적이라는 생각, 통장에서 점점 줄어드는 숫자, 몇달 안에 승부를 내지 않으면 또다시 코뚜레가 끼워져 삶을 팔아야 한다는 조바심 등등이 뒤죽박죽 되어 심란한 가운데 등단에 필요한 사항을 보기 위해 여기 게시판 중 '소설이론과 질문' 쪽을 쭉 훑어보니 느껴지는 게 있더군요.
지금까지 글을 써면서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단을 시도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정도 수준의 작품이 없었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글 쓰기 바빴던 탓도 있고 등단을 목표로 두고 글을 쓰다보면 형식적인 글쓰기를 할 지도 모른다는 판단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쓴 단편소설이 열 세편이던데 이것저것 짜투리까지 합치면 대략 열 다섯편 정도 되겠군요. 올해말까지 스무편을 채우겠다는 점에서는 원경님의 결심과 비슷한 듯합니다.
그리고 느낀 점은 이 모든 것을 카버하고 이길 수 있는 것은 결국 끊임없는 글쓰기로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는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단편이든 중편이든 장편이든 이삼십편, 또는 삼사십편의 글쓰기를 해왔고 거기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그럭저럭 괜찮은 평가를 듣는다면, 그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능력 발전에 대한 느낌을 창작과정에서 꾸준히 느껴왔고 객관적으로 봐도 어느 정도 습작 시의 문제를 해결해왔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면 '어엿한 작가'로 볼 수 있고 어디가서도 꿀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결국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고, 내 결과물은 이렇다고, 포기하지 않는 신념과 결과물로 내보인다면 기성작가들한테 꿀릴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금까지 독서를 보류한 문예지 몇편과 수상작모음집을 몇 권 살펴보면서 지금까지의 등단 작가들의 등단 작품을 쭉 읽어볼 생각입니다. 작품을 계속 써 나가면서 지금까지 쓴 작품들 중 괜찮은 것들을 뜯어고치거나 확장해서 응모도 해봐야 겠지요.
결국 생각하고 있는 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남은 것인데, 따라서 저는 오늘도 소설 구성을 잡고 글을 써야 합니다. 다행히 글 쓸 거리가 많다는 데에 위안을 가져야겠죠.
이런저런 것들에 힘이 빠지기 쉬운 창작의 길을 가는 분들, 포기하지 맙시다~
첫댓글 아자아자아자!!!
저는 등단한 분들께는 모두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입니다. 작가님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서요..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vid님 과찬입니다. 글 이란 게 상 신경쓰지 않고 집요하고 철저하게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조금 느끼게 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현실이나 보상은 따분하군요.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며칠 동안 생각해온 아이디어를 기분좋게 구체화하고 있는데 사소한 걱정거리가 생겨 기분을 헤집어 놓습니다. 참 창작을 방해하는 것도 한둘이 아닌 것 같습니다. 쩝~~
어쨌든...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까.
바둑사에 이런 말이 있어요. '바둑은 이기거나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욕심 내어 수를 부리다가 대마가 잡혀 지는 경우도 있고, 너무 소극적으로 자기 집을 지키다가 지는 경우도 있지요.
바둑은 흑돌과 백돌이 공존하기에 무언가를 취할 때는 그만큼의 대가를 상대에게 넘겨줘야 하지요. 그런 이치를 배우기 위해 바둑을 두라는 뜻이에요.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꼭 등단의 목적이 아니라 글을 통해 어떤 이치를 체득하는 것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