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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는 이제부터 위장을 벗을 것 | |||||||||||
열우당 중에서도 가장 앞서가는 열우당의 지도자 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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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원 박사, j-m-y8282@hanmail.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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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이상의 확률로, 손학규는 이념적 적진인 한나라당을 떠나 그의 이념적 고향인 범여권으로 귀향하여 대통령 후보자로 나설 것 같다. 그는 경기도 지사로 200억원을 만들어 그냥 북한에 준 것이 아니라 평양시장 역할을 했다. 스스로 평양시를 여러 차례 방문하여, 무엇이 부족한지를 일일이 살펴 10개 내외에 달하는 사업을 시행한 사람이다. 그는 대한민국을 파괴-전복하는 방법으로 위장취업을 택했고, 지금도 국보법 철폐, 평화협정 체결, 퍼주기 옹호, 6.15선언 및 김대중의 햇볕정책 찬양 등 반미-반한-친북적 정열을 가지고 있으며, 경기도와 북한은 하나라는 구호를 쓴 간판들을 파주 일원에 세운 사람이다. 그는 열우당 성향을 가졌을 뿐 아니라, 열우당 중에서도 가장 앞서가는 열우당의 지도자 감이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에서 사상 세탁을 도모해 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두더지가 가는 길을 삽으로 막으면 두더지는 지상으로 튀어 나온다. 손학규의 행진이 이제는 경선제도라는 삽에 의해 차단 당했다. 진로가 막혀버린 두더지 처럼 그 역시 알몸을 드러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한나라당을 뛰쳐 나오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그는 경선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경선에 불참할 수 있다는 명분을 잡았다. 그가 이번 3월말-4월초로 지정된 경선참여 기간에 경선참여 등록을 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범여권의 대표 주자가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의 정치를 김정일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김정일 입장에서 보면 한나라당에는 이명박, 여권에는 손학규를 내세워 싸우게 하고 싶어 할 것이다. 이 두 사람 중 누가 이겨도 김정일에게는 상관 없는 것이다. 김진홍과 인명진 그리고 이재오는 한나라당에서 이명박의 승리를 위해 뛸 것이고, 또 다른 친북 좌파 세력인 범여권은 손학규를 위해 뛸 것이다. 대선 구도를 이명박 대 손학규 구도로 끌고 가면서 선거분위기를 경기장 분위기로 몰고 갈 확률이 매우 커 보인다. 좌익들의 재집권 전략은 참으로 오묘하고 무섭다. 대다수 국민들, 대다수 이익들조차 이들에 의해 놀아나고 있는 것이 참으로 답답하다. 박근혜는 이러한 구도를 깰 수 있는 용기와 경천동지할 지략를 보일 때에만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박근혜는 한나라당 분위기에 말려 들어가고 있고, 그 분위기는 김진홍과 인명진등이 배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최근의 발언들 그는 지난 11월 24일 한국발전연구원에서 이런 강연을 했습니다. “저는 실제로 대학을 졸업하면서 취직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소설가 황석영씨와 같이 구로동 수출공단에 들어가서 일을 했습니다. 제가 거기에 취직을 하려고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이 사회를 뒤엎을까 하는 생각만 했습니다. 공장에 취직해서 다니다가 친구에게 들킬 형편이 되어서 다른 공장을 찾고 있던 중에 박형규 목사님께서 노동운동보다 더 중요한 것이 빈민운동이라고 해서 청계천 판자촌에 가서 살았습니다. 지금 뉴라이트의 기수가 되어 있는 김진홍 목사님도 같이 일을 했습니다.” “저는 북한의 경제적인 기반, 특히 농업기반을 어떻게 세워주는가 하는 것을 좀더 주력하면서 지난 봄에는 경기도에서 북한 토양에 맞는 볍씨를 개발해서 북한에 심어주고 추수를 했습니다.” 그의 대북관은 2005년 9월 29일 좌파매체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일부의 내용을 발췌합니다. “6.15의 업적과 햇볕정책은 계승해야 한다.” “정전체제를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 “북한과 함께 역사교과서와 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만성적 식량난은 한국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남북이 하나 되는 수준을 높여가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당은 달리하지만 찬성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어떠한 정권이 들어 서더라도, 한나라당이 집권하더라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과거 냉전체제의 산물인 국가보안법을 갖고는 새로운 6.15 이후의 상황에 적극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폐지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원인 중 하나는 대북포용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전향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나 통일문제에 대해서 전향적인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매우 잘 하고 있다. 지금 남북 화해협력과 평화체제를 만드는데 주무장관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격려해줘야 한다.” “북한의 평화적인 핵 이용권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핵이 제거된 상태에서는 어떤 나라나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주권적인 사항이 될 것이다.” “북한을 압박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며 정치색을 배제한 협력을 하면 북한 스스로 자생의 모델을 찾게 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협력이 북한을 개방과 개혁으로 이끄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북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은 시대적 대세다. 남북협력을 부정한다면 국가를 경영하려는 공당의 자세가 아니다. 한나라당도 적극 나서야 한다.” “북한을 옥죄고 고립시켜도 북한은 망할 수 없다.”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우리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념논쟁을 하느냐? 최고의 선은 일자리 창출이다.”(모든 좌익들이 하는 공통어) 열렬한 북한 돕기 행적 그는 200억원의 남북협력기금을 조성, 2004년 10억원에 달하는 경운기 100대, 치과장비, 환자수송용 차량 등을 북한에 제공했습니다. 2005년 1월 26일 북한에 남북합작 벼농사 시범농장을 제안하며 시범농장, 조성사업, 당면 제조설비, 학생통학용자전거, 치과용 재료 및 약품 등 20억원을 투자하겠다 발표했습니다. 2005년 9월 11일, 임진각 ‘평화축전’ 폐막식에서 “6.15정상회담 등 지난 시기 대북정책의 긍정적 유산을 바탕으로 평화의 새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소위 ‘한반도평화경영정책10대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핵심내용은 ‘세계속의 한반도 경제구현’이라는 명분 아래 △ 개성ᐨ파주 남북경제특구를 설치하고, △ 북한산업재건을 위해 휴선선 부근 또는 비무장지대에 남북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발전소를 건설하며, △ 북한에 대한 농업부문의 현대화에 대한 지원으로 만성적 식량난을 해결하고, △ 남북평화협정 이후 북미평화협정을 체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며, △ 남북학생교과서 통일작업 및 남북공동 국어사전, 용어사전을 편찬하는 등 김정일 정권과의 공조를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손학규 지사의 지휘 아래 경기도는 2006년 3월 20일 북한에서 벼농사 협력사업, 농업인프라 조성사업, 생활환경 개선사업 등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합의했고, 지난 4월 20일 개성공업지구 소방대에 공기호흡기 등 9천400만원 상당의 장비를 전달했습니다. 손학규는 2006년 6월 3일, 경기도민 100명을 전세기로 태우고 북한 평양시 강남군 당곡리 100㏊(30만평) 규모의 농업협력사업장에 가서 모내기를 했습니다. 800가구가 살고 있는 당곡리 전체에 대한 환경개선사업도 지원하고, 올해에만 주택 100채 신축, 59채 개.보수, 소학교.유치원 보수, 중학교.탁아소 신축, 병원신축 같은 사업이 추진되도록 했습니다. 6월 3일, 그는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진짜 공산주의자 임종석과 공산주의 단체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의 정덕기 부회장 등 남한 공산주의 간부들과 합류했습니다. 적화통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한 실적 그는 2005년 8월 2일, 임진각 언덕에 통일을 염원하는 바람개비 수만 개를 꽃처럼 수놓았습니다. 대규모 촛불행사도 벌이고 1,0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동원되어 각종 공연, 강강술래, 불꽃놀이, 풍물놀이를 42일간 벌였습니다. 지금 빨리 통일하자면 무슨 통일을 하자는 것인가? 적화통일인 것입니다.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행사장과 경기도내 31개 시.군을 연결하는 버스가 운행됐고, 서울과 임진각역을 오가는 열차 편도 증설했습니다. 파주에는 「경기도에선 남과 북이 하나입니다」 라는 대형간판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경기도 지사 자격으로 이렇게 했다면 대통령이 되면 어떠하겠습니까? 2006년 5월 2일, 그는 임진각에서 또 어린이 평화축제를 열었습니다. 경기문화재단을 동원하여 오전 10시 30분부터 유치원생 5,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어린이 평화축제’를 열었습니다. 행사는 일산역~임진각역 구간 ‘평화열차 탑승’,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매달기, 통일한반도 지도 만들기, 사랑의 저금통 전달식, 어린이날 축하공연, 붉은 악마와 함께하는 월드컵 응원 등의 순으로 진행됐습니다. 특히 이날 모아진 사랑의 저금통은 북한 식량난 돕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월드비전’을 통해 북쪽에 전달됐습니다. 손학규는 민청학련 지도부의 배후인물 1972년 10월 유신은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과 국회해산권, 법관임명권을 집중시켰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신설하여 이곳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했습니다. 1973년 8월 8일의 일본에서 반국가활동을 벌이던 김대중을 납치해온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이 국제문제로 비화되자 김대중은 검열에 걸리지 않을 단어만 선별하여 이 사건을 중앙정보부가 주도하였다는 것을 널리 알렸고, 이를 근거로 재야의 유신반대 투쟁이 힘을 얻게 됐습니다. 1973년 10월 2일,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가 교내 4.19기념탑에서 비상총회를 열고, 중앙정보부 해체와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각 대학 학생들은 조직적인 연대투쟁을 계획하여 이듬해 봄부터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1974년 3월부터 경북대, 서강대, 연대 등에서 구국선언이 이어지고, 1974년 4월 3일 이화여대에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명의의 ‘민중, 민족, 민주선언’이 발표됐습니다. 이것이 곧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이었습니다.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 4월 유신정권의 긴급조치에 의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약칭 민청학련)을 중심으로 180명이 구속.기소된 사건입니다. 1973년 8월 8일, 김대중 피랍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동년 10월 서울대 문리대생의 유신반대 데모를 기점으로 하여 전국적으로 반독재.반체제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1973년 12월, 장준하, 백기완 등 재야인사 30여명이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1974년 1월 이희승 등 문인 61명이 ‘개헌서명 지지선언’을 발표하고, 지식인, 종교인, 야당인사들이 민주헌정 회복 및 공화당 정부의 인권탄압을 규탄하는 본격적인 개헌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1974년 4월 3일, 서울대, 이화여대, 성균관대 등에서 그해 1월 8일 발표된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1호와 2호에 반대해 일제히 유신체제 반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정부는 이날 밤 민청학련을 지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습니다. 1974년 4월 25일,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주동자들이 ‘4단계 혁명’을 통하여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부를 세울 것을 목표로 과도기적 통치기구로서 ‘민족지도부’를 결성할 계획을 세웠으며, 조총련, 인혁당계 및 일본공산당과 결탁하여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총 1,024명이 조사를 받았으며 이 중 180명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었습니다. 민청학련 관련자에 대한 첫 공판은 6월 5일에 시작되어 이철, 김지하 등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가 후에 무기로 감형되었고, 이 사건과 연계돼 있다는 이유로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사건 관련자 23명 중 8명이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윤보선, 지학순, 박형규(목사), 김동길, 김찬국(좌익변호사) 등도 배후지원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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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신문의 선두주자 뉴스타운 Newstown / 메디팜뉴스 Medipharmnews) | |||||||||||
2007-02-24 오후 1:16:49 |
첫댓글 당의 정체성과 동떨어진 국가관을 견지하면서 왜 한나라당으로 출마하려 합니까?
한나라당의 이미지는 그대로 얻으면서 실상은 지금의 좌파빨갱이들과 한통속인 손학규씨가 여권의 후보 1위라는 사실은 코미디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