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867) -도쿄올림픽의 감흥과 시대정신
해마다 이맘때면 휴가를 가는 이들이 가장 많은 시기, 코로나의 영향으로 피서를 즐기기가 여의치 않을 터인데 주변의 단골가게들이 때에 맞춰 더러 문을 닫았다. 폭염이 지속되는 중에도 간간이 비가 내려 견딜만 하다. 적절한 휴식으로 활력을 되찾자.
빗방울 품은 아파트 단지의 파초를 바라보며 '조국을 언제 떠났노, 파초의 꿈은 가련하다'(김동명의 시, 파초의 첫 구절)를 읊조리다
지난 2월 1일부터 12월 31까지 한국체육진흥회가 시행하는 제12회 한국걷기왕 인증대회에 참여하여 매일 10km내외를 6개월 이상 걷고 있다. 그간 걸은 기록의 누계는 2,000km 이상, 그대로 지속한다면 연말까지 3,000km 웃도는 기록을 세우리라. 누가 시킨 것 아닌데도 거르지 않고 지속하는 끈기와 열정에 스스로 박수를 보낸다. 꾸준한 걷기 덕분인지 오랜동안 꿈쩍않던 복부비만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체중도 4~5kg 줄어들어 줄곧 입던 바지들이 헐렁해졌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중단된 집합행사의 대안으로 등장한 자유걷기가 이처럼 큰 효과를 얻게 해줄 줄이야. 좋은 프로그램을 마련한 한국체육진흥회의 착상에 찬사를 보내며 더 많은 회원들의 동참을 권유한다. 걷기는 가장 훌륭한 약이다. - 히포크라테스
온 세계가 주시하는 인류의 축제, 도쿄올림픽이 여러 가지 우려를 이겨내고 중반을 넘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모두 장래가 촉망되는 귀중한 인재들, 땀 흘려 정진한 선수들의 노고와 집념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한국선수 최초로 하계올림픽 3관왕에 오른 양궁의 안산 선수, 체조 도마 경기에서 영예의 금메달을 딴 신재환 선수와 아버지(1996 애틀란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홍철)의 뒤를 이어 같은 종목에서 동메달을 딴 여서정 선수, 메달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앞길이 창창한 수영의 황선우, 육상 높이뛰기의 우상혁 선수들에게서 한국 청년의 기개와 열정을 일깬다. 축구는 8강에서 탈락하고 야구와 여자배구는 메달 획득의 투지를 불태우는 중, 정상급인 여자 골프를 비롯하여 남은 경기에서 모두들 선전하기를. 코로나 위기에 조마조마하면서도 차질 없이 진행되는 도쿄올림픽, 메달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중단이나 사고 없이 유종의 미를 거두라.
체조 도마에서 금메달을 딴 신재환 선수의 2차시기 화면
올림픽은 인류가 쌓아온 금자탑의 하나, 이에 얽힌 몇 가지 사연을 살펴본다.
1. 역동과 감동의 올림픽 드라마, 지구촌 어디서나 실시간 공유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관중이 없고, 관심이 없고, 안전이 없는 소위 3무(無) 올림픽이라는 비판 속에 2020 도쿄올림픽의 성화는 타오르고 있다. 문제 많고 말 많은 지각 올림픽도 일단 시작되자 곳곳에서 드라마를 연출하고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키는 등 스포츠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우리는 스포츠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현대인들을 온갖 스포츠에 열광하게 만든 것은 바로 텔레비전이었다. 과거 스포츠는 축구·농구·복싱·마라톤·100m 달리기 등 인기종목과 수영·체조·펜싱 등 비인기종목 두 가지로 나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분류가 무의미해졌다. 생생한 현장을 동 시간에 전달하는 TV는 줌장치(zoomer)를 이용해서 결정적인 순간들을 클로즈업으로 보여 주고 있다. 되돌리기(replay)와 슬로비디오 기술은 궁금한 장면을 다시 확인해 줄 뿐 아니라 수중 카메라는 물속의 경합까지 생생하게 전한다. 스포츠보다 더 완벽한 TV 프로그램은 없으며 스포츠는 그 자체가 드라마다. 더욱이 올림픽은 인류 최대 축제가 아닌가. TV의 스포츠 중계 방식에는 3가지가 있다. 생중계(live broadcast)와 녹화 중계(delayed broadcast) 그리고 요약 방송(summery)이다. 6대주 5대양을 하나로 묶어 생중계를 처음 했던 것은 통신 위성이 실용화된 1964년 도쿄올림픽이었다. 이때 동시 중계는 기술의 제한으로 일부만 가능했다. 본격적인 24시간 동시 중계가 실현된 것은 1972년 뮌헨올림픽 때부터다. A지점의 TV신호를 위성으로 쏘아 올리고(이 uplink를 흔히 upleg라 한다) 위성이 받은 신호를 B지점으로 다시 내려 보내면(downleg) 방송사는 이 그림을 각 가정으로 송출한다. 위성방송의 아이디어는 과학소설가 아서 클라크가 1945년 10월 ‘무선세계’ 잡지에 기고한 ‘우주통신 위성: 로켓 정류장이 전 세계 무선 연결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나왔다. 특히 지구의 자전속도와 함께 위성이 동시에 돌아갈 수 있는 지구 상공 2만2500마일 정지궤도를 예견한 사실은 엄청난 형안이었다. 정지궤도는 지금도 클라크 벨트(Clark Belt)로 불린다.(중앙 선데이 2021. 7. 31, 김우룡의 글 ‘캉캉춤 얘기로 들렸던 위성중계, 상상을 현실로 만들다’에서)
2. 양궁 3관왕 안산,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멕시코 신문 1면까지 장식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안산(20, 광주여대) 선수가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안산은 지난 30일 오후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 결승서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끝에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의 옐레나 오시포바를 6-5(28-28, 30-29, 27-28, 27-29, 29-27, 10-8)로 꺾었다. 이로써 안산은 남자팀 막내 김제덕(17, 경북일고)과 합을 맞춘 혼성 단체전과 강채영(25, 현대모비스) 장민희(22, 인천대) 언니들과 호흡한 여자 단체전 금메달에 이어 3관왕의 금자탑을 쌓았다. 한국 양궁 역사는 물론이고, 올림픽 양궁에서 단일 대회 첫 3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안산의 3관왕은 한국은 물론 올림픽 전체의 이슈가 됐다. 멕시코 신문 ‘엑셀시오르’는 31일자 1면에 안산의 소식을 가장 크게 전했다. 이 매체는 “올림픽 양궁에서 첫 3관왕에 오른 안산이 히로인으로 떠올랐다”며 그의 활약상을 멕시코 자국선수들보다도 더 크게 전했다. 하지만 안산을 둘러싼 논란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엑셀시오르’는 “안산이 숏컷 헤어를 한 이유로 한국의 남성우월주의자들에게 SNS상에서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다. 안산이 금메달을 반납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있다"고 보도했다.(2021. 8.1, OSEN 서정환의 글에서) 국내신문이 다룬 외국인의 선전사례는 지난 1일 육상 남자 100m에서 9초 80으로 우승한 이탈리아의 마르셀 제이콥스(27세) 선수, 국내언론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그가 우사인 볼트(자매이카) 은퇴 이후 무주공산이었던 육상 남자 100m의 왕좌를 차지하면서 세계 육상계에 놀라움을 선사하였다고 전하였다. 스타는 곳곳에 잠복해 있도다.
안산이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결승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와 경기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3. 도쿄올림픽의 시대정신
올림픽의 의미와 가치는 기록 경신이나 금메달 획득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대정신(Zeitgeist)이라고나 할까? 당대와 미래를 지배할 ‘정치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 동향’에 관한 부분이 올림픽 행사를 통해 전 세계에 퍼져나간다. 2021년 도쿄올림픽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보는 각도에 따라 관심영역에 따라 수많은 좌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크게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여성참여확대와 지속가능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이하 SDGs)에 관한 문제다.
잘 알려진 대로 원래 올림픽은 남성만의 제전이었다. 고대 그리스올림픽 참가자는 남성에 국한됐다. 여성이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00년 파리올림픽 때부터다. 파리올림픽 때 참가 선수는 전부 997명으로, 여성은 22명에 불과했다. 여성 참여 확대는 20세기 올림픽 전체를 가늠하는 시대정신에 해당한다. 남녀 참가자 비율을 50 대 50으로 똑같이 만들자는 것이 IOC의 주장이자 사명이다. 도쿄올림픽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남녀 참가자 비율이 비슷한 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 IOC에 따르면 전체 선수 가운데 남성이 51%, 여성이 49%가 될 것이라고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참가자는 남성이 6197명, 여성이 2194명이었다. 남녀 비율이 대략 7 대 3이었다. 여성 참가자 확대는 올림픽 시대정신으로 정착돼 왔다.
SDGs 문제는 도쿄올림픽을 통해 글로벌 상식으로 자리 잡을 분야다. SDGs는 현재 일본이 국민 총력전으로 펼치는 생존 전략 전술에 해당한다. 국가·기업·학교·개인이 총출동해 SDGs 선진국 진입에 주력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에서 통하는 SDGs의 핵심은, 환경·재활용·재생에너지·CO2문제 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올림픽 개최 직전 화제가 된 골판지 침대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도쿄올림픽의 시대정신을 외국에 알린 최적의 본보기 중 하나다. 골판지 침대는 가볍고 이동에도 편리한 것은 물론 재생자원을 활용한 침대이기도 하다. 올림픽 종료 후에는 종이로 회수해 처리하거나 중고로 외부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한다. 올림픽 기간 중 하나씩 등장하겠지만, 도쿄올림픽에 등장한 SDGs 관련 각종 프로젝트가 가까운 시일 내 보편적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을 듯하다. 금메달을 얼마나 따느냐는 관심도 중요하지만, 도쿄올림픽이 보여주는 시대정신의 구체적인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2021 글로벌 쇼의 묘미 중 하나일 것이다.(2021. 7. 26, 주간조선 유민호 기자의 ‘도쿄올림픽 시대정신’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