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감나무 단상/오일만 논설위원 출처
서울신문 :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1007029008
가을철 감나무는 늘 감탄을 자아낸다. 에메랄드 빛 가을 하늘, 주렁주렁 감 사이로 언뜻언뜻 스치는 하얀 구름이 고혹적이다. 옛 선비들이 넓은 감나무 잎에 가슴속 깊이 숨겨뒀던 마음을 꺼내 애틋한 연서를 보냄직하다.
풍성한 가을을 상징하듯 감나무는 예부터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기자목(祈子木)으로 불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깊은 관찰을 토대로 감나무의 덕을 침이 마르게 칭송하기도 했다.
감나무는 수명이 길고 풍성한 그늘을 아낌없이 나눠준다. 새가 집을 짓지 않을 정도로 벌레가 꾀지 않고 풍성한 잎은 아름다운 단풍으로 변해 인간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고운 빛깔의 열매는 달디단, 맛의 정수다. 이른바 칠절(七絶)을 두루 갖춘 나무다.
감나무의 오덕(德)도 흥미롭게 회자된다. 잎이 넓어 글씨 공부를 돕는 문(文), 목재가 단단해 화살촉을 만드는 무(武)가 있다. 겉과 속이 한결같이 붉어 표리부동하지 않은 충(忠)을 기렸다. 치아가 없는 노인도 즐겨 먹는 과일이니 효(孝)라 했고 서리를 이기는 나무라고 해서 절(節)이라 했다. 마지막까지 겨울철 까치의 밥이 돼주는 마음씨(愛)도 갸륵하다. 둘레길, 멀찍이 보이는 감나무를 보면서 스친 생각이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빛viit명상
그때 그 시절
감나무에 매달린 추억
찌그러진 바께스와 누런 양철로 된 큰 주전자를 든 당번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앞줄에 서려고 허둥지둥 달려갔다. 하지만 앞줄은 이미 새벽부터 와 있던 서너 명의 아이들이 차지한 상태다. 사실 앞에 서나 뒤에서나 급식량은 달라질 것이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빵을 받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은 것일 뿐. 급식을 하는 시간의 백열등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이 살을 에는 듯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겨보려 발을 동동 구른다. 또 몇몇 아이들은 울긋불긋 얼어터진 손등에 호, 호, 하고 입김을 불어넣어 녹여보기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강냉이 찐빵과 우유 배급이 있는 날은 마치 동네잔칫날 같았다. 평소 지각에결석을 밥 먹듯 하던 녀석들도 이 날만큼은 절대 늦거나 빠지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조차 평소보다 이삼십 분 씩은 일찍 오셔서 배급에 차질이 없도록 몸소 챙기시는 것이다.
마침내 식간에 불이 켜지고, 토끼털 귀마개를 검은 고무줄로 동여맨 소사 아저씨가 어정어정 걸어 나왔다. 그리고 커다란 찜통을 열어젖히자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과 함께 퍼지는 구수한 찐빵 냄새……. 코흘리개 녀석 하나가 눈을 지그시 감고 흠흠~ 하고 황홀해하던 표정이란. 벌써 꽤 오래전 일인데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다.
팔공산 빛viit명상 터 초입에 감나무 몇 그루를 심어놓았다. 바로 어린 시절 감나무에 얽힌 애틋한 기억을 추억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 집 앞마당의 감나무는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서 있었다.
“얘들아, 감 따거라!”
어머니의 말씀이 신호탄이라도 되듯 여덟 형제가 앞 다투어 감나무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서 이 소식을 알았는지 동네 사람들도 허겁지겁 감나무 아래로 모여드는 것이다. 마치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무엇이 있기라도 한 듯 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의 얼굴에 어려 있던 배고픔,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만드는 잊을 수 없는 표정이다.
다른 형제들은 신이 나서 감 따기에 여념이 없을 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배고픈 표정을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어 멀리 담벼락 밑의 사람들을 향해 감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이를 본 형제들이
“야, 니 지금 뭐하는기고?”
하며 화를 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자 저 아래에서 감을 받아든 사람들은 언제 준비해왔는지 된장을 꺼내들었다. 감의 떫은맛에 목이 메일까봐 감을 된장에 찍어먹는 것이다. 된장에 찍어먹는 감 맛, 과연 요즘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각설이 친구
학교에 가면 한 학급에 70-80명씩이나 되는 아이들이 콩나물처럼 들어차 대체 수업을 하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 할 때도 많았다. 담임선생님조차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 하시고 출석부 없이는 누가 자신의 반 학생인지조차 확인 할 수 없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반 이상의 아이들이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들어올 땐 모두 배가 복어처럼 볼록해져서 돌아왔다. 점심 도시락 대신 우물물로 배를 가득 채우고 말이다.
내 짝은 그런 형편의 친구들 보다 더한, 매끼 밥을 빌어먹는 각설이였다.
“경식아, 너 재밌는 노래 또 불러봐, 그 노래 참 우습고 좋다.”
“좋기 뭘 좋노? 광호 네가 부르라 카이까 또 한 번 불러 본데이, 어얼씨고씨고 들어간다아아아~ 저얼 씨고 씨고 들어간다아아,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아~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내가 경식이에게 재미있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청하면 경식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눈을 질끈 감고 책상 위에 바가지를 둘러엎어 연필로 장단을 쳐가며 각설이 타령을 불러 댔다. 그런 경식이의 노래와 익살에 모든 친구들이 배를 움켜잡고 깔깔거리면 경식이는 더 신이 나서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그 구성진 노랫가락 속에는 무언가 모를 애달픔이 담겨 있었다.
사실 경식이는 공부보다 각설이 타령을 잘 부르는 것이 더 급했다. 얼마나 슬프고 애처롭게 타령을 하느냐에 따라 얻어먹는 밥의 양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내가 청하지 않아도 쉬는 시간마다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배짱 좋고 여유만만 하던 각설이 경식이도 매월 말만 되면 풀이 죽었다. 그 때만 되면 어김없이 선생님으로부터 월사금 독촉을 받기 때문이다.
“인석아, 받을 때가 없어도 일단 나가! 어디 가서든지 빌려오란 말이다. 너 벌써 석 달 치나 밀렸어. 이젠 더 사정을 봐 줄래야 봐줄 수도 없어!”
“없는데 어떡하는교? 먹고 죽을라캐도 돈 땡전 한푼 업심더, 쌤요.”
이때만 되면 스승과 제자의 사이는 집세를 받는 주인과 하숙비를 독촉 받는 하숙생 꼴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이 시절에는 혼내는 사람이나 혼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모두 안 된 것도 마음 아플 것도 부끄럽고 미안할 것도 없었다. 그만큼 다들 가난하고 함께 배고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손이 나도 모르게 그 날 아침 아버지가 주신 월사금이 담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그 놈을 만지작거리다 과감하게 월사금 봉투를 경식이 앞에 들이밀었다.
“경식아, 잠깐만! 이거 너 해.”
“이게 뭐꼬? 니 월사금 30원 아인가?”
“일단, 이 돈으로 월사금 내. 난 걱정 말고. 나는 월사금이 밀리지 않았으니 선생님께서 봐 주실 거야.”
“광호야, 니 이래도 돼는 기가? 암튼, 참말로 고맙데이! 정말 고맙데이!”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선생님은 나를 몹시도 매몰차게 내쫓으셨다.
“이 녀석, 정광호! 넌 형편도 좋으면서 왜 월사금을 안내? 어디다 까먹은 것 아니야? 어쨌든 너도 나가서 빨리 받아와!”
이렇게 해서 나와 내 친구들은 교실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쫓겨났다기보다 신나게 뛰쳐나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좀처럼 오지 않는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기에!
친구들과 신나게 들판으로 달려가는 내게 이미 가방은 오간 데 없고, 옆구리에 찬 자랑스런 수통이 달그락달그락 경쾌한 소리를 냈다. 이 수통으로 말하자면 전쟁 중 군인들이 쓰던 물통인데 어떤 사연인지 우리 집 다락방에 골동품처럼 누워 있다가 내 눈에 띄어 다시금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수통은 비가 오는 날이면 시냇가의 붕어로, 오늘처럼 맑은 날이면 메뚜기로 채워져 허기를 달래주는 간식통 노릇을 톡톡히 해 주었는데 덕분에 책보보다 더 소중한 대접을 받았다. 그 수통이 이제는 검게 찌그러진 모습으로 내 방 한 쪽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쫓겨난 후의 이야기를 연결해 가자면, 다음날, 선생님께 월사금만을 드리기가 겸연쩍어 수통의 메뚜기와 꺼내서 함께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도 못 이기는 척 눈을 흘기시면서 받으시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자리에 들어가 얌전히 수업해라.”
하시는 것이다. 나와 그분의 입가엔 미소가 돌았고 그러면서 이미 어제의 일은 그분이나 나난 없었던 일이 되었다.
비 오는 날이면, 아예 수업을 뒷전으로 하고 선생님 몰래 교실 밖으로 친구들과 뛰쳐나가곤 했다. 다름 아닌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쏟아져 내린 빗물에 학교 뒤 개천이 넘쳐나면 숨쉬기 바쁜 붕어, 미꾸라지, 가물치 등이 그냥 물위로 둥둥 떠다녔다. 아무 요령 없이도 손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참을 신이 나서 옷이 젖는 것도 모르고 고기를 잡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를 혼내기 위해 씩씩거리며 선생님도 옷을 걷어 부치시고 도랑으로 들어와 우리와 함께 고기를 잡고 계셨다.
이처럼 굳이 잘못을 빌고 용서해 준다는 말이 없어도 몸짓과 표정으로서 용서받고 화해하던 그 시절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그 무엇이 있었다. 제자의 부스럼 병이 안타까워 자신의 월급을 뚝 떼어내어 치료비로 보태시던 선생님, 그리고 친구의 월사금을 내준 후, 돈을 다시 받으려는 어설픈 거짓말에 모른 척 하시며 묵묵히 30원을 또 내어주시던 부모님, 그렇게 그 때 그 시절은 모두에게 사랑이 있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출처 : 빛viit의 책 2권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P. 20 ~ 26
첫댓글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학회장님의 어린시절의 추억
정겹습니다.
감사합니다 ^^
우리선조분들이 감나무를 애지 중지한 이유가있다.
특히,감나무의 오덕(德)도 흥미롭게 회자된다.
잎이 넓어 글씨 공부를 돕는 문(文), 목재가 단단해 화살촉을 만드는 무(武)가 있다
. 겉과 속이 한결같이 붉어 표리부동하지 않은 충(忠)을 기렸다.
치아가 없는 노인도 즐겨 먹는 과일이니 효(孝)라 했고
서리를 이기는 나무라고 해서 절(節)해서 아끼고 사랑한것이다
란글과 귀한 빛글인 "그때그시절 감나무에매다린 추억"을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린시절의 추억들은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정겨움과 미소가 지어집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
어려웠지만 정말 즐거웠던 어린시절.
빛터 감나무 만나러가는 오늘은 행복합니다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변하지 않는 마음을 나누었던 시절의 이야기 감사합니다. 이웃을 향한 나눔의 손길을 마음속에 가져봅니다. 대자연을 통해 무한한 선물을 주시는 우주마음과 빛을 세상에 나누어주시는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나무의 오덕을 처음 알았습니다. 오덕을 알고나니 감나무가 더욱 귀하게 다가옵니다.
감나무에 얽힌 추억, 그 시절의 인간사랑이야기... 감사합니다.
감나무와 함께 어린시절의 추억이야기 감사드립니다.
특히 감을 좋아하셨던 어머님이 생각납니다
배고팠던 그 시절엔 이웃이 가족같은 경계가 없는 정이 많은 시절이었죠..
감나무의 오덕과 훈훈한 감나무에얽힌 얘기 감사히 읽고갑니다
배고프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정이 있었던 시절의 정겨운 추억이야기
그때 그시절이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 추억은 돈 주고도 못 사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나무가 주는 오덕을 배웁니다.
감나무에 매달린 추억속에 빠집니다.
흐뭇하고 즐겁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좋았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어린시절의 그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네요
귀한글 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나무의 오덕이야기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글이네요,
학회장님의 어릴적 감나무에 얽힌 이야기 월사금에 얽힌 이야기 가슴도 아프고 재미도 납니다,
글 감사합니다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행복했던 시간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장님의 어린시절 마음따뜻한 빛이야기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옛일이 생각납니다.
사랑 입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의 글 볼수있게해주셔서 진심으로감사드립니다
어려웠던 학창시절의 모습들... 생동감있게 학회장님의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정이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의 정겨운 이야기...훈훈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난했지만 순수함이 묻어나던 시절의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모두에게 사랑이 있어 아름다운 그때 그시절~
순수한 마음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웠던 시절 그 마음을 잘 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누는 마음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어린 시절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고자 했던 학회장님의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으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