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교인들의 비판을 받을 때 공학섭
웨슬레는 어느 날 자신의 일기장에 “나는 과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가?”라는 의문을 기록했다. 그날 하루 동안 아무에게도 비판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의 경륜을 선포했다면 타락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자신을 공격하는 말로 들릴 것이다.” 따라서 목사가 비판의 표적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비판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목사의 인격과 경건의 깊이가 드러난다. 비판은 유쾌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겸손과 성화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비판에는 건설적인 비판도 있고, 악의적인 비판도 있다. 열 가지 비난 중 단 한 조각의 진실이라도 섞여 있다면 그 비판은 힘을 얻는다. 사단은 그 한 조각의 진실을 이용하여 더 많은 사람을 자극하고, 비판을 확장 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의적인 비판까지도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목사는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가 아무런 비판을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죄로 물든 사람들은 말씀 앞에서 자신의 허물이 드러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그 불편함이 비판과 거부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실 때 사람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셨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불의함이 드러나자 이를 견디지 못하고 예수님을 배척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신성 모독죄로 고발했다. 흠 없으신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비판을 달고 사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당한 비판자들에게 일일이 맞대응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온유하심은 나약함이 아니라, 위대한 내적 능력의 증거였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잡으러 온 말고의 귀를 칼로 쳤을 때, 예수님은 그를 치료해 주셨다. 최악의 상황을 사랑으로 바꾸신 것이다. 빌라도 앞에서도 무죄를 주장할 기회가 있었지만, 예수님은 끝까지 침묵하셨다. 그 장면을 지켜본 로마 백부장은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했다.
목사가 비판받는 이유가 자신의 잘못 때문일 수도 있다.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일에 불성실한 목사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진실하지 못하고 반복하여 실수를 저질렀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된 일을 적당히 둘러대거나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면 안 된다.
물론 교인들도 목사를 두고 사소한 일로 트집 잡거나 비난함은 옳지 않다. 목사 역시 그 비판에 대한 보복심으로 대응함도 어리석은 일이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쫓겨나던 다윗을 향해 시므이가 저주를 퍼부었을 때, 아비새가 그를 죽이겠다고 나섰지만, 다윗은 극구 말렸다. “그가 저주하게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라며 하나님의 주권에 맡겼다. 목사도 교인들의 비난 속에 하나님의 책망이 담겨 있지는 않은지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목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정직하고 경건한 삶을 일관되게 추구해야 한다. 비판이 있을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되, 억울함은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과 사랑으로 답하는 것이 참된 목자의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