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이슈멜은 뉴베드퍼드로 와서
고래잡이 배인 페쿼드 호를 타게 되었다.
그 배의 선장인 에이헙은
좀 색다른 사람으로서,
인간의 손으로는 처지할 수 없는 난폭한 흰 고래를 잡고야 말겠다고 결심을 다지고 있었다.
지난날에 그는 그 흰 고래를 잡으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잘려 버린 쓰라린 원한이 있는 것이다.
에이헙은 배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흰 고래에 대해 복수하기를 맹세하고,
배의 마스트에 스페인 금화를 못박아 전시하면서,
흰 고래를 발견한 사람에게 이것을 주겠다고 하여 선원들의 사기를 북돋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항해사 스타브는
그에 자극받아 여러 가지 모험을 저지르기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폭풍우를 만나 나침반이 고장나 버리고 말았다.
선원 하나가 빠져 죽고
흑인 하인인 피프는 미쳐 버리고 말았다.
흰 고래-그들은 '모비 딕'이라고 이름붙였다-가
드디어 그 모습을 나타냈다.
첫째 날에는
배 한 척이 깨져 버리고 말았다.
둘째 날에도
배 한 척이 부숴지고, 에이헙은 의족인 상아 다리를 뜯기고 말았다.
셋째 날이 되어서야
작살로 모비 딕을 찌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에이헙은 실수하여
작살 줄에 온 몸이 친친 감겨 버리고
흰 고래와 함께 깊은 바닷속으로 잠겨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깨진 배는 점점 기울어져 바다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선원 한 명이 위험을 알리러 돛대 끝에 독수리 깃발을 달았지만,
이 신호를 보고 구조하기 위해 달려오는 배는 없었다.
페쿼드 호는
마치 악마가 살아남은 모든 선원을 데려가기를 기다리기나 하는 것처럼
좀처럼 가라 앉지 않았다.
이렇게 자연과 싸우던 인간은
결국 쓰라린 패배만을 맛보게 되었고,
오직 혼자 살아남은 이슈멜만이 바다를 표류하다가
다른 배에 구조되어 살아 남게 된다.
그 이슈멜의 회상이 이 소설이다.
- 김희보,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첫댓글 내 이름은 이쉬마엘이다....
내 입가에 우울한 빛이 떠돌 때,
관을 쌓아 두는 창고 앞에서
저절로 발길이 멈춰질 때,
즉 내 영혼에 축축하게 가랑비 오는
11월이 오면 나는 빨리 바다로
가야한다는 것을 안다."
ㅡ <백경 Moby -Dick, 1851> 시작 부분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사물들은
마분지 가면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속에는
알 수 없는, 그렇지만 분명히 계획적인
어떤 힘이 그 무심한 가면 뒤에서
은밀히 움직인다.
죄수가 벽을 쳐부수지 않고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그 흰 고래는 나를 밀어붙이는
바로 그 벽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증오하는 것이다.
내게 신성모독이라고 얘기하지 말라.
날 모욕한다면 태양이라도 쳐부수겠다!
진리에는 한계가 없다." ㅡ에이브 허브(선장)
이맇듯 에이허브의 적수는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백경 자체라기보다는
백경이 상징하는 추상적인 힘이다.
인간을 비웃고, 얽매고,
그보다 더욱 두렵게 인간에게 무관심해
보이는 그 모호한 존재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것이다.
공허한 가면극 속의 엑스트라 같은 인간,
아름답지만 변화무쌍한 가면 뒤에 숨어
인간을 조롱하는 힘에 대항해
분연히 일어나는 에이헤브는
복종과 타협에 익숙한ㅊ우리에게는
영웅이다.
그래서 <백경>은
흰 고래와 에이헤브가 벌이는
한 판 승부이다.
그러나 결국 이 소설은 이 승부를 관찰하고 해석해서 우리에게 전하는 1인칭 화자 이쉬마엘의 이야기라고 볼 수있다.
'11월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바다로
간 이쉬마엘은 한낱 미물 같은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알 수 없는 힘에 봉기하는 에이헤브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포경선에서 새롭게 만난
퀴켁이라는 인디언 친구와의 진정한
우정을 통해 다시 세상과의 다리를 놓는다.
이쉬마엘이 피쿼드 호에서 배운 것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 맞잡는 손이야말로
그 어떤 추상적 진릭보다 더 위대하고
궁극적 구원에 이르는 방편이다.
멜빌은 자신이 읽던 책에
"나는 머리만 있는 주피터보다는
마음만 있는 바보가 되겠다." 고 적어 놓은 작이 있다.
바보 같더라도 서로 따뜻한 마음을 나누면 홀로 우뚝 선 영웅의 삶보다 더욱
가치 있다는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