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두 개의 위를 가지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사회적인 생물 가운데 하나로 개미를 꼽습니다.
퓰리처상을 받은 책 "개미 세계의 여행"에는
앞으로 지구를 지배할 존재는 사람이 아니라 개미일지도 모른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까지 등장합니다.
그 근거는 개미들의 희생정신과 탁월한 분업 능력이 인간보다 더 뛰어나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로 개미는 굶주린 동료를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개미는 위를 두 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위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인 위입니다.
배고픈 동료가 있으면, 개미는 두 번째 위에 저장해 두었던 먹이를 꺼내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도 개미처럼 두 개의 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랬다면 어쩌면 인류는 굶주림의 고통을 조금은 덜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위를 하나만 주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인간은 때로는 배고픔 앞에서 너무나 잔인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위가 하나뿐인 인간이 때로는 위가 두 개인 개미보다도 더 깊은 연민과 나눔을 실천해 왔다는 점입니다.
어느 겨울날의 법정
1935년, 어느 추운 겨울날의 일입니다.
피오렐로 라과디아가 뉴욕 빈민가의 법정을 맡고 있던 때,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한 노파가 법정에 끌려왔습니다.
죄목은 빵 한 덩이를 훔친 것이었습니다.
노파는 울먹이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사위는 딸을 버리고 떠났고,
딸은 병으로 누워 있었으며,
어린 손녀들은 굶주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빵집 주인은 완강했습니다.
고소를 취하해 달라는 권유에도 응하지 않고,
끝까지 “법대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한숨을 길게 내쉰 뒤, 노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벌은 받으셔야 합니다.
벌금 10달러를 내시거나, 열흘 동안 감옥에 가셔야 합니다.”
선고를 마친 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모자를 벗어 들더니,
자기 주머니에서 10달러를 꺼내 그 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벌금 10달러가 있습니다.
할머니는 벌금을 완납하셨습니다.”
하지만 그의 판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법정 안을 둘러보며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오늘, 굶주린 손녀들에게 빵 한 조각 먹이기 위해 도둑질을 해야 하는 도시에서 살고 있는 죄를 물어, 이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50센트씩의 벌금을 선고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자를 법정 경관에게 건네며 방청객들 사이를 돌게 했습니다.
그렇게 모인 돈은 무려 57달러 50센트였습니다.
대공황 시절이었음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그중 벌금 10달러를 제외한 47달러 50센트를 노파의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다음 날, 뉴욕타임즈에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다고 합니다.
“손녀들을 먹이기 위해 빵을 훔친 노파에게 47달러 50센트가 전달되다.”
빵집 주인도, 방청객도, 심지어 법정에 있던 경찰들까지 모두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그날 법정은 단지 법을 집행한 곳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이 무엇인지를 묻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현재 뉴욕에는 공항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JFK 공항이고, 다른 하나는 라과디아 공항입니다.
전자는 케네디 대통령의 이름을 딴 공항이고, 후자는 바로 피오렐로 라과디아 재판장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그는 훗날 뉴욕 시장을 세 차례나 역임하며 도시의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기억됩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단순히 한 판사의 선행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는 법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법을 존중했기에 벌금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법의 차가움 속에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정의를 함께 담아냈습니다.
법은 질서를 세우지만,
사랑은 사람을 일으켜 세웁니다.
규칙은 사회를 지탱하지만,
연민은 세상을 인간답게 만듭니다.
개미는 두 개의 위를 가졌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해,
또 하나는 공동체를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위가 하나뿐입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배고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고,
남의 눈물을 내 눈물처럼 닦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살아갈 만한 곳이 됩니다.
남을 위해 내 것을 조금 덜어 줄 줄 아는 사람,
타인의 절망 앞에서 외면하지 않는 사람,
법과 원칙을 지키면서도 인간의 온기를 잃지 않는 사람.
어쩌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개미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위는 하나뿐이지만,
마음만은 두 개였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나를 위해 뛰는 마음,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웃의 아픔을 위해 함께 뛰는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조희대 대법원장이 꼭 읽어 봤어면 좋겠네요
울림이 있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