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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버리고 화합해야 - 참회문 / 서옹스님 << 입적하신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 >>
탐욕 버리고 화합해야 - 참회문
◇ 조계종 원로 서옹스님은 조계종 분규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참회문’을 직접 써서 발표했다.
“인류를 구제할 수 있는 종교로, 불법(佛法)을 갖고 있는 불교가 왜 이런 다툼을 벌이고 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모두 욕망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고 인간주의의 근원인 ‘참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87)은 12월 28일 조계종 분규와 관련, 종단 어른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파 그동안 계속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며 참회문을 발표하고 가슴 아픈 심정을 토로했다.
12월 10일부터 5일간 대만불교를 돌아보고 귀국한 서옹스님은 조계종 분규로 인해 백양사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미루고 서울 상도동 백운암에 머물고 있다.
“어떠한 명리(名利)도 부처님의 법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고, 서로 존경하고 용서하며 불교 근본정신인 자비화합(慈悲和合)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자비질서에 바탕하여 서로 조금씩 양보했다면 지금 같은 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인생의 고(苦)는 모두 식(識)을 연해서 생기(生起) 합니다. 선(禪)에서는 식을 없애고 무의식(아뢰야식)까지 없애 무한히 벗어나 무한히 현성(現成)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정법 그대로지요. 의견이 서로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자비화합의 바탕에서 서로 협조하는 정신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조계종 분규로 인한 노스님의 상심이 컸던 탓일까. 지난 해 8월 백양사 무차선회 때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이지만 오히려 이번 사태로 마음 아파하고 상처받은 불자들을 향한 간절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번 일로 부처님 법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가슴 속에 큰 상처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다른 종교로 바꾸려 하고, 길이나 버스에서 스님들에게 욕도 한다면서요. 부처님 제자라고 믿었던 스님들이 그렇게들 싸우니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 다툼이 있다고 해서 부처님의 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본래 인간은 모두 악하지요. 스님들의 싸움에 실망했다고 해서 부처님의 법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의 법은 위기에 처한 인류를 이끌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눈 앞의 분쟁만으로 등 돌리기 보다는 큰 마음으로 멀리 내다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켜내기 위한 정진을 하세요. IMF로 경제가 어려워졌지만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 노력하지 않습니까.”
또 서옹스님은 20세기를 마감하는 1999년 새해를 맞아 불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길은 한가지입니다. 탐욕과 명리를 버리고 무아자비(無我慈悲)의 정법(正法)으로 참선해야 합니다. 스님의 본분은 어떤 일보다 수행이 우선해야 하며, 재가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정진해야 하는 것이지요. 서로를 존경하고 서로를 도와가며 화합할 수 있는 길을 냉정하게 성찰하세요. 인간관계를 무연(無緣)의 동체대비(同體大悲)로 인식하여 서로 존중하고 봉사한다면 질서있고 아름다운 모습이 저절로 갖춰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법을 따라 나아가는 바른 길입니다.”
* 서옹스님‘조계종분규 참회문’
우리 조계종은 무아자비(無我慈悲)의 정법(正法)을 이어 국민과 인류를 자비화합의 바탕에서 구제하는 불교입니다. 그러나 현금(現今)에는 우리 종도(宗徒)들이 훌륭한 전통을 망각하고 탐욕과 명리(名利)에 끄달려 종도들끼리 폭력난투(暴力亂鬪)하고 있으니 불조(佛祖)의 정신과는 정반대되는 행동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국가 인류의 화합과 행복에 크게 해독(害毒)을 끼치는 행위라고 믿습니다. 어찌 통곡과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반성하오면 종단의 어리석은 이 늙은 서옹은 어려서는 부모와 집안 어른들의 사랑으로 잘 자라서 학문도 닦았고, 출가해서는 스승과 도반 덕택으로 수행을 충분히 했습니다. 그러나 헛나이만 많이 먹어 종단을 위해서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한량없는 은혜를 저버리고 허송세월만 하고 있으니 지금의 종단 불상사는 이 우노(愚老)의 탓이라고 통감합니다. 그러므로 삼보(三寶)와 사부대중과 국민과 인류에게 지성참회(至誠懺悔)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부대중은 탐욕과 명리를 버리고 무아자비의 불심(佛心)에서 상호 용서하고 상호 존경하고, 상호 협력하여 여법질서(如法秩序)로써 인류를 구제하는 자비화합 종단을 건설합시다.
불기2542년 12월28일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 서옹
* 서옹스님 신년 휘호
臨機不讓師(임기불양사)
日日是好日(일일시호일)
참선에 임하는 제자가 스승에게도 사양하지 않는 것처럼
참선은 걸림없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참선을 통해 자유자재하게 살면 나날이 즐겁다.
당나라 임제 선사 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씀에서 나온 불교용어로, 어떤 곳에 처하든 주인이 되어 그 자리에서 진면목을 보이라는 뜻이다.
청풍잡지유하극(淸風雜地有何極) 언제나 청풍이 불고 있으므로, 몸과 마음에 티끌이 없는 맑은 바람이 온 대지에 두루 하다
*** 역대 종정 프로필· 법어 ***
▲제1대 효봉(曉峰) 종정(1888~1966)
평남 양덕 출생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과 졸업후 법관시험에 합격, 26~36세에 서울과 평양 등지에서 판사생활을 했다. 36세때 독립운동하던 피고인에게 어쩔 수 없이 내린 사형선고 때문에 번민하고 유랑생활을 하다가 38세때 금강산 신계사에서 출가했다.
▲제2대 청담(靑潭) 종정(1902~1971)
경남 진주 출생으로 1919년 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렀고 일본유학중 송운사에서 행자생활을 했다. 귀국 후 고성 옥천사에서 규영 스님을 은사로 법명을 받았다. 일제시대에 계속 독립운동을 해 옥고를 치렀고 일제시대 말부터 승단정화운동을 펼쳤다. 서울 도선사 주지와 1955년 대한불교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 등을 역임했다. 늘 `마음이 곧 부처(心卽是佛)'라고 강조했다.
▲제3대, 4대 고암(古庵) 종정(1897~1988)
경기 파주 출생으로 19세에 해인사에서 제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계(戒) 정(定) 혜(慧), 삼학에 뛰어났던 전법스승으로 유명했던 스님은 설악산 신흥사, 종로 대각사, 오대산 상원사 조실을 역임했고 해인총림 방장과 용성문도회 문장을 지냈다. 동남아시아와 일본, 호주, 하와이에서도 설법하였다.
▲제5대 서옹(西翁) 종정(1912~)
충남 논산 출생으로 20세에 전남 백양사 만암 스님에게 출가했다. 후에 일본 경도 임제대학을 졸업했고 귀국후 1965년 서울 무문관(無門關)에서 6년간 밖에 나오지 않고 참선했다. 현재 장성 백양사에 주석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주체가 되고 서는 곳마다 참되라'는 의미의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선구(禪句)를 즐겨썼다.
▲제 6대, 7대 성철(性徹) 종정(1912~1993)
경남 산청 출생으로 1936년 동산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평생 바루 하나와 누더기로 살았는데, 해인사 백련암에 머물며 해인총림 초대방장을 지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법어로 유명하며 10년 장좌불와, 돈오돈수(頓悟頓修) 등 한국불교의 선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
▲제8대 서암(西庵) 종정(1918~)
경북 영주 출생으로 1935년 예천 서악사에서 화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문경 봉암사 선원조실, 조계종 총무원장, 원로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문경 봉암사 조실로 주석하고 있다. `부처는 바로 자기 마음(佛則心)'이라며 마음의 근본을 알고 자기를 스스로 알라는 가르침을 내렸다.
▲제9대 월하(月下) 종정(1915~)
충남 부여 출신으로 18세때 금강산 유점사로 출가했다. 3보사찰의 하나인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은 후 줄곧 통도사를 지켰다. 그러나 9대 종정으로 재직시인 지난 1998년 11월 종단분규에 휘말려 원로회의의 불신임을 받고 종정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통도사 영축총림 방장. `시냇물 소리가 바로 광장설(법문)이요 산색이 어찌 청정신(부처님)이 아니겠는가'라는 법문으로 유명하다.
▲제10대 혜암(慧庵) 종정(1920~2001)
전남 장성 출생. 1946년 해인사 안곡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총림 방장,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을 역임했다. 성철스님과 함께 봉암사 결사를 했고, 50년 장좌불와로 유명하며 출가 이후 줄곧 일중일식(日中一食)을 지켜온 대표적 선승이다. 성철스님 입적후에는 돈오돈수를 지도했고 특히 이론보다는 실천에 치중했다. 이무경 기자
<< 법정스님 말씀 >>
산다는 것은 비슷비슷한 되풀이만 같다. 하루 세 끼 먹는 일과 자고 일어나는 동작, 출퇴근의 규칙적인 시간 관념 속에서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온다. 때로는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면서, 또는 후회를 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노상 그날이 그날 같은 타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간다.
이와 같은 반복만이 인생의 전부라면 우리는 나머지 허락받은 세월을 반납하고서라도 도중에서 뛰어내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안으로 유심히 살펴보면 결코 그날이 그날일 수 없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또한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고스란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다행히도 그 자리에 가만히 놓여 있는 가구가 아니다, 앉은 자리에서만 맴돌도록 만들어진 시계 바늘도 아니다. 끝없이 변화하면서 생성되는 것이 생명 현상이이므로, 개인의 의지를 담은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수 있다.
운문 선사가 보름날의 법회에서 제자들에게 말했다.
"십오 일 이전은 그대들에게 묻지 않겠다. 십오일 이후에 대해서 한마디 일러 보라.."
한번 지나간 버린 과거사는 묻지 않을 테니 그 대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말일 것이다. 여럿의 얼굴을 쭉 훑어보았지만 하나같이 꿀먹은 벙어리였다. 이윽고 선사는 자신이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
하루하루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시들한 날이 아니라 늘 새로운 날이라는 뜻이다. 철저한 자각과 의지적인 노력으로 거듭거듭 태어나기 때문에 순간순간이 늘 새로운 것이다. 타성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은 하루 24시간의 부림을 당한다. 그러나 주어진 인생이 자기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매순간 자각하는 사람은 그 24시간을 부릴줄 안다. 한쪽은 비슬비슬 끌려가는 삶이고, 다른 한쪽은 당당하게 자기 몫을 이끌고 가는 인생이다.
천이면 천, 만이면 만이 저마다 각기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지니고 있음은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는 여럿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특성을 펼쳐 우주적인 조화를 이루도록 초대받은 나그네들이다. 두 사람의 예수나 똑같은 석가모니는 필요가 없다. 개성과 기능이 각기 다른 사람들끼리의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저마다 세상에서 새로운 존재다. 이와같은 인간의 특성과 기능을 무시하고 외곬으로만 몰고 가려는 이념이나 주의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인류사에 되돌리려는 반시대적인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둘레는 하루하루가 고통으로 얼룩져있는데 어떻게 좋은 나라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우리늬 삶은 도전을 받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력에 의해 의미가 주어진다. 날마다 좋은 날을 맞으려면 모순과 갈등 속에서 삶의 의미를 캐내야 한다. 하루 하루를 남의 인생처럼 아무렇게나 살아 버릴 것이 아니라, 내 몫을 새롭고 소중하게 살려야 한다. 되풀이되는 범속한 일상을 새롭게 심화시키는 데서 좋은 날은 이루어진다.
법정 스님 말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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